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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한달살이: 삶의 만족도가 세계 최고인 도시

by 야간비행


비엔나는 2024년 삶의 만족도가 높은 도시 1위에 선정되었다(조사기관: EIU, Mecer, Global Liveability) 비엔나에 이어 스위스 취리히, 덴마크 코펜하겐, 핀란드 헬싱키, 캐나다 밴쿠버가 2~5위 도시이며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 서울, 타이베이가 상위 국가에 선정되었다. 평가항목은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 우수한 의료 및 교육 시스템, 양질의 대중교통, 쾌적한 자연환경, 문화·예술·여가 인프라, 사회 복지와 안정성 등이다.


조사기관과 항목에 따라 서울이 비엔나보다 삶의 만족도가 더 높게 나오는 경우도 있어서 단순비교가 곤란하지만 비엔나가 서울에 비해 확실히 뛰어난 점은 쾌적한 자연환경이다. 매일 대여섯 시간씩 비엔나 시내와 공원을 걸으면서 쾌적한 환경속에서 사는 비엔나 시민들은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도시에 비해 탁월하게 뛰어난 점이 녹지비율이다. 비엔나의 녹지비율은 전 세계 대도시중 최상위권이다. 서울은 산을 녹지에 포함해도 녹지비율이 27%인데 비엔나는 도심 내에 있는 공원만으로도 54%에 달하며 도시의 절반이 공원, 숲, 포도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1000만이 거주하는 서울보다 인구 200만의 비엔나의 녹지가 더 넓으며 1인당 공원면적이 서울보다 8배나 많다. 비엔나 시민들은 공원 내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매일 대여섯 시간을 구도심과 공원을 걸어 다녔다. 구도심을 걸으면서 중세풍 석조 건물의 우아하고 화려함에 감탄하였지만 그보다는 도시 곳곳에 조성된 아름답고 자연친화적인 공원 그리고 그곳에서 휴식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공원을 모두 걸어보겠다는 생각으로 매일 시내 곳곳의 공원을 찾아다니며 운동 겸 산책을 즐겼다.


1. 쇤부른 궁전 정원 및 공원

세계 여행을 자주 다니다 보니 아름다운 정원이나 공원에 갈 기회가 많다. 내가 가본 정원중 쇤부른 궁전 정원(공원)이 가장 아름다웠다. 방문시기가 6월 초 장미가 한창 피어나던 시기라서 감동이 더했을 수도 있으나 꽃이 아니더라도 정원 전체가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나무를 예쁜 모양으로 전지하고 비틀어서 신기한 모습을 연출한다. 쇤부른 궁전 내부의 아름다운 모습과 잘 어울리는 정원이다. 면적도 축구장 50개 크기로 돌아보는 데만도 꽤 시간이 걸린다.

20250612_153117.jpg 쉔부른 궁전의 장미정원
20250612_160104.jpg 쉔부른 궁정의 식물원
20250612_152527.jpg 쉔부른 궁전 정원 통로

정원은 자연스럽게 공원으로 연결된다. 공원은 쇤부른 궁전 뒤편 구릉으로 이어지며 정원을 포함하여 가로 1.4킬로 세로 1.5킬로의 넓은 면적이다. 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으며 숲 사이로 산책로를 거미줄처럼 조성해 놓았다. 숲길의 산책로를 따라 이리저리 걷는 맛이 좋으며 산등성이에서 보이는 궁전과 구시가지의 모습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20250612_163605.jpg 쉔부른 궁전 뒷산: 좌우측으로는 나무가 빽빽한 숲

