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름 피서지, 몽골 울란바토르 한 달 살기

시원한 몽탄신도시에서 유유자적

by 야간비행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28일, 나는 서울의 열기를 뒤로하고 시원한 몽골 울란바토르로 한 달 살기를 떠났다. 작년에 이사한 후 해외를 돌아다니느라 에어컨 설치를 미뤘는데, 차마고도 배낭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 밤마다 열대야이다. 찬물을 끼얹고 선풍기를 틀어도 온몸이 끈적거리고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되었다. 몇 달 전에 예약해 둔 몽골 울란바토르 출발만을 기다리며 열흘간 고행의 시간을 가졌다.


나이가 들수록 면역력이 약해져서인지, 추위와 더위에 대한 저항력이 예전 같지 않다. 억지로 견뎌야 할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피할 수 있다면 굳이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을 찾아다니고, 추위를 피해 따뜻한 곳을 찾아다니는 ‘기후 난민’ 생활을 선택했다.


한국의 추운 겨울을 피할 수 있는 가까운 나라는 많다. 동남아시아는 물론이고, 중국 남부나 일본 오키나와도 좋은 선택지다. 하지만 더운 여름철에 가까운 곳에서 시원함을 찾기란 쉽지 않다. 북유럽이나 캐나다, 알래스카는 시원하지만 오가기 힘들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나마 가까운 곳은 몽골과 중국 북부 정도이다. 과거에는 일본 홋카이도도 7, 8월에 선선했다고 하지만, 온난화로 인해 더 이상 시원하지 않다. 2023.8월에 한달살이 한 홋카이도는 서울과 다름없이 푹푹 찌는 날씨였다. 지난달에 다녀온 중국 북부 지역은 시원했지만 언어 소통의 불편함이 아쉬웠다.


몽골 울란바토르는 여러 면에서 여름철 피서지로 최적이다.

압도적으로 쾌적한 날씨: 7~8월 평균 기온이 20℃ 내외로, 한국의 초가을 날씨와 비슷하다. 습도가 낮아 끈적임 없이 쾌적하고, 열대야 걱정 없이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저렴한 물가: 숙박비, 식비, 교통비 등 전반적인 물가가 동남아 수준으로 저렴하다.

가까운 거리와 짧은 시차: 인천에서 직항으로 3시간 30분이면 도착하며, 시차도 1시간밖에 차이 나지 않아 여행 피로가 적다.

반가운 한국 인프라: 이마트, 롯데마트, GS25, CU 등 한국 브랜드가 많아 생활하기 편리하다. 한국 식당도 많고, 한국어를 구사하는 현지인도 꽤 있어 의사소통도 수월한 편이다. 오죽했으면 '동탄신도시'와 비슷하다고 해서 '몽탄신도시'라고 했겠는가?

도시와 자연의 조화: 도심에서 박물관과 사원을 둘러보는 도시 여행을 즐기다가도, 차로 1~2시간 거리에 있는 테를지 국립공원 등 광활한 초원에서 승마와 하이킹을 즐길 수 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시내 교통 체증이 심하고, 관광객이 많은 곳을 제외하면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 도심 자체의 볼거리도 부족하다. 하지만 7, 8월에도 시원한 날씨 하나만으로도 이런 아쉬움들은 용서가 된다.


외국처럼 느껴지지 않는 울란바토르에서의 일상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해 밖으로 나오자, 시원하다 못해 쌀쌀한 기운이 느껴진다. 3시간 전 서울의 끈적이는 열기와는 완전히 다른 공기이다. 가방에 넣어둔 바람막이를 꺼내 입으며, 이리 오기로 한 결정에 만족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길 주변은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다. 2년 전 처음 왔을 때는 이 광경에 눈을 떼지 못했지만,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차마고도를 여행하며 더 넓고 멋진 풍경들을 접해서인지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다.


2년 전 테를지 국립공원에 있는 게르에 머물면서 하이킹, 승마, 낙타 타기 등 관광을 마쳤다. 이번 한 달은 시원한 곳에서 그동안 밀린 글을 쓰고 내년 여행 계획을 세우며 유유자적 지내기로 했다. 몇 달 전 에어비앤비를 통해 도시 중심부에 있는 넉넉한 크기의 숙소를 예약했다. 한 달에 120만 원이니, 물가를 고려하면 합리적인 가격이다. 좀 촌스럽긴 하지만 한 달 살이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잘 갖춰져 있는 집이다. 한국의 중소도시에 와 있는 것처럼 친숙한 분위기 속에서 한 달 살기를 시작했다.


