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혼잣말도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가 되지 않도록
혼자 살면 혼잣말이 는다고들 한다. 자취를 시작하고 두어 해 지났을 때였던가. 옷장 서랍을 열면서 “야앙말이 어디 있나~” 하는 흥얼거림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을 때,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그 전까지 나는 도대체 사람들은 혼잣말을 왜 하는 걸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혼잣말은 말 그대로, 들어주고 대꾸해줄 상대 없이 혼자 하고 혼자 듣는 말이다. 그러면 그냥 속으로만 생각하면 되는 것 아닌가? 대답해줄 사람도 없는데 굳이 소리 내어 말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독립해 나와 혼자 살던 방 안에서 나는 비로소 알게 됐다. 사람은 누구나 말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혼잣말은 쓸데없는 말이라 여기던 시절의 나는 혼잣말을 하는 사람도 불편했다. 그러다가 몇 해 전 직장 동료 ‘아기염소’를 만났다. 지금까지도 나는 아기염소를 능가하는 혼잣말의 대가는 만나보지 못했다. 갓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온 그의 첫인상은 정말 새하얀 아기염소처럼 귀엽고 무해해 보였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뱉어내는 캐릭터였다. “아, 이건 뭐지? 이건 또 왜 이래? 어머, 어떻게 해!”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싶어 쳐다보면, 아기염소를 놀랜 것들은 하나같이 사소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로그인이 좀 느려서(결국 로그인이 됐다), 프린트 설정이 잘못됐다(다시 하면 된다)….
게다가 그의 혼잣말은 들은 척을 하기도 못 들은 척을 하기도 불편한 데가 있었다. 들어주길 바라는 낌새가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혼잣말은 대개 실수에 대한 불안에서 나오는 일종의 ‘밑밥’이었다. 사무실 사람들은 점점 아기염소의 혼잣말에 대꾸를 줄여갔고, 몇 달이 지나자 그의 혼잣말은 정말로 혼잣말이 돼 묻혔다.
긴장을 잘 하고 쉽게 불안해하는 것에 비해, 실제로 아기염소가 실수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제 5년차가 된 그는 꼼꼼하고 재빠르게 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없고, 종종 점심시간에 서로 어울리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조용한 사무실에서 그의 혼잣말 뒤에는 묘한 정적이 따르곤 했다. 얼마 전까지는.
글도 쓰고, 수업도 나가지만 내 본업은 아직 직장인이다. 아직 10년이 안 된 경력 중에, 일 때문에 회사에서 크게 운 적이 그동안 두 번 있었다. 회사 한구석에 숨어서 북받쳐 울던 그 순간들을 돌아보면, 그 하염없는 눈물은 혼자라서 나오는 거였다. 혼자 버티다가 용기를 내서 도움을 요청해도, 혼자 참는 것과 별다르지 않은 조언만이 돌아왔다. ‘인생 결국 혼자 사는 거야.’ 그러나 아무리 꼭꼭 씹어도, 그 단순한 직장 생활의 순리가 목으로 삼켜지지 않아 나는 울었다. 혼잣말이 속에 쌓이면 눈물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런 일은 나만 겪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런데 다들 그런 경험을 하면서도, 당장 누군가의 혼잣말이 들려오는 순간에는 귀를 막고 싶다. 그럴 때 사람들은 혼자일 수 없는 곳에서 혼자라고 여기기를 상대방에게 요구한다. ‘회사에선 누구나 혼자야.’ 틀린 말은 아니다. 그게 순조롭게 내면화가 된다면, 사람과 일을 대하며 확실히 상처를 덜 받고 살 수 있긴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라 하더라도 사실 우리 마음은 다르다. 실은 아무도 혼자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처지에서 눈 돌리고 싶을 때면 ‘사람은 다 혼자다’라는 육중한 문 뒤로 숨어버린다. 일터에 나가 앉아 있을 때 그런 잔인한 합리화는 비일비재로 일어난다.
몇 년 전 두 번째로 혼자 울고 난 뒤 나는 직장인으로서의 자아가 꽤 견고해진 줄 알았었다. 건방진 생각도 했다. 정 못 해 먹겠으면 가타부타 따지는 대신 사표를 쓸 거라고. 더는 회사에서 못 해 먹겠다고 울지는 않을 거라고. 하지만 안정된 줄 알았던 일과 조직이 코로나19로 전부 출렁임을 겪은 뒤, 내 속에서 멀미 같은 혼잣말이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최근에 나는 한 번 더 울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엔 들어주는 이가 있었다.
