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엣젯항공 승무원과 나의 덤앤더머 환전 이야기
2023년 8월 9일 오전 11시.
고대하고 고대하던 찰나.
세계여행을 시작하는 순간.
앞으로 평생 잊을 수 없는 숫자들의 나열.
어릴 적 꿈이 이루어지는 설렘.
그 어떠한 문장으로도 한 줄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이 순간을 기점으로 내 인생은 전과 후가 나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망의 세계여행 시작인데, 인천공항에서 찍은 사진이라곤 이 녀석밖에 없다.
비장한 각오 따위는 없었나 보다.
내 키만 한 커다란 배낭백팩을 짊어질 자신은 없었기에
28인치 캐리어 1개와 작은 백팩 1개, 힙색 1개가 전부인 배낭 없는 배낭여행자가 되었다.
첫 여행지는 베트남으로 정했다.
하지만 막상 혼자서 대장정을 시작하려고 하니 겁이 많이 나긴 했다.
때마침 친구가 여름휴가 같이 갈 사람이 없다고 베트남 하노이, 사파까지만 동행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친구의 휴가일정에 맞추어 수수료를 내고 비행기 날짜까지 미뤄가며 스케줄을 수정했다.
친구와 나는 가장 저렴한 비엣젯 항공을 타고 베트남 하노이를 향해 떠났다.
비엣젯 항공은 저가 항공이기 때문에 기내식이 제공되지 않는다.
비행기 타기 전에 음식을 미리 주문, 결제한 고객들에게만 식사가 주어진다.
그 고객들을 위한 음식이 서빙되기 시작하였을 때
여기저기서 컵라면, 음료 주문이 밀려오기 시작해서 정신이 없어 보였다.
승무원이 내 근처 자리까지 가까이 왔을 때 나도 애처로운 시선을 보내며 그녀와 눈 맞춤에 성공했고
그렇게 타이거 맥주 2개를 주문하는 데 성공했다.
가격은 2캔에 100,000동.
그니까 한국돈으로 약 5,000원이다. 1개에 2,500원 꼴.
베트남 돈 단위에서 나누기 20을 하면 한국 돈으로 얼추 계산이 된다.
한국 돈 10,000원을 건네려 하자
승무원은 약간 멈짓하더니 조금 있다가 거스름돈을 내어주겠다고 하고 바쁜 서빙을 이어갔다.
'세상에.
500ml도 아니고 200ml 캔 1개에 2,500원이라니.
이거 베트남에서 사 먹으면 1캔에 몇백 원 밖에 안 할 거 같은데...
기내 물가 비싸지만 어쩔 수가 없지 모ㅠ'
동남아시아에서는 식당에서 맥주를 주문하면 얼음을 같이 내어주는데
기내에서도 역시 얼음컵을 같이 준다.
어느덧 맥주도 다 마신 지 오래고,
서빙도 마무리가 되어 조용해진 지 오래인데
내 돈 10,000원을 가져간 승무원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바쁜가? 싶어
그렇게 1시간 정도 눈치를 보다가
나: 거스름돈을 받을 수 있을까요?
승무원: 누구한테 돈을 줬죠?
나: 저기 단발머리 승무원이요.
단발승무원: 전 안 받았는데요?
나: ???
갑자기 승무원들끼리 회의가 시작되었고
나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세계여행 시작부터 이렇게 눈팅이를 맞을 줄 몰랐는데
뭐야. 나 10,000원 주고 사 먹은 꼴이 된 거야?'
그렇게 또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마치 마피아 게임에서 지목된 사람처럼
다른 승무원 한 명이 지폐 한 장을 들고 온다.
10,000동.
"땡큐~~~"
나도 환하게 웃으며 거스름돈을 받았다.
나는 못 받을 줄 알았던 거스름 돈을 겨우 받게 되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하노이 공항에 도착해서 문뜩 든 생각.
'10,000 동이면 500원 아니야?
거스름돈 5,000원 받았어야 되는데 그럼 100,000동을 받았어야 됐네?
와~ 맥주 2캔을 9500원을 주고 사 먹은 꼴이 돼버렸네~'
숫자에 강하다고 자부하며 살아온 세월이 무색하게
여행 초반부터 어이없는 실수를 해버렸다.
신나서 거스름돈 가져오던 승무원과
밝게 웃으며 받아 든 나.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까지.
셋 중 아무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몰랐다는 사실이 너무 웃기고도 황당했다.
'베트남 돈은 대체 '0'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헷갈려 죽겠네~'
경각심을 돈을 주고 산거라면 알맞은 가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