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의 역사부터 영국 여왕이 실제로 사용하는 개인 화장실까지!
로열 알버트 홀 (Royal Alber Hall) 은 런던 사우스 켄싱턴에 위치한 공연장이다.
낭만주의 시대,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알버트 공은 영국의 문화 발전에 역사적으로 아주 큰 역할을 한 The Great Exhibition을 주도적으로 개최하였다. The Great Exhibition 은 유럽 내 여러 국가의 문화적, 예술적 작품들을 선보인 국제 예술 박람회 및 문화 교류 플랫폼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이 전시는 그 이름대로 아주 그레이트한 전시였는데, 이 전시 개최 전후로 국가적 차원에서 사우스 켄싱턴 지역의 땅을 사고, 그곳에 예술 기관의 역할을 할 건물들을 짓기 시작했다. 그 당시 빅토리안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예술 기관들이 모여 있는 지역을 비공식적으로는 알버트로폴리스 (Albertropolis) 라고 부른다.
알버트로폴리스에는 로열 알버트 홀, 알버트 기념비를 포함해 Queen's Tower (퀸스 타워), Prince's Gate Garden (프린스 게이트 가든)과 같이 알버트, 빅토리아, 혹은 퀸과 프린스라는 단어가 들어간 수많은 장소와 건축물,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The Great Exhbition을 위해 1850년대에 많은 박물관들이 건립되었으며, Victoria & Albert Museum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 Science Museum (사이언스 뮤지엄), The National History Museum (내셔널 히스토리 뮤지엄) 등의 대형 박물관들이 들어선 큰길에는 Exhibition Road (엑시비션 로드)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쯤 되면 알버트 공에 대한 빅토리아 여왕의 사랑이 얼마나 컸을지 예상이 된다. 빅토리아 여왕은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알버트 공과 그의 업적을 지지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의 예술 후원을 강조하였으며 알버트로폴리스는 이후 영국 문화의 요충지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로열 알버트 홀의 경우 부지 구입 이후 여러모로 진행 속도가 더뎌 1871년이 되어서야 드디어 건물이 완공되었며, 이것은 1861년에 알버트 공이 갑자기 사망한 이후였다.
빅토리아 여왕은 죽은 남편을 기리기 위해 로열 알버트 홀을 짓던 건축 비용에서 일부를 떼어 내 알버트 기념비를 세운다 (로열 알버트 홀 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창문에서 이 기념비가 정면으로 보인다). 알버트 기념비를 자세히 보면 알버트 공이 오른손에 커다란 책을 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자, 여기서 질문. 이 책은 대체 무슨 책일까? 많은 사람들이 '성경'이라고 대답하는 이 책은 사실 The Great Exhibtion의 카탈로그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업적과 불타오르는 열정을 묘사한 정도가 이제는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흥미로운 역사적 배경과 함께 탄생한 로버트 알버트 홀의 외관 모습은 그래서인지 더욱 아름답다. (그러나 비가 오는 날에나 겨울에는 외관의 진한 심홍색 페인트가 더욱더 진하고, 눅눅하고, 우울해 보이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해가 쨍쨍한 날에 가보기를 추천한다). 이 건물을 디자인하고 설계하는 데에 수많은 공이 들어갔으며, 로열 알버트 홀이 세계 최초 돔형 지붕을 가진 원형 극장이라고 한다. 멀리서 보면 당근 케이크처럼 보이는 이 건물 외관 중앙은 모자이크 프리즈 (mosaic freize, 건물을 장식하기 위해 둘러싼 띄이다)가 감싸고 있다. 이 프리즈의 주제는 예술과 과학의 위업, ‘Triumph of the Arts and Sciences'으로, 그 안에는 16개의 우화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프리즈 위에는 테라코타 (terracotta, 흙을 구워 만드는 예술 작품) 형식으로 만들어진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신을 찬양하는 종교적인 내용과 여왕과 알버트 공의 업적이 담긴 이 글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This Hall Was Erected For The Advancement Of The Arts And Sciences And Works Of Industry Of All Nations In Fulfilment Of The Intention Of Albert Prince Consort. (로열 알버트 홀은 알버트 공의 의도에 따라 모든 국가의 예술, 과학, 산업의 발전과 실현을 위해 건립되었다.)"
