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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네시스 Oct 05. 2023

홋카이도를 여행하는 뚜벅이를 위한 안내서 - 12

별모양의 성곽 고료카쿠

하코다테역에서 노면전차를 타고 고료카쿠 고엔마에역에서 하차했다. 잠시 방향을 잃고 헤맸지만 멀리 높다란 타워가 보여 바로잡을 수 있었다. 고료카쿠는 에도시대 말기에 건축된 요새다. 미일화친조약으로 하코다테항을 개항하면서 북방 방위와 관청의 역할을 할 요량으로 건설되었다. 한자를 풀어보면 다섯(오-五) 모서리(능-稜)의 외성(곽-郭)이라는 뜻으로 선명한 별모양이 고료카쿠의 특징이다. (근데 별모양이면 십릉각이어야 하는 거 아닌지...) 당시 서양식 축성법을 이용하여 건설되었는데 총과 대포의 사용이 주가 된 근현대 전쟁에서 사각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별모양의 요새가 되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성벽 바로 아래 서있으면 대포로 쏘기가 힘든데 별모양이라면 뾰족하게 튀어나온 곳에서 안쪽으로도 포격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구조가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고료카쿠가 유명한 것은 축성 당시보다는 그 이후의 보신전쟁때문이다. 무진(일본어로 보신)년에 시작되어 다음 해에 끝난 일본의 내전으로 천황을 바지사장으로 세우고 쇼군이 통치하던 막부체제를 유지하자는 막부파와 천황에게 권력을 돌려주고 쇼군을 없애자는 도막파(막부 타도)가 붙었던 전쟁이다. 도막파가 압도적으로 승리하면서 막부파의 잔당들이 하코다테에 모여들었고 이곳에 모인 막부파와 신선조 등이 최후까지 결사항전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특히 고료카쿠가 막부파의 요새로 쓰이면서 독특한 외관과 함께 많은 이야기의 산실이 된 셈이다. 


타워로 가는 길에 두 젊은이가 팔을 교차하고 서있는 동상이 있었다. 젊은 별들(若き星たち)이라는 이름의 동상은 당시엔 무엇인지 몰랐는데 집에 돌아와 고료카쿠의 역사를 조사한 후에는 조금 달리 보였다. 보신전쟁 막바지에 하코다테에서 싸웠던 무명의 병사들의 화합을 그린 동상이라고 한다. 한 명은 막부군, 한 명은 도막파(정부군)의 청년으로 전쟁의 종식 후에는 하나가 되어 미래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그린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전쟁에서 사망한다는 것은 시대의 변화를 위해선 어찌 보면 필요했을지도 모르는 희생이었겠지만 개인의 인생이라는 관점에선 너무나 덧없게 느껴진다. 누군가의 대의를 위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와 죽는 사람도 전쟁에는 많지 않은가. 죽은 사람을 영웅화하고 기리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자기 위안을 위한 기만일지도 모르겠다.   



젊은 별들 동상



고료카쿠 타워에 다가가다 보니 럭키 삐에로를 만날 수 있었다. 럭키 삐에로는 홋카이도에서도 하코다테에서만 만날 수 있는 패스트푸드 체인점이다. 기본적으로 수제버거를 팔고 있지만 점포에 따라서 카레를 파는 등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한다. 하코다테에만 17곳이 영업 중이고 그 외의 지역에는 만날 수 없다. 그래서 하코다테를 방문했다면 꼭 한 번은 들러보는 것이 좋다. 럭키삐에로는 하코다테 사람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패스트푸드인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역시 하코다테에서만 만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가격도 과하지 않은 편이고 맛도 괜찮다. 채소는 하코다테산을 사용하고 그 외에는 홋카이도산을 쓰는 등 산지 자체 생산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그러니 하코다테 사람들이 더더욱 좋아할 수밖에. 다만 아직 배가 고프지 않았던 관계로 고료카쿠 타워를 먼저 구경한 뒤 나오면서 먹기로 하고 일단은 지나쳤다.    



