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가 깃든 열정과 끈기가 있는 삶
안젤라 더크워스의 'Grit'(그릿)을 몇 년 전에 읽고, 내 SNS 프로필 대화명은 수년째 Grit이다. 아직 Grit을 대체할 용어를 찾지 못했다. Grit의 사전적 의미는 투지, 기개를 뜻하지만 저자는 Grit을 열정과 끈기의 조합이라고 풀이했다.
그릿
군 복무를 하면서 그릿을 느꼈던 시기가 언제일까? 보다 분명한 건 계급이 오른 시점이 아니라 투지가 넘쳤던 초급간부(소위, 중위) 시절이었다. 무엇보다 국가에 희생하고, 부하들에게 진심 어린 마음으로 헌신을 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운 좋게 초급간부 때 장기복무에 선발되지 않았나 싶다.
초급간부 때는 무엇보다 피부로 와 닿는 게 많았다.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은 동생들을 챙겨주는 게 좋았다. 나는 초급간부 때 위병소를 담당했다. 외출이 자유롭지 않을 땐 부하들과 융통성 있게 잘 빠져나가기도 했다.
한편으론 밖으로 자유롭게 나가지 못하는 소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많았다. 그렇게 친한 동기와 술 한잔하고 들어올 때면 항상 빵집에 들러 빵을 사 왔다.
"오다 주웠다."
근무를 서는 동생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에 따른 감사의 표시였다. 그 당시엔 남에게 표현하는 게 서툴러 나만의 표현방법을 빵으로 대신했다. 훗날 전부는 아니었지만 내 마음을 알아준 소대원도 있었다. 서툴렀지만 내내 끈기 있게 열정을 부렸던 그 시절, 나만의 '그릿'이 가장 충만했던 시절이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
군 복무에 회의감을 느낀 이후 내 그릿은 없어졌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릿이 없어졌기 때문에 회의감을 느낀 것일 수도 있다.
최근 신입사원 연수를 받는 중 현장을 이해하기 위한 현장체험을 했다. 새벽 5시에 나와 현장을 견학하고,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파트너를 맞춰 잠깐이지만 업무를 같이했다. 일일마다 업무일지를 작성하지만 오늘은 프로세스에 대한 숙지보다 현장 직분들의 뜨거운 삶의 온도를 느낄 수 있었다.
'삶'이란 '살다'에 접미사 'ㅁ'을 붙여 생긴 말이 삶이다. 삶은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오늘 새벽 나는 진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카톡 대화명 허울뿐인 그릿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분들은 실전 그릿이었다. 삶에 대한 열정도 있었고, 자부심 끈기도 있었다. 비록 몸은 고된 하루였지만 많은 반성의 시간을 갖게 했다. 삶을 보려면 새벽시장을 나가보라는 말이 있다. 오늘 새벽 빛바랜 내 그릿을 고심하게 됐다.
"개요 → 현상파악 → 문제점 → 개선방안 → 행정사항"
군대에서 보고서를 쓸 때 일정의 흐름이 있다. 이 흐름은 나름 일상에 적용하기도 한다.
문제점까지는 됐지만 어떤 개선방안을 꺼내놔야 할지 아직 고민이다. 행복, 사랑에 이어 답이 없는 해답을 찾게 하는 단어가 '삶'이다.
"어떻게 살아야 진정한 삶일까?"
"빛바랜 그릿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
분명한 건 '재미'라는 물감으로 그려내는 그릿의 삶을 그려내고 싶다. 어디 어느 위치에서도 힘듦의 경중은 따지기 어렵다. 그 속에서 재미를 찾아 그릿을 만들어내는 역량이 필요한 시점이다.
앞으론 어떤 재미난 일속에서 나를 그려낼 수 있을까?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자. - 니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