이제 로열 알버트 홀 내부를 탐방해 보도록 하자. 내부는 전체적으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길 수 있게 레드 카펫이 깔려 있으며, 따뜻한 색의 조명들이 여기저기에 배치되어 있어 홀에 들어선 것만으로도 관객들은 영국 로열 패밀리가 된 것 같은 상상을 잠시나마 해 볼 수 있다. 로열 알버트 홀에 들어와 주위를 둘러보면 두 가지 특이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바로 건물 내 여기저기를 점령해버린 듯한 알파벳 A이다 (로열 알버트 홀에서 일하는 직원의 말에 따르면, 이 A는 알버트 공을 의미하며, 건물 내에 있는 A를 다 세어보면 3000개가 넘는다는 괴담 같은 전설이 있다고 한다...).
두 번째 특이점은 로열 알버트 홀의 벽면 여기저기에 여러 인물들의 사진들이 액자로 걸려 있다는 것이다. 이 액자들의 경우 건물이 세워진 이래 공연장을 위해 기여를 한 인물들이나 공연을 한 아티스트, 관람을 하러 온 유명 인사들의 모습들을 담고 있다. 처음으로 벽에 걸린 사진 속 주인공은 빅토리아 여왕이며, 그 이후로 공연장에서 16번이나 연설을 했던 윈스턴 처칠, 히틀러 당선 이후 유럽에 찾아올 위기에 대해 연설을 한 알버트 아인슈타인, 공연을 하러 온 지미 핸드릭스, 비틀스, 그리고 영국과 남아프리카 예술가들의 공연을 보러 온 넬슨 만델라 등 보면 헉! 하고 놀랄 만한 사람들의 사진을 구경할 수 있다.
로열 알버트 홀은 설립하게 된 배경도 흥미롭지만, 설립 이후 초정된 인물들이나 이곳에서 이루어진 행사들에 대한 이야기 또한 아주 풍부한 역사적인 장소이다. 이 이야기들이 여러 형태의 자료들로 잘 아카이빙 된 것이 이 공연장의 뛰어난 장점이기도 하다. 홈페이지에서 디지털 아카이빙 된 자료를 찾아보는 것도 좋지만, 공연장을 직접 걸어 다니며 내부에 걸린 여러 사진을 보면 150년가량의 역사를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이 곳에 공연을 보러 갔을 때 내부 투어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면 꼭 참여해보길 권한다. 로열 알버트 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각 사진의 뒷 이야기들을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건물 지하 물류창고 쪽에는 일본 스모 선수의 사진이 있다. 종종 스포츠 경기를 개최하던 로열 알버트 홀에서 스모 경기를 하게 되었을 때, 스모 선수들로 인해 변기가 부서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시설 팀에서는 대대적인 화장실 개조를 해야 했다고 한다. 참, 로열 알버트 홀에서 열린 스포츠 경기 중 가장 희한한 경기는 Chessboxing이다. 박싱 선수들이 라운드 원에선 체스를 두고, 라운드 투에 박싱 경기를 해 지덕체.. 아, 아니 '지'와 '체'를 겸비한 선수가 이기는 해괴한 경기였다고 한다.
