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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 쓰는 트레이너 Jan 02. 2020

"저는 체육전공자 입니다"

무리해서라도 체육을 전공하고 싶었던 이유.

‘털썩’

락커룸 한구석에 대(大) 자로 누워버렸다. 회원님이 지나다니든, 리셉션 직원이 있든 말든 그냥 뻗어버렸다. 천장만 멍하니 응시하고 숨을 골랐다. 하지만 목에서 쇠 냄새가 나고, 심장이 정말로 ‘뻥’하고 터질 것 같아서 호흡을 가다듬기도 쉽지 않았다. 눈을 뜨고 있으면 천장이 핑핑 돌고, 그렇다고 눈을 감자니 땅이 빙빙 돌면서 내 몸이 점점 천장 쪽으로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했다. 너무 힘든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서 더 괴로웠다. 그저 끙끙대며 몸이 안정되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모든 센터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처음 트레이너가 되면 수습 시간을 거친다. 보통 교육팀장이나 선배들이 돌아가면서 교육을 해준다. 운동방법은 당연하고, 운동지식을 어떻게 회원들에게 설명하는지 등등을 배운다. 이날은 PT팀의 팀장에게 교육을 받는 날이었다. 나,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동갑내기 신입 A가 함께 교육을 받았다. 그는 기초체력 단련을 위해 달리기를 하겠다고 했다. 팀장은 우리 셋이 함께 뛰는데, 자신보다 속도가 늦어서도, 먼저 내려가도 안 된다고 했다. 무서웠다. 팀장과 A는 구기 종목 선수 출신이었다. 나도 달리기에 어느 정도 자신은 있었지만, 선수 출신들과 비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팀장은 평소에 내가 비전공에, 선수 출신이 아닌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시작도 전에 주눅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거꾸로 생각하면 이번에 잘하면 조금은 인정해주겠지 했기 때문이다.      


 그는 워밍업을 시작으로 5분마다 속력을 올렸다. 시속 6km, 8km, 12km까지 올렸다. 보통 빠른 걸음을 걷는다는 사람들이 시속 5.6km 정도다. 시속 10km라는 숫자가 보이자 힘이 부치기 시작했다. 언제쯤이나 내려가게 될지, 거리를 얼마나 더 뛰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으니 더 힘들었다. 20분이 넘어가니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았다. 슬쩍 옆을 봤다. 나만 힘든 것은 아니었나 보다. 팀장도, A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마른행주를 쥐어짜듯 다시 한번 다리를 쥐어짜서 굴렀다. 30분쯤 되었을 때, 천상의 소리가 들렸다. ‘삐비 비비빅’ 팀장이 속력을 줄였다. 못 들은 척하고 그냥 뛰었다. 그가 줄인다고 내가 줄일 순 없다. 다만 그 소리가 천상의 소리로 느껴진 까닭은, 그가 속력을 줄였기에 여기서 더 올리지는 않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만으로 살았다 싶었다. 그때부터는 오히려 힘이 났다. 이게 마라톤 선수들이 느끼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인가 싶었다. 그런데 그때, 한 번 더 ‘삐비 비비빅’ 소리가 났다. 이번엔 A였다. 잘못 본 줄 알았다. 팀장은 나와 눈이 마주쳤고, 그는 A를 흘겨봤다. 팀장의 눈빛에 간이 콩알만 해져서 오로지 정면만 보고 뛰었다. 1분이 1시간 같이 느껴지던 시간이 흘러 45분이 되어서야 팀장은 “20분 안에 씻고 나와”라는 말만 남기고 내려갔다. 안도감과 함께 힘이 모두 빠져 후들거리는 손으로 겨우 러닝머신을 멈추고 샤워실로 갔다.     




 나는 A를 이기거나 체대 출신들에게 보란 듯이 보여주려고 그렇게나 악착같이 뛴 게 아니었다. 비전공에, 비선출이어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운동을 만만하게 봐서 트레이너가 되려고 한 게 아니라는 것만 알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건 혼자만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락커룸에 누워서는, 눈물까지 날 것 같아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악착같이 뛰어도, 자격증을 닥치는 대로 따도 알아주지 않길래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트레이너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지만을 고민했다. 그날 내린 결론은 체육 전공자가 되는 거였다.      


 학교를 찾아다녔다. 일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곳, 대부분의 체대처럼 실기 위주 커리큘럼이 아닌 트레이닝에 집중하는 학과로 알아봤다. 트레이너로서 제대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6년 전 그날의 치기 어린 마음으로 무턱대고 대학교에 다시 입학했었다. 일을 병행하면서 학교에 다니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지만,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다녔다. 그렇게 체육 전공자로 다시 시작했다. 순서는 바뀌었지만 늘 발목 잡던 ‘비전공자’ 딱지를 보란 듯이 떼어버렸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막상 졸업장을 받아드니 '이게 뭐라고' 하며 허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체육 전공하길 참 잘한 것 같다. 비록 학교에서 실무는 전혀 배울 수 없었지만, 그 바탕이 되는 지식을 얻었다. 회원들 앞에서 더 자신 있을 수 있었다. 전공자로서 자부심을 획득했다. 너무 무서웠던 처음 그 선배들이 지금은 너무 고맙다. 이제 누구 앞에서도 자신 있게 말한다. “저는 체육 전공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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