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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world Feb 05. 2023

'낡음'이 주는 선물

조금은 고리타분한 취향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 거의 오래된 것들을 사랑한다.


음악도 클래식을 좋아하고


대중음악에서 찾자면 우리 아버지 세대가 좋아했던 올드팝을 좋아한다.


미술도 이상하게 현대미술에는 마음이 가질 않고


몇백 년 전 그들의 삶을 추적하기도 어려운 그런 그림들과 작품들만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꼭 '말'에 한정해선 그렇지 않았다.



지금 느끼는 기분을 '이 순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았고,


그렇지 못하면 '그 사람'과 '나'는 '단절'이라고 여겼다.



적어도 나는 그랬던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보지 않을 것 같은 이곳에 고백하건대


나는 꽤 오랜 시간 말 못 할 이유로 엄마를 미워했었다.


때문에 '함께' 있음에도 꽤 오랜 시간 '단절'되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엄마는 화투를 좋아한다.


하지만 다른 식구들은 여러 이유로 화투를 좋아하지 않았고 엄마는 늘 같이 칠 사람이 없어서 외로워했다.


이번 설에 난 정말 , 막연한 호기심에 엄마에게 화투를 배웠다.





그리고 엄마와 몇 시간 동안 앉아서 화투를 친 것 같다.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거의 모든 판을 내가 다 이겼다.




분명 내가 다 이기고 엄마가 돈을 다 잃었는데 엄마는 아이같이 웃으며 좋아했다.


화투를 치고 엄마와 고깃집에서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이야기를 나눴다.





심각한 이야기도. 깊은 이야기도 없었다.


내가 어릴 때 가끔 속상하면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 왜 그랬었냐는 그런 호소도 없었다.


그냥 담담하게 술잔을 기울이며 고기를 먹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젠 깊이 엄마와 '화해'했음을 안다.


'낡음'이 주는 미덕처럼.

'시간'이 주는 깊이처럼.

'클래식'이 시간이 지나면 더 가치가 있어지는 것처럼.


말하지 않아도 해결되는 것이 있음을 이제 안다.





지금은 잘 모르겠는 관계도


가끔은 시간이 대답해 줄 때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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