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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네시스 Sep 26. 2023

홋카이도를 여행하는 뚜벅이를 위한 안내서 - 11

일본 현지인들에게도 관광지인 하코다테로

삿포로를 베이스캠프로 하는 일정이 1차적으로 끝나고 4일 차에는 하코다테로 이동하여 1박을 하기로 했다. 이미 한국에서 하코다테 숙소 1박을 예약해 두었기 때문에 앞선 일정들과는 달리 변동이 불가능한 일정이었다. 비가 안 오기만을 간절하게 빌었는데 아침부터 날씨가 매우 꾸물꾸물거렸다.(테루테루보즈라도 매달아 놓을 걸 그랬다.) 일기예보에서도 오후에 비가 오다가 저녁쯤 그친다고 했다. 저녁에 하코다테야마 전망대에 올라가는 일정은 날씨가 흐리기만 해도 좋은 풍경을 보기 힘든데 낮동안에는 아예 비가 온다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우선 원래 계획대로 오누마국정공원까지 가보기로 하고 도착한 후에 날씨를 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기로 했다. 처음 잡았던 숙소와는 이제 마지막이었는데 번번이 새벽같이 길을 나서는 나는 맨날 텅 비고 고요한 로비만 보게 된다.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인사를 들어본 것이 언제적인지도 모르겠다.   



텅 비고 고요한 로비



한 동안 들고다니지 않아도 되었던 옷가지며 잡다한 짐을 모두 챙겨 나서다 보니 삿포로역까지 이동하는데 힘이 두배로 들었다. 출국할 때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캐리어 때문에 추가수화물 비용을 내는 게 싫어서 배낭에만 바리바리 쌓아서 왔는데 이럴 땐 슬슬 굴리면 되는 캐리어가 참 그립다. 오타루에서 산 간식이며 기념품 등으로 짐이 더 추가되었기 때문에 도무지 삿포로역까지 걸어갈 자신이 없어서 이날만은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적은 돈으로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6시에 출발하는 하코다테행 열차는 JR패스로 지정석 예약이 가능했다. 오누마공원까지 지정석을 예약하면서 좌측 창가석을 달라고 부탁드렸다. 삿포로에서 하코다테로 가는 선로는 좌측으로 우치우라만을 끼고 달리기 때문에 바다를 보고 싶다면 좌측창가에 앉아서 가는 것이 좋다. 좌측 창가에 앉는다면 오누마공원 근처에선 고마가다케 산을 보기에도 좋다. 날씨가 좋다면 우측으로도 요테이산이나 우스산을 볼 수 있으니 사실 어느 쪽으로 앉아도 크게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취향의 문제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아침식사를 하지 않아 조금 출출했었기에 전에 오타루에서 산 간식중에 포테이토 파이 하나를 꺼내먹었다. 한국에선 기차에서 무언가를 먹는 것이 민폐라는 분위기인데 의외로 일본에서는 도시락 기타 각종 먹거리를 먹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일본에서의 기차여행은 이동수단이라는 의미 이외에도 그 자체로 여행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인 것은 아닐까 싶다. 여행지에서 음식을 먹는 것까지가 여행의 완성 아니겠는가.  