2. 벨베데레 궁전 정원과 비엔나 대학 식물원

벨베데레 궁전은 구스타프 크림트의 '키스'로 유명한 미술관이 있는 합스부르크 시대 궁전이다. 궁전건물 앞의 정원이 아름답긴 하나 그늘이 없어 햇볕을 받으며 걷기엔 다소 부담스럽다. 그러나 궁전은 비엔나 대학의 길이 1킬로, 폭 200미터 의 넓은 식물원과 스위스 정원이 연결되어 있어서 산책하기 좋은 공간이다. 궁전의 아름다운 건물과 정원을 감상하고 비엔나 식물원의 여러 야생식물들을 관찰하며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20250610_133226.jpg 벨베데레 궁전 정원: 우측 숲이 비엔나 대학 식물원
20250610_145910.jpg 비엔나 대학 식물원 사막식물구역

3. 프라터(Prater) 공원

길이 7킬로 폭 1~2킬로의 거대한 공원으로 여의도의 두배 크기이다. 공원의 시작점은 도심이지만 공원의 끝지점은 도시 외곽이 되어버린다. 공원 내에 놀이공원은 25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130년 된 관람차가 아직도 운영되고 있어서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공원 전 지역에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공원의 절반정도는 나무가 빽빽이 우거져 있고 나무 사이로 구불구불 산책로가 지나간다. 공원 내에 1킬로가 넘는 길게 뻗은 연못이 여러 개 있고, 주변은 정글처럼 우거진 나무와 갈대가 뒤덮고있다.

20250613_173210.jpg 프라터 공원 주도로: 이 도로가 직전으로 4킬로이다

프라터 공원을 구석구석 걷는데 이틀동안 매일 15000보씩 걸었다. 숲길은 강원도 깊은 산을 걷는 것처럼 하늘이 보이지 않아 혼자 걸으면서 겁이 날 정도이다. 연못 옆 정글 같은 길은 현지인도 잘 다니지 않는지 사람 다니는 흔적이 희미하다. 한국에서 구석구석 트래킹 하던 것처럼 숲 깊은 곳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녔다. 이곳 6월은 덥지는 않으나 햇빛은 아주 따갑다. 여름에 더울 때는 프라터 공원의 숲길을 걸어 다니면 좋은 피서가 될듯하다.

20250613_175212.jpg 프라터 공원의 절반은 사진과 같은 숲이다.

4. 도나우아우엔 국립공원

비엔나는 도나우 강이 도시를 관통하고 있다. 강의 서쪽은 구도시이고 동쪽은 신도시이다. 구도시는 5층의 석조건물로 중세풍의 도시이며 도시외곽과 도나우강 동쪽은 고층빌딩과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도나우 강변은 한강공원처럼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특별히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 있다. 여의도 서너 배 크기로 얕은 구릉으로 되어 있으며 숲이 우거졌다. 산악자전거나 하이킹하기에 좋은 곳이다. 중간에 제법 큰 자연저수지가 있어서 시민들이 여름에 수영을 즐긴다. 숲길만을 걷는다면 프라터 공원과 차이가 없지만 이곳의 특별한 것은 수영할 수 있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는것이다.

20250614_161855.jpg 저수지 곳곳에 나체로 수영과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저수지를 둘러보다 깜짝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나체로 수영과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어디로 눈을 둬야 할지 난감했다. 사람들이 없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걸었지만 나체로 누워 있거나 걸어 다니는 사람을 비껴갈 수는 없다. 나체족은 주로 나이 든 남자들이다. 여성도 있지만 몸매가 좋은 여자들 보다는 아닌 여자들이 더 많다. 한 곳에는 일행으로 보이는 60대 배 불뚝 남자들 여러 명이 나체로 놀고 있다. 목욕탕에서 보던 모습을 나무 밑에서 보니 웃음이 나온다.


2년 전 삿포로 노천탕에 간 적이 있다. 주변이 숲으로 막힌 호수 옆에 나체로 앉아 있었다. 당시 호숫가에서 아름다운 경관을 보면서 앉아 있다 보니 묘한 기분이 들면서 해방감이 느껴졌다. 이러한 해방감 때문에 60대 남자들이 볼품없는 알몸으로 여럿이 모여 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몸매 과시가 아니라 해방감과 자유를 느끼기 위한 선택일 것이다.