럭키삐에로 - 고료카쿠공원앞



마침내 고료카쿠 타워에 도착했을 때 멀리서 봤을 때와는 사뭇 다른 규모에 놀라웠다. 넓고 높은 공간이 펼쳐지고 내부도 상당히 깔끔했다. 철골구조에 유리를 덮어 햇빛이 사방에서 쏟아져들어오는 구조로 하얀색 페인트를 칠해 내부가 화사하기 그지없었다. 식물들이 장식되어 있고 카페도 있어서 근처에 살고 있다면 친구와 잠시 들러 티타임을 가지기에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물론 관광객이 많아진다면 별로겠지만 마침 내가 도착한 시간에는 여유가 있었다. 고료카쿠타워는 사실 1960년에 고료카쿠 축성 100주년을 기념하여 60m의 높이로 처음 건축되었다. 이후 2006년에 그 옆에 107m의 높이로 새로 건축되고 기존의 타워는 철거되었다. 타워를 건설한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게, 고료카쿠는 지상 높이에서 보면 그냥 평범한 성곽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타워를 올라서 보면 선명한 오각별모양을 볼 수 있고 규모감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주변에 산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타워의 건설은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줄을 서서 타워를 오르는 티켓을 사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보니 몇 가지 특징적인 것을 볼 수 있었다. 우선 도쿠가와 가문의 문장인 세잎 제비꽃 문양이 많이 보였다. 여기에는 고료카쿠가 막부군(쇼군옹호파 = 도쿠가와파)의 마지막 보루였다는 점이 작용한 것 같다. 기념품 판매점 쪽에도 신선조의 톱니문양이 보이는 등 에도시대를 느끼게 하는 물품들이 많았다.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이 공간의 주인공같이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동상의 존재였다.


동상은 '히지카타 토시조'로 신선조의 부장이자 보신전쟁의 마지막까지 결사항전했던 인물이다. 에도막부 말기에 막부파 요인들의 암살이 종종 이뤄지면서 이에대한 자경단 성격으로 결성된 것이 신선조였다고 한다. 우리가 만화 '바람의 검심'에서 보았던 신선조의 이미지는 화려한 검술을 구사하는 검객 집단이지만 실제로는 준 군사조직에 가까워서 1대 1 대결보다는 다수로 소수를 제압하는 것이 주였다고 한다. 자경단이 준 군사조직이 되고 막부의 인정까지 받으면서 힘이 실리자 부원들 중에도 일탈하는 사람이 생겨났고 히지카타 토시조는 엄격한 규율을 들어 이들을 처단하거나 할복을 명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 일명 '귀신부장'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이후 보신전쟁이 일어나면서 신선조도 도막파의 반대편에 서서 전투에 참여하였으나 영 좋은 성과는 보이지 못했고 결국 하코다테에서 재집결하여 다시 한번 싸웠지만 패하고 만다. 이 마지막 전투에서 히지카타 토시조는 피격되어 사망하고 막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막부의 존속이 옳고 그른지를 떠나서 신념을 가지고 끝까지 도전하다 이른 나이(34세)에 사망한 히지카타 토시조의 모습에서 영웅적인 서사를 느낀 후대의 사람들이 하코다테 고료카쿠의 주인공으로 그를 모시고 있는 듯하다. 신선조가 일본의 유명 소설가 '시바 료타로'의 소설 속에서 낭만적으로 묘사되고 이후 만화 등 서브컬처에서도 좋은 이미지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인기가 더욱 올라갔다고 한다. 아 그리고 당대의 인사들의 언급도 인기에 한몫한 것 같다. 큰 키에 하얀 피부로 잘생긴 인물이었다는 기록이 종종 보인다. 역시 미모를 이기는 서사는 없다.  



고료카쿠 타워 내부


히지카타 토시조 동상



타워에 올라 마주한 고료카쿠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사전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찾았던 한 블로그에서는 "사진이 현실의 반의 반도 담지 못했다."고 했는데 크게 공감했다. 자로 잰 듯한 오각별의 반듯한 모습과 그 주위를 둘러싼 해자, 그리고 단풍이 내려앉아 울긋불긋한 인공섬의 모습이 한눈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커다랗게 다가왔다.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재의 거대한 규모감에 압도되었던 것 같다. 지상에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모습이라서 고료카쿠타워의 존재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요새 내부에는 봉행소 등 과거의 건물을 몇 개 복원해 두었으나 정작 들어가보면 그다지 볼만한 게 없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다시 내려가 들어가 볼 생각은 안 하고 타워에서 하염없이 구경했다. 한참을 보고 사진을 찍고 해도 질리지 않았다. 고료카쿠 타워의 안내책자에 따르면 벚꽃철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핑크빛 오각별이 되고 여름엔 푸르르며 가을엔 이처럼 울긋불긋하고 겨울에 하얀 눈이 내려앉으면 순백의 오각별이 된다고 했다. 어느 계절에 와도 멋진 모습을 보여줄 것 같았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른 계절에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고료카쿠 타워에서 본 고료카쿠
고료카쿠 타워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미니어쳐, 바닥이 슬쩍 보이는 아크릴 구조
잘 다듬어진 정원과 예리한 별의 각도,   복원된 봉행소
하코다테 굴뚝, 하코다테야마와 시가지



