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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네시스 Dec 04. 2023

홋카이도를 여행하는 뚜벅이를 위한 안내서 - 18

어김없이 마지막 날은 밝아오고

여행의 마지막 날의 아침이 밝았다. 사실 해는 아직 뜨지 않은 오전 4시 정도였고 나는 그 새벽부터 일정이 있었다. 바로 쇼핑이다. 앞에서 여러 번 언급했다시피 나는 가난한 여행자이고 무언가 대단한 것을 사본 적은 없다. 다만 마지막 날엔 종합 쇼핑몰(이라고 쓰고 도떼기시장이라 읽는다)인 돈키호테를 털어(?!) 종종 일본생각이 날 즈음 먹을 간식거리나 부탁받은 소소한 물건들을 사서 들어온다. 위탁수하물 가격을 아껴보려고 한국에서 일본에 들어올 때 캐리어도 들고 오지 않았는데 돌아가는 길에는 위탁수하물을 사전예약해 두었다. 돈키호테에서 지퍼가 달린 타포린백을 구입해서 그 안에 쇼핑한 것들을 넣으면 위탁이 가능하다.(지퍼가 없이 위가 오픈형인 가방은 위탁이 불가능하다.)


아침 샤워를 마치고 짐을 챙겨 숙소 밖으로 나왔다. 어제 저녁을 먹었던 스아게 플러스 바로 근처에 24시간 영업하는 메가 돈키호테라는 곳이 있어 미리 봐둔 차였다. 곧바로 내달려 이런저런 간식을 구입하고 부탁받은 파스와 약 등을 구입했다. 호로요이를 참 좋아하는데 일본에서는 100엔 근처면 먹을 수 있는 것이 한국에서는 3천 원도 넘는 가격인지라 이번에도 한정판 위주로 꾸역 구역 챙겨 구입했다. 타포린백을 한참 찾았는데 보이지 않아서 좌절하다가 지하에 있는 카운터 바로 옆에 커다란 보냉팩을 팔고 있어서 같이 구입했다. 보냉팩에는 아무래도 충전재가 한번 더 들어가서 충격에 강해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다. 그대로 들고 1층으로 올라가 면세까지 받고 뽁뽁이를 뚤뚤 감으니 거대한 덩어리가 되었다. 이리저리 각을 재가며 꼼곰하게 포장해 주신 면세코너의 점원분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다. 보냉팩에 쏙 들어가는 사이즈가 되어서 어깨에 짊어지고 삿포로역까지 걷기 시작했다. 호로요이 12캔이 들어있는 그 가방의 무게가 바로 내 욕심의 무게였다. 바퀴도 없이 몸빵으로 가방을 들고 있자니 어깨가 욱신거렸지만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체력을 모두 써도 후회는 없으리라.   



홋카이도의 돈키호테에서 만난 뜻밖의 한류



쇼핑을 하면서는 잠이 충분히 깨지 않아 조금 몽롱한 상태였는데 무거운 짐을 지고 삿포로역까지 걸어서 그런지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사람이 많지 않은 시간이라서 다행이다 싶었다. 아마 내가 나만한 짐을 짊어지고 끙끙대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았다면 매우 안쓰럽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다행히 삿포로역에 무사히 도착해서 코인로커를 찾아 카메라만 빼고 짐을 다 때려 넣었다. 나중에 다시 짐을 꺼내 신치토세역까지 들고 갈 생각을 하니 암담했지만 일단은 홀가분함을 즐기기로 했다. 


홋카이도여행의 마지막 방문지는 홋카이도대학이었다. 삿포로역에서 북쪽으로 걸으면 금방 나오는 곳에 있어서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내게 딱 적당한 여행지였다. 홋카이도대학은 1876년 설립된 삿포로농학교를 전신으로 하여 1918년에 제국대학교로 승격된 일본의 명문대학교다. 일본 대학교 랭킹에서 10위권 안에 꾸준히 드는 학교고 노벨상 수상자도 세명이나 배출했다고 한다.


역에서 약 10분 정도 걸으면 정문이 나오는데 의외로 심심한 분위기고 그보다 더 북쪽의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위치상으로나 분위기나 더 정문 같은 느낌을 준다. 나는 숲이 근사한 길을 걷다가 갑자기 농대 쪽이 구경해보고 싶어서 샛길로 샜더니 정말 공대분위기가 팍팍 나는 뒷골목 쪽 길이 나타나서 당황했다. 중간에 건물을 뚫고 지나갈 수도 없어서 계속 뒷길로 걷다 보니 비닐하우스도 나오고 농장도 나오고 해서 그 부분은 조금 재미있었다. 우선 나도 농대출신이기도 하고 해서 다른 나라의 농대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증이 있었는데 별 다를 바 없었다. 대학원생들이 아마 저 밭에서 농사도 짓고 동물들 사료도 주고 하겠지 싶어 조금은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저렇게 고생을 마치고 나면 석사도 하고 박사도 하고 노벨상도 타오는 것이겠지.   



후루카와 강당, 홋카이도대학 단풍
농학부 건물
홋카이도대학 단풍, 홋카이도대학 종합 박물관



홋카이도 대학은 예전에 지어진 건물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어서 레트로한 분위기를 보이는 곳이 많다. 특히나 수목이 워낙에 잘 가꿔져 있고 작게는 개천도 흐르는 곳이라 얼핏 보면 숲 속에 건물들을 세워놓은 착각마저 들 정도다. 캠퍼스의 넓이가 상당히 넓어서 걸어도 걸어도 끝이 날 것 같은 기분이 아니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세로로 종단을 할라치면 도보로 30분은 걸린다고. 나도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넓은 캠퍼스에서 대학생활을 했지만 홋카이도 대학 캠퍼스도 만만치 않았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홋카이도 대학 캠퍼스 크기는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크기와 얼추 비슷하다고 한다. 한참을 걸어서 은행나무 가로수길에 도착했는데 반절 정도밖에 종단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좌절했다. 포플러 가로수길(헤이세이 포플러 가로수길과 그냥 포플러 가로수길이 있다.)을 가려면 한참을 더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곧바로 포기했다. 그래도 단풍이 가득한 캠퍼스를 걷는 것은 좋았다. 특히나 종합박물관 앞의 일직선으로 뻗어있는 도로에 노란 은행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감동이었다.   



문학부 표지

 


가을에 홋카이도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홋카이도대학을 반드시 가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겨울에 흰 눈이 쌓인 풍경이야 홋카이도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는 풍경일 것이고 초록의 나무가 무성한 풍경도 어디서든 쉽게 만나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러나 길게 뻗은 도로 양 옆으로 심어진 은행나무가 일제히 단풍이 들어 샛노란 터널을 만들어내는 것은 홋카이도 다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풍경이다. 캠퍼스 이곳저곳에 알록달록하게 물든 풍경을 감상하다 노란 꽃으로 만들어낸 것 같은 은행나무 터널을 보았을 때의 느낌은 이루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여행 마지막에 큰 기대 없이 들렀던 곳에서 영원히 기억할 멋진 풍경을 눈에 새길 수 있었다. 내게 2022년의 가을은 홋카이도대학으로 기억될 것이다.   



홋카이도대학 은행나무 가로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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