5. 비너베르크 공원

도시 중간에 여의도 절반 크기의 커다란 공원이 있다. 이 공원은 야트막한 산을 그대로 살려서 공원으로 조성했다. 숲 속에 꾸불꾸불 기다란 산책로가 있으며 공원 중간에 커다란 자연저수지가 있다. 저수지에서는 사람들이 수영과 일광욕을 즐긴다. 숲 속 산책길을 걷고 저수지 주변길을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숲이 우거지고 오르막 내리막이 있어서 걷는 맛이 좋다.

20250604_153149.jpg 도시 중간에 이러한 숲이 있는 커다란 공원이 있다

저수지 주변 큰길을 걷다가 물가로 들어가는 좁은 길을 들어서니 구석구석에 사람들이 벗고 앉아있다. 여기도 나체족들이 숨어있다. 공개된 공간에서는 민망하니, 나무 그늘진 물가에서 조용히 일광욕을 즐기는 듯했다. 도나우 국립공원 저수지에서와 다른 점은 남들의 시야에서 벗어나서 인지 젊은 나체족이 많다. 나체족들과 눈이 마주치니 당황스럽다. 그들도 몸을 돌려 주요 부분을 감춘다. 험한 길을 찾아 트래킹 하던 습관 때문에 구석길로 들어간 건데 그들이 보기에는 내가 관음증 환자로 보일까 봐 민망하다. 더 이상 구석구석 트래킹을 멈추고 재미없는 큰길로만 걸었다.

20250614_193612.jpg 공원 중간 저수지에서 수영과 일광욕... 좌우측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나체족들이 일광욕을 한다.

6. 도나우 강변의 둔치공원과 도나우인젤 섬

비엔나는 서울의 한강처럼 도나우 강이 도시중간을 흐른다. 도나우 강에서 분리된 지천은 구도심 옆을 휘돌아 15킬로를 흐른 후 다시 도나우 강으로 합류된다. 한강 중간에 노들섬, 밤섬, 선유도가 있듯이 도나우 강 중간에는 도나우인젤이라는 섬이 있다. 도나우인젤은 길이 21킬로, 폭 1킬로 내외로 빼빼로처럼 좁고 긴 섬이다.

스크린샷 2025-06-16 013013.png 비엔나 중간을 흐르는 도나우강. 도나우 강 중간에 긴 띠처럼 생긴 섬이 있다. 비엔나 서쪽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배산임수 지형이다.

도나우 강과 지천 그리고 도나우인젤섬은 한강둔치처럼 공원, 체육시설이 들어서 있으며 자전거도로와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이곳의 자전거도로와 산책로를 모두 합하면 100킬로가 넘는다. 이 세 곳은 항상 자전거, 전동보드, 조깅, 하이킹 족들로 붐빈다. 어느 곳에 가던지 운동과 관광 삼아 매일 15000보를 걷고 있는데 비엔나는 매일 새로운 길을 걸을 수 있어서 좋다. 걷는 것도 간데 또 가는 것은 재미가 반감한다. 부다페스트에서는 매일밤 숙소옆에 있는 도나우강변을 걸었다. 가던 곳 또 가다 보니 세계 최고라는 부다페스트 야경도 보기 싫어졌다. 그런데 비엔나는 강변만 걸으려 해도 15000보씩 10일을 걸어야 한다. 거기에 각종 공원까지 더하면 매일 새로운 길을 걸을 수 있다.

20250603_170829.jpg 도나우인젤섬 안에는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7. 비엔나 구도심 내의 여러 공원들

비엔나 구도심에는 핵심시설이 밀집해 있다. 그중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인 호프부르크 궁전, 국회의사당, 비엔나시청사, 카를성당, 보티프 성당 앞에는 제법 큰 규모의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운동삼아 걷기에는 규모가 좀 작으나 많은 사람들이 공원을 찾아 산책이나 휴식을 즐긴다. 국회의사당 앞의 공원은 예쁘게 조성되어 항상 꽃들이 피어있고 5, 6월에는 장미가 활짝 피어 향기가 가득하다.