앞서 밝혔듯, 로열 알버트 홀은 세계 최초 돔형 지붕을 가진 원형 공연장이다. 때문에 기술적인 부분에서 건축 당시 예상치 못했던 어마어마한 난관이 개관 기념식이 진행되던 도중 즉시 드러나기도 했다. 바로 원형 건물이 가지고 올 소리의 울림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개관 기념식을 취재한 타임스 지는 “the address was slowly and distinctly read by his royal Highness, but the reading was somewhat marred by an echo which seemed to be suddenly awoke from the organ or picture gallery, and repeated the words with a mocking emphasis which at another time would have been amusing. (에드워드 공은 연설문을 천천히, 명료하게 읽었지만 그 소리는 오르간이나 사진 갤러리에서 반사되었는지 갑작스러운 메아리에 의해 다소 흐트러지고 있었다. 말이 반복적으로 들리며 조롱하듯 강조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개관식만 아니었다면 재미있는 해프닝으로 여길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후 돔형 지붕에 의해 잔향 시간이 길고 (심지어 11초가량이나 잔향이 남아 있는 곳도 있었다..!), 몇몇 구역에서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1949년 지붕에 알루미늄 판을 달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울림과 잔향이 남아 있자 1969년 알루미늄 판 밑으로 디퓨징 디스크 (diffusing discs)를 달게 되고 음향 문제는 이전에 비해 확실히 나아졌다고 한다 (로열 알버트 홀 직원들은 이 디퓨징 디스크를 머쉬룸이라고 부른다). 이후 이 머쉬룸, 아 아니 디퓨징 디스크는 로열 알버트 홀의 명물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로열 알버트 홀에서 가장 특별한 곳은 여왕의 박스석이다. 로열 알버트 홀의 2층에는 박스석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박스석들은 연간 단위로 개인에게 판매된다 (2018년 기준 £3,000,000. 한화 43억 7천만 원가량... 와우). 그중 가장 정 중앙, 좋은 곳에 위치한 박스석은 유일하게 판매하지 않는 곳인데, 바로 여왕이 사용하는 박스석이다. 로열 알버트 홀은 상대적으로 비싼 티켓 값에도 불구하고 자선 단체로 등록되어 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쉬운 공연장이 되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기본적 에티켓 외에는 드레스 코드와 같이 불필요하게 지켜야 할 규칙들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이하게도 여왕의 박스석에만 유일하게 지켜야 할 법들이 있다고 한다. 이 곳은 로열 패밀리 또는 내각 구성원만이 출입할 수 있으며 여자는 드레스, 남자는 정장을 입어야 하고 누구든지 그곳에서 춤을 춰서는 안 된다. 여기에도 웃긴 일화가 있는데, 여왕의 박스석에서 그 법을 어긴 사람이 지금까지 딱 한 명 있었다고 한다. 박스석에서 엘리자베스 여왕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흥에 겨워 춤을 추기 시작했고... 그를 본 로열 알버트 홀의 직원들은 누구도 가서 말리지 못하고 속으로 아니... 만델라 대통령님... 하며 두 손을 움켜쥐고 그를 고통스럽게 지켜보았다고 한다.
여왕의 박스석 맞은편에는 여왕이 공연을 보기 전 쉬고, 술과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방이 있다. 이 방 내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의자가 있는데, 빨간 의자는 남자만 사용 가능하고, 고풍스러운 분홍 의자는 여왕과 여자들이 사용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매년 딱 한번, Festival of Rememberance 에 참석하기 위해 로열 알버트 홀에 오며, 윌리엄 왕자와 해리 왕자는 그 외에도 매년 몇 번씩 공연을 보기 위해 이 곳을 방문한다고 한다. 방 옆에는 여왕의 개인 화장실이 있다.
지금까지 로열 알버트 홀을 구석구석 탐방해 보았다. 중간 중간 재미있지만 쓸데 없는 이야기가 많이 언급이 되었는데, 한편으로는 이런 이야기들이야말로 그 장소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하는 묘한 요소가 아닐까 싶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로열 알버트 홀에 방문하게 된다면 더욱더 재미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쪼록 이곳에서 BBC Proms, Harry Potter Concert 와 같은 멋진 공연들도 보고, 열심히 눈동자를 굴려 숨은 이야기들을 많이 발견하길 바란다. 알버트 공 만세 만세 만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