이날도 1일 1소프트아이스크림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고료카쿠타워 안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뽀갰다. 여러 가지 맛이 있었지만 이곳의 특징적인 아이스크림은 신선조 아이스크림이다. 신선조 복장에 쓰였던 형광하늘색을 아이스크림에 구현해 두었는데 밀크아이스크림과 믹스로 주문했더니 정말 신선조 톱니무늬 같은 문양이 나와서 신기했다. 맛은 뽕따와 비슷한 소다향이었는데 뭔가 미세한 입자감이 느껴서 홋카이도에서는 가장 맛없었던 아이스크림으로 기억되었다. 생각해 보니 일본의 관광지에는 소프트아이스크림이 없는 경우가 잘 없고 지역 특색에 맞는 아이스크림도 많은데 언젠가는 일본 소프트아이스크림 로드맵을 만들어보고 싶어 진다. (살을 얼마나 더 찌우려고?)  



신선조 소프트 아이스크림, 고료카쿠타워 1층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니 슬슬 배가고파질 즈음이어서 미리 봐두었던 럭키삐에로로 향했다. 가장 유명한 메뉴인 차이니즈 치킨버거를 세트로 시키려니 점원이 "음료는 우롱차고 세트로 하시면 음료 교환이 안된다."라고 하셨다. 세상에 패스트푸드에 우롱차라니. 너무나 실망스러웠지만 그것이 로마법이라면 따르는 수밖에. 알았다고 하고 번호표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럭키삐에로는 하코다테에 17개의 점포가 있고 기본적으로 삐에로라는 마스코트가 공통적으로 있지만 점포의 인테리어는 각 점포의 사장님께 맡기기라도 하는 건지 모두 다르다.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니 창업자인 오이치로 회장이 개별 점포의 인테리어를 결정하는 것 같기도 하다. 원래 천사 굿즈 마니아였다고 하는 듯. 서커스를 좋아해서 가게 이름을 럭키삐에로라고 지었다고 하는데 좋아하는 게 되게 많은 양반인가 보다. ) 하코다테점의 인테리어 테마는 '천사'로 조명이나 벽에 걸린 액자 곳곳에서 천사를 만날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7080의 분위기가 나는데 점포 내의 의자나 식탁도 레트로 하고 잡다하게 걸린 광고들도 그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조금 정신이 사나워 보이기도 하는데 그게 또 특색이라면 특색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잠시 기다리니 점원이 음식을 서빙해 주었다. 이 것도 레트로한 느낌이었다. (패스트푸드는 셀프서비스라는 인식이 박혀버려서 그런 것 같다.)


차이니즈 치킨버거는 간장소스를 버무린듯한 치킨이 잔뜩 들어간 햄버거였다. 소스가 조금 센 감이 없지않아 있는데 그래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감자튀김은 머그컵에 담겨오는데 그레이비소스가 끼얹어진 상태로 온다. 양이 제법 되어서 감자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다. 홋카이도산 감자라 서그런가 맛도 좋았다. 음료는 위에 거품이 뽀골뽀골 올라와있기에 혹시 탄산우롱차인가 싶었는데 말 그대로 얼음 우롱차였다. 몇십 년을 햄버거엔 콜라로 살아와서 그런가 우롱차와의 조합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정말 목이 막힐 때 한 모금씩만 했을 뿐 청량감이 없어 너무나 아쉬웠다. 다음에 다시 럭키삐에로를 찾을 일이 있다면 세트가 아니라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단품으로 시키고 탄산을 따로 시키고 싶다. 탄산이 없던 이날의 슬픔을 꼭 기억해둬야 할 텐데.





차이니즈 치킨버거, 바꿀 수 없는 우롱차와 맛있는 감튀
정신이 몽롱해지는 카운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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