이충현 개인전, <Handsome>
핸썸handsome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우리는 한 인물의 외양을 떠올린다. 그는 아마도 남성일 것이며 준수한 외모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원래의 핸썸, 영어로는 hand-some은 손에 들기 좋은, 한 줌 거리의, 유용한 무엇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던 원래의 뜻이 지금처럼 변질된 데는 추정컨데 오래 전, 조각 같이 잘생긴 얼굴을 마주한 누군가가 손으로 그 얼굴을 어루만지고 싶었던 마음을 hand-some이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에서부터가 아닐지. 그리하여 과거에는 그 무게를 직접 손으로 들고 느끼면서 사용하던 핸썸한 무언가가, 오늘날은 한 번쯤 만져보고픈 핸썸한 얼굴로 바뀌게 되었다.
이충현 작가의 개인전, <Handsome>은 이러한 핸썸의 원래 의미를 일깨운다. 작가는 자신의 몸무게인 65kg에 해당하는 동일한 무게의 흙덩어리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거기서 감당할 수 있는 무게의 흙을 손으로 뜬 후 바닥에 내리치면서 흙 내부의 공기를 최대한 뺀다. 밀도감 있는 흙덩어리가 허공을 날라 바닥에 철썩, 철썩, 부딪히는 것을 상상해 보자. 바닥에 달라붙은 흙덩어리는 바닥의 매끈한 면과 중력, 그리고 이를 던진 작가의 힘에 의해 변형되었을 것이다. 반복되는 작업 끝에 65kg의 흙에서 총 8개의 흙덩이가 생겨난다. 은평구의 <황금향> 공간에 설치되어 있는 180cm 높이의 입상과 와상, 그리고 여러 형태의 덩어리들은 그러므로 한 줌의 흙덩이들을 모아 재구성한 작가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계단을 내려가 지하에 있는 전시장 내부로 들어서면 작은 방 안에 여러 개의 덩어리들이 어떤 규칙을 가진 듯 놓여있고 두 개의 기둥 같은 것 중 하나는 서 있고 하나는 누워 있다. 오랜 시간의 풍화 속에서 골재만 남은 고대 유적의 잔해를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찬찬히 그들 사이를 거닐며 하나하나 살펴본다. 입상의 키는 나보다 조금 더 크다. 그 정면에 서서 찬찬히 눈높이의 표면을 살피다 문득 누군가가, 군살 없이 견고한, 그러나 목소리를 내거나 표정을 짓지 못하는 입방체로 환원된 누군가가 지긋이 내려다보는 느낌을 받는다. 한 줌씩의 흙덩어리들이 모여 뒤엉키고 문질러진 표면은 멀리서 보았을 때와는 달리 얕은 고랑과 굴곡들이 있다. 뒤로 돌아가 보니 안쪽은 비었고 골격은 목재로 되어 있다. 입상 뒤에 가로로 놓인 와상은 실제 무게는 알 수 없지만 굉장히 무거워 보였는데, 가장자리들이 완만하게 닳아 있어 어쩌면 더 오랜 시간을 버티다 누워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다시 전시장 입구 쪽을 향하니 바닥의 덩어리들이 마치 누군가의 자취처럼 띄엄띄엄 놓여 있다. 그들을 사이에 두고 입상의 건너편에 상당한 존재감의 정육면체가, 그러나 상대적으로 짙은 카키색에 갈라진 표면을 가진 물체가 보인다. 가까이서 보니 한 줌 크기의 흙덩어리들이 안쪽의 약한 속살 혹은 상처를 겹겹이 감싸다 취한 형태가 이런 모습인 것 같다. 아니면 진주의 핵처럼 자신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이물질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한 줌 한 줌 생을 덧붙여간 것일지.
우두커니 놓인 입방체를 바라보다 문득 이 또한 작가가 처음 만들었던 흙덩어리가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석고로 본을 뜬 예전 흙덩어리의 흔적이다. 촉촉한 살갗 같았을 처음의 재료, 수없이 바닥에 부딪혀가며 속을 채워낸 그 점토 덩어리들은 이제 차갑고 매끈한 석고상으로 흔적만 남았다. 수백 번 애를 쓴 끝에 찰나의 밀도와 무게를 가졌던 처음의 점토상은 이제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그 점토 덩어리에 이입하며 눈앞의 정육면체를 응시한다. 거기에 붙어 있는 한 줌만큼의 삶들을 생각한다.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그 밀도를 높여 언젠가 핵을 향해 철썩 붙여버릴 이 핸썸handsome한, 한 줌만큼의 삶을 우리는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하루, 한 달, 일 년이 연이어 지나고 우리는 나이를 먹으며 젊고 날씬했던 허리에는 군살이 붙는다. 이내 감당하기 어려워진 삶은 세워 놓은 흙뭉치에다 붙여 놓고 새로운 마음으로 점토를 한 움큼 집는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3kg 남짓한 유기물이었던 우리는 그렇게 한 줌 한 줌 무게를 늘려가다 언젠가부터는 자신에게 주어진 물질을 반납하고 마침내 공(空)이 된다. 만약 운이 좋다면 자신을 닮은 점토상으로 본을 뜬 석고상 몇 개를 남겨놓고 인간은 흙으로 환원한다.
그러므로 핸썸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한 줌의 흙을 반복해서 바닥에다 던지고, 차곡차곡 뭉치거나 바르는 일은 일종의 수행이다. 그것은 손 안에 쥔 이 시간이라는 물질의 감촉과 밀도와 무게를 지속적으로 느끼고 그 밀도를 높여가는 작업이다. 그것은 비록 중력에 의해, 차가운 바닥에 의해 찌부러지고 일그러지더라도 세상에 스스로를 투신함으로써 내부의 거품을 없앤 알찬 한 줌의 삶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들이 모여 입상과 와상, 여러 입방체들이 형체화한 것을, 그들이 자취를 이루어 공간을 장악하고 있는 것을 일컬어 우리는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