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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 쓰는 보디빌더 Dec 17. 2019

우연을 가장한 운명,  벤치프레스와의 만남

처음 운동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야기

    

 그와의 첫인상은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그가 너무 못생겼고, 그는 내가 너무 뚱뚱하다고 생각했다. 첫날에는 서로가 ‘밥만 먹고 가자’ 했다. 하지만 당사자들과 상관없이 옆에서 부추기는 사람들이 꼭 있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만나다 보니 조금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속으로 얼굴은 못 쓰겠지만 몸이 참 이쁘다고 생각했다. 훗날 그도 말하길, ‘살만 빼면 얼굴은 괜찮겠다’ 생각했다고 했다. 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결국 사귀게 되었다.     


 알고 봤더니 그는 운동밖에 몰랐다. 10km의 아르바이트 출퇴근은 자전거로 다니고, 아깝게 버스를 놓치면 다음 정거장까지 뛰어가서 버스를 따라잡아 타는 남자였다. 그리고 저녁엔 꼭 헬스를 했다. 가장 좋아하는 운동 부위는 ‘가슴’이고, 가장 자신 있는 동작은 ‘벤치 프레스(가슴운동 중 가장 대표적인 운동 동작)’였다. “오늘 어디 운동했어?”하고 물으면 “가슴!”이라 대답했고, “어제는?” 하면 “벤치 프레스!”했다. 나는 그에게 ‘벤치 프레스’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이런 생활이 몸에 익어있는 그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 나보다 ‘10kg’ 덜 나갔다. 그는 자꾸 나에게 운동을 권했다. 다이어트를 시키려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인 게 느껴졌다. 실제로 다이어트의 ‘다’ 자도 안 꺼냈다. 그저 차 한잔 마시고 걷고, 밥 먹으면 오락실 농구공이라도 던지고, 사격이라도 하고, 나중에는 아예 배드민턴 라켓을 사 왔다. 나에게는 그의 순수함만큼 다가올 데이트가 두려웠었다.
 

 사귄 지 1년쯤 되었을 때 갑자기 내가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인연이 되려고 했는지, 그도 회사 일로 서울에 있는 기숙사에 들어갔다. 지역이 달라지고 아는 사람도, 할 일도 딱히 없자 그는 허구한 날 헬스장으로 초대했다. 혼자 하면 심심하다고 같이 하자고 졸라댔다. 이쯤 돼자 두려운 게 아니라 괴로웠다. 태어나서 처음 가는 헬스장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투박하게 생긴 기구들은 겁부터 먹기에 충분했다. 어쩌다 그가 운동 동작을 알려줘도 단순한 동작이 지루하기 짝이 없었고, 무겁고 딱딱한 쇳덩이는 굳은살 하나 없는 손바닥을 쓰라리게 했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그가 내심 싫지 않아서 겨우 따라다니긴 했지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얼굴을 하고 다녔다. 헬스장에 도착하면 싱글벙글 운동삼매경에 빠진 그를 뒤로하고 나는 러닝머신만 탔다. 10분이 그렇게 길게 느껴졌다. 탈 때마다 온몸이 가려웠다. 나는 매번 허벅지가 시뻘게지도록 긁어댔다. 허벅지가 가렵지 않을 때쯤 되자, 그는 아예 나를 헬스장에 등록시켜버렸다. 그런데 이 남자가 나를 자기 마음대로 등록시켜놓고는 회사 일로 운동을 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룰루랄라 신났다. 귀찮고 힘든 운동 안 가도 되고, 무거운 쇳덩이 밑에 깔릴 뻔하지 않아도 됐다. 일과가 끝난 저녁, 운동가지 않고 빈둥대는 시간이 참 행복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무기력해졌다. 때마침  친구들이 졸업을 하거나 취업을 하던 시기였다. 나는 어떤 쪽에도 속하지 못했다. 낮에는 편의점 알바를 하고, 그가 없는 저녁은 늘 빈둥거렸다. 조금씩 조금씩 불안해졌다. 방에만 박혀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말수가 급격히 줄었다. 보다 못한 그가 시간을 쪼개 나를 찾아왔다. 밥부터 먹이더니 한 마디 했다. “그러니까 운동이라도 해,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니 몸은 변하니까.” 그 말이 그렇게 서러우면서도 위로되고, 안심됐다. 그리고 그가 참 멋있었다. 지금은 남편이 된 그가, 이 말 덕분에 남자 친구에서 남편으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운동을 하게 되었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운동을 좋아했냐거나, 뚱뚱했으니까 작심하고 다이어트를 했느냐고 한다. 하지만 전혀 아니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알고 싶지 않았다. 육중한 몸이었지만 몸매에 불만이 없었다. 나는 순전히 ‘벤치프레스’라는 별명의 남자 때문에 운동을 시작했다.   

   

 외국어를 잘하고 싶으면 외국인을 만나라는 말처럼, 운동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운동의 세계로 스며들 수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운동을 해 온 수년간, 때로는 오기로 이 악물고 한 적도 있었고, 다이어트를 목표로 운동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오기가 운동을 통해 증발되면 요요가 찾아왔고, 다이어트를 목표로 하기엔 의지 자체가 없었다. 늘 그가 그만두고 싶은 순간마다 귀신같이 찾아와 운동을 데려갔다. 나는 그렇게 ‘벤치프레스’를 통해 ‘운동’이라는 내 인생의 운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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