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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지석 Jun 03. 2019

#12. 그때 그 하늘

하늘하늘 피어나는 추억속의 여유

글은 쓰는 지금은 광주에 내려와 있다. 지난 주말엔 정말 오랜만에 옛 추억이 담긴 동네에서 친구들과 소주 한잔했다. 20년이 지난 학교 앞 문방구도 있었고, 빛이 바랜 안경가게의 간판을 보면서 마치 오래전 잃어버린 안경을 찾은듯한 느낌도 받았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는 놀이터가 있었다. 별칭이 없어 우리는 사자 놀이터, 호랑이 놀이터라고 불렀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가면 친구들이 있었고, 밖에서 노는 게 일상이었다. 

비가 온 뒤 맑은 하늘은 미세먼지 없던 어린 시절 놀이터의 따스한 햇살을 상기시켰다. 


군 복무하면서 기억나는 새벽하늘, 쏟아지는 별이 있던 하늘이 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 이유는 힘든 훈련 속에서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하나의 습작과 함께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새벽하늘

인천 아라뱃길을 쭉 타고 가다가 양쪽으로 뻗은 가로수 터널 속을 지나면 사막 속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 같은 주둔지가 있었다. 뱃길 옆에 있는 주둔지라 유난히도 안개 낀 날이 많았다. 


새벽하늘이 기억나는 날은 첫 당직근무 날이다. 긴장된 마음에 밤을 새우며 첫 당직근무를 섰다. 무소식이 희소식이지만 내 첫 당직근무 날은 그렇지 못했다. 경계근무 투입시키는 도중 한 병사가 실수로 공포탄을 쐈다. 새벽 4시 고요한 새벽 부대에 공포탄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울려 퍼졌고,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당직사령 불호령은 첫 근무를 투입한 병아리 소위에겐 지옥과도 같았다.


그 지옥문을 나오면서 본 여명이 밝던 안개 낀 새벽하늘은 아직도 뇌리에 선명한 기억의 습작으로 남아있다.


밤 하늘

잊을 수 없는 밤 하늘은 남한산성이다. 학생중앙군사학교(ROTC)가 지금은 충북 괴산시에 있지만 과거에는 경기도 성남에 있었다. 대학생이자 ROTC 후보생이던 나는 방학 때면 훈련을 갔다. 항상 훈련의 마지막은 야간 행군이었고, 기나긴 이 고통의 시간이 끝나면 집에 간다는 설레는 생각으로 먼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 날 행군은 태어나 군대를 처음 맛본 기초 군사훈련의 마지막 관문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내 전투복을 입어봤고, 사이즈가 맞지 않은 전투화를 신고 있어도 그게 사이즈가 맞는 건지 안 맞는 건지도 모르던 초보 군인이었다. 모든 게 어색했고, 적응할 새도 없이 정신 차려 눈떠보니 난 행군을 하고 있었다. 행군 출발 4시간이 지날 때쯤 남한산성의 모를 너른 공터에서 서울의 야경을 보았다. 빛나는 서울 야경과 쏟아지는 별을 보면서 지방 촌놈은 많은 생각을 했다. 기초 군사훈련을 무사히 통과하기 위한 높은 산만 보고 달려왔지 숲을 보는 정신은 없었다. 이제 막 산을 오르는 초보 등산객의 시선에 서있는 내 모습을 밤 하늘과 함께 기억하고 있다.




가끔 오래전 노래를 들으면 문득 게임 장면이 떠오를 때가 있다. 어린 시절 소리바다를 켜놓고, 노래를 들으면서 게임을 했는데 어떤 과학적 요소인지는 잘 몰라도 노래를 들으면 그때 그 장면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날씨도 마찬가지다. 새벽하늘, 밤 하늘을 볼 때면 내가 발전하게 된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기도 한다. 유난히도 세로토닌이 풍부한 오늘, 행복한 날씨에 추억한 편을 기억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바쁜 일상 속에서 가끔 하늘을 보는 날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구두끈이 풀린지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뛴다면 절대 1등 할 수 없다.
가끔은 아래를 보며 풀린 끈을 꽉 조여라.  - 하워드 슐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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