호프부르크 궁전 앞 공원은 멋진 건물들 사이에 아늑하게 위치하여 항상 많은 시민들의 휴식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돗자리를 펴고 앉아 독서, 썬텐하거나 여러 명이 음식을 먹으며 노는 여유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요한스튜라우스 동상이 있는 시민공원에도 많은 시민들이 산책과 휴식을 즐긴다. 이외에도 테니스 코트 두세 개 크기의 소규모 공원이 시내 곳곳에 있어서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20250531_195501.jpg 국회의사당 앞 정원: 6월은 장미가 절정
20250531_171717.jpg 호프부르크 궁전 앞 공원: 시민들의 휴식처이다.

8. 비엔나 서쪽의 야산들

오래된 도시들은 대부분 배산임수이다. 강을 통해 물류와 교통이 용이하고 위급시에는 강이 좋은 방어막이 되며 뒤쪽의 산은 적의 침공을 저지할 수 있는 천연 방어벽이 되기 때문이다. 비엔나는 배산임수의 도시이다. 앞으로는 도나우 강이 흐르고 뒤에는 야산들이 도시를 감싸고 있다. 뒤편의 야산은 일이백 미터 정도로 높지 않다. 산에는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으며 산책로, 산악자전거도로, 승마도로 등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유럽 중부의 산은 생긴 게 비슷하다. 지질학적 연대가 비슷해서 일 것이다. 산은 높지 않고 파도처럼 오르내리는 구릉으로 이루어졌으며 산에 있는 나무는 잎이 크지 않은 활엽수들이다. 겨울에는 잎이 져서 황량하게 변하나 여름에서 싱그러운 신록이 우거져서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20250604_165144.jpg 비엔나 서쪽 산 위에서 보면 비엔나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매주 한두번 산 아래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산길을 걷는다. 산이라기보다 구릉이어서 산악자전거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이다. 도시 내에 있는 공원은 오르내림이 없어서 걷는 것이 밋밋한데 도시뒤편의 야산은 비록 낮은 구릉이긴 하지만 오르내림이 있어서 걷는 맛이 좋다.

20250605_172953.jpg 비엔나 주변 산: 숲이 우거진 길을 커플이 걷고 있다. 한국과 달리 일상복 차림으로 산행한다.

한달살이 하는 곳마다 매일 15000보를 목표로 좋은 곳을 찾아 걸어 다닌다. 걸을 때의 경치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도시를 걸을 때는 아름다운 건물들을 보면서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거리의 분주함과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생동감을 느낀다. 그러나 인파 사이를 걸으려면 이리저리 살펴야 하고 눈길 가는 곳도 많아서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콘크리트 위를 걷게 되어 다리도 쉬이 피곤해진다.


공원이나 산을 걷게 되면 푸르른 신록이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 바닥이 푹신하여 발이 편하며 피로감을 느끼지 못한다. 마음이 편안하고 한가하니 여러 생각에 잠길 수 있다. 미래 계획도 세우고 삶에 대한 사색과 성찰을 하며 다음에 쓸 글을 구상하기도 한다. 도시를 걷고 나면 많이 봤다는 뿌듯함이 생기고 자연을 걷고 나면 힐링으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비엔나에서 지내보니 지금까지 한달살이 했던 13개 도시중 가장 만족도가 높다. 비엔나 시민의 삶의 만족도가 세계 1위인 것처럼 나의 한달살이 만족도도 13개 도시중 1등이다. 나에게 비엔나가 좋은 것은 역사와 예술의 도시에 더하여 전 세계 도시중 가장 쾌적한 걷기 좋은 자연환경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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