업무수첩에 몇 번이나 글로 써 내려가 봐도 풀리지 않던 일의 어려움을 결국 말로 옮겼을 때,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시던 팀장님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너만 힘들겠냐고 질책하지도 않고, 이것도 다 지나간다며 참아보라 타이르지도 않았다. 그의 대답은 짧고 단순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어.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지.” 무엇을 어떻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지도 않은 채 그렇게 조금은 덧없이 면담이 끝났다. 그러나 그날 집에 돌아와 기진맥진 잠들었다가 다음날 눈을 떴을 때, 나는 아침마다 짓눌리는 듯하던 번아웃의 괴로움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그 후 몇 주에 걸쳐 팀장님은 조용하면서도 공적인 방법으로 내 어려움을 해결해줬다. 여전히 코로나는 끝나지 않았고 새해가 되며 일은 오히려 더 많아졌지만, 내 ‘회사 생활’은 한결 가볍고 편해졌다.
그리고 그 후로 나는 아기염소의 혼잣말 아닌 혼잣말에 대답해주기 시작했다. 그의 문제는 여전히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고 그 해결책도 스스로 잘 찾아낼 것이다. 그와 특별히 더 친해지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대답을 해줄 뿐이다. “그런가요, 그렇군요, 그랬군요, 그럽시다.” 당신의 말은 허공에 흩어지지 않았다고, 내가 들었다는 표시로.
사실은 나 자신도 아기염소에게 대답을 하고 싶어진 이유를 분명히 알지 못했다. 그러다 얼마 전 팟캐스트를 통해 ‘재양육’이라는 상담심리학 개념을 접하면서 이해하게 됐다. 재양육은 어린 시절 불안정 애착을 형성했더라도, 어른이 돼 꾸준한 환경이 뒷받침되면 다시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그런 환경을 제공하는 사람은 상담 전문가일 수도 있지만 유연하고 어른스러워진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나는 지금도 처음 회사에서 눈물을 터뜨렸을 때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내가 좌절을 겪었을 때 ‘혼자 견디라’는 말밖에 해주지 못했던 사람들도 그게 그들이 경험한 전부였을 것이다. 회사에서 꼬꼬마였을 적 겪은 경험들이 쌓여 만들어진 태도는, 경력이 쌓이고 직급이 올라간 뒤에도 잘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배운 대로 혼자가 됨으로써 얻은 것은 내 목소리는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을 거라는, 들려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포기뿐이었다.
그 무기력은 그날의 짧지만 분명한 소통을 확인하면서 끝났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분주한 팀장님이 내 이야기를 듣기 위해 오롯하게 내줬던 30분.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시간을 내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소리 내어 느낌과 생각을 표현함으로써 자기 존재를, 그리고 자기에게 허락된 자리를 확인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그럼으로써 어쩌면 우리는 서로가 쌓아온 경력의 갈피에 숨은 상처들도 치유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회사 캐비닛 문을 급하게 열다가 옆에 놓인 화분 가지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이파리가 많이 달린 새 가지를 상하게 한 게 미안해서, 끝을 깨끗이 잘라 물에 담가뒀다. 설을 쇠고 사무실에 출근했더니 가지 끝에 도깨비 이빨처럼 튼튼한 뿌리가 쑥쑥 돋아 있었다. 꺾여버린 연한 것들도 다시 자라게 하는 봄의 품 안에 들어왔다. 일도, 나도 자란다.
후기.
2021년 2월 28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 담당 기자님이 「인생 결국 혼자 사는 거라고?」라는 멋진 제목을 붙여 주셨어요.
작년에도 코로나 휴업 때문에 번아웃을 겪었던 이야기에 대해 칼럼을 쓴 적이 있어요. 에세이 『자기만의 공간』에도 썼지만, 일에 대한 제 고민은 사실 꽤 오래 되었어요. 작년부터는 시스템에서 비롯되는 번아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을 해왔습니다. 새해 들어와 그 일이 극적인 해결을 맞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숨차게 글을 쓰고 나서, 참고가 된 자료들을 아래와 같이 뒤늦게 추려 소개하게 됐습니다.
한겨레신문 온라인판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글에서 직접적인 실마리가 된 자료는 아래와 같습니다. 2차 자료의 경우 관련 도서를 괄호로 추가했습니다.
참고자료 1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2015.
‘밀(정지영)’ https://twitter.com/803page/status/1364102713638670336?s=20
(권석천, 『사람에 대한 예의』, 어크로스, 2020 관련).
팟캐스트 <김하나의 측면돌파> 61회
(허지원,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김영사, 2020 관련).
참고자료 2
이외에도 번아웃을 극복하기 위해, 내 자신을 조금 더 잘 보살피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 분들께 보탭니다. 근년 제가 도움 받고 다른 이들에게도 권했던 책들을 조금 더 소개합니다. 가나다 순입니다. 올해 우리의 생활이, 세계가 조금 더 따뜻하고 더 열려나갈 수 있기를.
안주연,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 창비, 2020.
앨릭스 코브, 정지인 역,『우울할 땐 뇌과학』, 심심, 2018.
오은영,『못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2016.
_____, 『오은영의 화해』, 코리아닷컴, 2019.
_____·차상미,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김영사, 2020.
커버 이미지: 백자음각동자당초문대접, 중국 송(宋), 국립중앙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