하코다테 가는 길에 먹은 포테이토 파이 - 맛은 쏘쏘
하코다테 가는 길 - 우치우라만 풍경
하코다테 - 삿포로를 연결하는 호쿠토(북두) 특급열차



오누마 국정공원에 도착할 즈음의 날씨는 본격적인 폭우였다. 오누마 국정공원의 관광은 산책로를 걷는 것이 중요한데 도무지 걸어 다닐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비가 오는 날엔 물리적으로 고장이 나는(?!) 체질이라 장마철엔 절인 배추 같고 잠시 내리는 소나기에도 머리가 아파오는 타입이다. 여행지에서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조금 더 버텨보긴 하지만 그래도 진흙탕길을 걸어 다닐 용기는 나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다 열차를 계속 타고 하코다테까지 가기로 했다. 도착해서도 너무 날씨가 안 좋으면 바로 숙소로 들어가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마침 홋카이도 5박의 일정 중에 가장 고급진 숙소였기 때문에 여독을 풀기에도 좋았다. 지정석은 오누마 국정공원까지였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 자유석으로 칸을 옮겨 앉았다. 놀랍게도 자유석 쪽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꽉꽉 들어차있던 지정석보다 훨씬 쾌적했다. 사람이 많이 찾는 성수기엔 지정석이 반드시 필요할지도 모르겠으나 비수기엔 자유석을 활용하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많이 내리는 비



하코다테역에 도착했을 때에도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숙소로 바로 이동할까 했지만 그렇게 되면 놓치는 관광지가 너무 많은지라 욕심을 버릴 수 없었다. 잠시 고민하다 고료카쿠 타워까지는 가보기로 했다. 우선 하코다테역 2층의 코인로커에 카메라를 제외한 짐을 모두 때려 넣었다. 뺄 물건을 모두 락커에 집어넣고 문을 닫았는데 가방에 태블릿이 그대로 들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밖에서는 쓸 일이 없어서 700그람짜리를 쓸데없이 무겁게 들고 다니게 되는 셈이라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코인로커 문짝에 또 작은 문이 하나 달려있었다. 찬찬히 읽어보니 코인로커를 잠그는 키를 이용하여 작은 문을 횟수 제한 없이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그동안 수많은 코인로커들을 봤지만 넣어 둔 물건을 한두 개만 빼낼 수 있는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하코다테에서 처음 만나게 된 것이다. 물건을 하나만 빼고 닫으려 해도 다시 돈을 넣어야만 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 수백 엔을 날로 먹는 날강도 같은 놈들이라며 저주(?!)했는데 하코다테의 코인로커 운영하시는 분께는 신의 은총이 내리시길 간절히 기원했다. 마침 태블릿을 대각선으로 눕히니 작은 문짝으로 쏙 들어갔다. 복 받으십시오. 두 번 세 번 받으십시오.   



하코다테에 어서오세요
하코다테 코인락커 운영자님께 신의 은총이 내리시길



사실 내게 하코다테는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의  '이진칸 호텔 살인사건'으로 기억되던 곳이다. 호텔 주변은 눈쌓인 외딴 숲 속이고(탐정만화가 으레 그러하듯), 호텔을 경비하는 경찰로부터 초대받은 김전일은 하코다테라는 여행지에 기대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래서 내게 하코다테는 조금은 을씨년스러운 숲이 가득한 휴양지면서 일본인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라는 막연한 이미지가 있었다. 만화로 현실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나는 하코다테역에서 내리면서 다시금 깨달았다. 잘 정리된 정갈한 역사,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골목골목들은 만화 속 이미지와는 너무 달랐다. 특히 만화에서는 호텔 건물 외관을 하코다테 구 공회당 건물을 모티프로 그렸는데 이 또한 실제 건물에서는 그런 슬픈(?!) 기분을 느낄 수 없었다. (애초에 만화에 너무 몰입이 심했던 것 같다.) 아 물론 일본인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라는 것은 여전히 맞았다. 

비가 아직도 많이 내리는 관계로 고민을 하다 우선 하코다테 역 안에 있는 관광안내소를 찾았다. 팜플렛이라도 몇 개 보면서 일정을 고민해 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들어가는 입구에 Free Rent라고 쓰여있는 곳에 우산 하나가 꽂혀있는 것을 보았다. 안내하시는 분께 빌려가도 되는지 여쭤보니 흔쾌히 가져가라고 하셨다. 보증금이나 신분확인 절차도 없이 바로 우산을 빌려주는 모습에서 다시금 전날 비에이에서 자전거를 빌리던 때가 생각났다. 홋카이도는 날씨만큼이나 쿨한 도시인 것 같다.  



하코다테 역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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