숙소 근처에 한국 브랜드인 메가커피 카페가 있다. 콘센트가 잘 갖춰져 있어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아지트 역할을 하고 있다. 나도 이곳을 나의 아지트로 삼아 매일 노트북 작업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한 달 살기 할 때는 카페에서 노트북 펴기가 부담스러웠는데, 이곳에서는 도서관처럼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부담이 없어 마음이 편하다. 두 시간마다 음료나 케이크를 주문하며 알바생들의 환대를 받고 있으며 칸막이가 있는 가장 좋은 자리는 한 달 내내 내 차지이다.


해외 한 달 살기를 하면서 노트북으로 글쓰기, 인터넷 검색, 유튜브 시청을 주로 했지만, 이번에는 AI와의 대화가 추가되었다. Gemini나 챗GPT와 대화하며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질문과 답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지식이 여러 방향으로 확장된다. 관심 있는 분야의 유튜브를 보는 것도 공부가 되지만 쌍방향으로 묻고 반박하는 AI와의 대화는 지적 자극과 함께 사고의 폭을 넓혀준다. 매일 두세 시간씩 AI와 대화하며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 달 살이를 2~3주 체류 여행으로 변경

그동안 14개국에서 한 달 살이 했다. 한달살이가 계속되다 보니 한 도시에서 한 달씩 지내는 것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진다.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첫 1주일이 지나면 더 이상 볼거리가 없어지고, 2주 차부터는 현지인처럼 일상적인 도시 생활을 하게 된다. 경험이 쌓이고 익숙해지다 보니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것에 대한 신선함이 없어진다. 더 이상 한 달이라는 시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다.


한달살이 대신 ‘2주 또는 3주’ 체류로 바꾸려 한다. 볼거리가 많은 도시는 3주, 볼거리가 적은 도시는 2주 정도 머물면서 신선함과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또한 ‘50개 도시에서 한 달 살기’ 위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점도 걱정이다.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건강이 언제 나빠질지 모르는데, 더 부지런히 움직이기로 했다.


몽골 도착 첫 주는 내년 여행 계획을 세우고 항공과 숙소를 예약하며 보냈다. 항공권은 6~8개월 전이 가장 저렴하며, 에어비앤비 숙소도 최소 3~4개월 전에 예약해야 리뷰가 좋은 곳을 잡을 수 있다. 6개월 전에 여행계획 세우는 것은 나중 무슨 일이 생겨서 못 갈 수 있는 위험성은 있지만 경제적이고 여러모로 유리하다. 은퇴백수에게 특별한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아 과감하게 6개월 뒤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내년 전반기에는 북아프리카, 남유럽, 발칸국가등 10여 개 국가를 2~3주씩 체류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항공과 숙소를 예약했다.


여행을 계획하고 예약하는 데는 의외로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여러 나라를 갈 때는 경로와 날짜에 따라 항공권 가격이 두 배 이상 차이 나기도 해 고려할 것이 많다. 숙소를 예약할 때도 품이 많이 든다. 전에 묵었던 사람들의 리뷰를 보고 주변 환경이 나의 콘셉트에 맞는지 등을 검토하는 것도 시간이 걸린다.


어렵게 숙소를 선택해서 예약했는데 주인이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 단독숙소는 거절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방만 사용하고 욕실, 주방을 공유하는 공유숙소는 손님을 거절하기도 한다. 젊은이들 가는 클럽에 아재 출입이 거절당하듯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숙소는 나이 많은 손님을 거절하기도 하며 여성이 주인인 집에서 방만 사용하는 공유 숙소의 경우에도 손님을 가려 받기도 한다. 이번 10여 개의 숙소를 예약하면서 4번 거절당했다.


내가 왜 거절당했을까 생각하니 에어비엔비 내 프로필이 문제인 것 같다. 내 프로필에 '은퇴 후 여행작가로 해외여행 중'이라고 소개하고 증명사진을 올렸다. 집주인이 보기에는 은퇴한 늙은이가 집안에 죽치고 않아 글만 쓰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거절한 듯싶다. 프로필을 '비즈니스 여행 중'으로 바꾸고 젊어 보이는 사진으로 바꿨다.


하루 마무리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AI와 대화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햇빛이 약해지면 집으로 돌아와 시내 나들이를 한다. 이마트에서 장을 보기도 하고, 버스를 타고 무작정 시내를 돌아보기도 한다. 맛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는 소화 겸 운동 삼아 두세 시간 걷는다. 때로는 수흐바타르 광장을, 때로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개천 길을, 때로는 도로를 따라 걸으며 하루 만 오천 보를 채운다. 집에 돌아와 시원한 맥주 한 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울란바토르의 한달살이는 외국이지만 외국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 이상하고 푸근한 한 달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차마고도 여행 2: 천장남로 길(더거에서 다시 청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