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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달걀 Oct 23. 2024

우물쭈물거리다가 마흔이 다 돼서야 배낭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을 가려면 일단 퇴사부터 해야 돼요


 생각해 보면 저는 중학생 때부터 한국이 아닌 곳의 세상을 동경해 왔던 것 같다.


다른 친구들은 국내 아이돌을 좋아할 때

저는 미국과 유럽 팝스타에 빠져 혼자 외로운 팬질을 했고,

안 되는 영어 실력으로 사전을 뒤져가며 글로벌 채팅과 펜팔을 하면서 외국인 친구도 만들었다.


관광가이드가 되면 여행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에

고3 때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진로를 바꾸기 전까지 오직 희망진로는 관광학과에 가는 것이었다.


고등학생이 돼서는 쉬는 시간을 쪼개가며 한비야 씨의 여행에세이 시리즈를 읽으며

상상 속에서는 나도 이러이러한 여행을 이렇게 해야겠다 하는 계획을 남몰래 머릿속에 그리곤 했다.


그리고 당시 빅히트를 쳤던 

한국인이 사랑하는 팝송 상위권에 언제나 랭크 중인 

웨스트라이프의 'My love' 뮤직비디오를 보는 순간

'저기가 어디지? 언젠가 나는 꼭 저곳을 가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그때부터 머릿속에 각인이 되었던 것 같다.


흐린 하늘에 바람이 많이 불어 마른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을씨년스러운 날씨를 만나면

유난히도 기분이 좋아지는 4차원 소녀이자 초록색 덕후였던 나는,

푸른 잔디 위 절벽 위에서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My love'를 외쳐대던 웨스트라이프의 모습과 곡의 선율에

흠뻑 빠져 그곳이 아일랜드의 모허절벽이라는 곳임을 알아내었다.

'My love' 뮤직비디오 중 모허절벽 위의 웨스트라이프


아일랜드는 영국 옆의 작은 섬나라였다.

극동 아시아에 살고 있는 소녀가 느끼기에는 아일랜드야 말로 유라시아의 서쪽 끝,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꼭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육로로 세상의 끝까지 횡단을 해야지

하는 거대한 꿈을 품었다.



하지만 그 꿈은 장장 20년이 넘게 실현되지 못했다.



핑계를 대자면

20대 때는 시간은 많았지만 돈이 없었고

30대가 돼서는 시간이 없었다.


사실 대학생 때 배낭여행을 꿈꾸며 펀드에 돈을 차곡차곡 모았는데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세계경제가 휘~청할 때

제 펀드도 한줄기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 뒤로는 배낭여행의 의지가 한풀 꺾이며 그저 방구석에서 청춘을 흘려보냈던 것 같다.

(대체 왜 그랬던 거니 나 자신아...)


30대가 돼서는 이제 나름 통장잔고에 조금 잉여라는 것이 생겼지만

대기업이 아닌 회사는 장기 휴가를 허락하지 않았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에게 장기 휴가는 곧 퇴사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가장 긴 휴가라고 해봤자 여름에 4박 5일로 동남아를 다녀오는 것뿐이었다.


4박 5일 가지고는 씅(?)에 차지 않았지만

나이가 주는 압박감과 퇴사 후 불안한 미래를 두려워하며

하루하루를 그저 술과 함께 흥청망청 하며 허비해 갔다.


입으로는 맨날 '퇴사하고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야지'를 반복하며

그렇게 10년을 떠나보냈다.

얼마나 떠벌였으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을 때 직원들이 

'너 이제 시베리아 열차 못 타게 돼서 어떡하냐...'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코로나 때문에 안 돼... 전쟁 때문에 안 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그렇게 아가리(?) 트래블러 시절을 보내던 어느 날,





순창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장님과의 대화는 저의 생각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사장님은 국내외를 속속들이 아시는 여행가이셨다.



나: 퇴사하고 여행 떠나고 싶은데 못하겠어요....

사장님: 그냥 떠나요. 연봉이 얼마예요?

나: .....

사장님: 나는 고액 연봉 팀장이었는데도 그만두고 떠났어요.

             본인을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은 아마 걱정해서 아무도 떠나라고 말해준 사람이 없었을 거야.

             근데 가끔은 나같이 그쪽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도 도움이 되기도 해.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내가 징징거릴 때마다 쿨하게 떠나라고 말해주었던 사람은 없었다.

나는 답정너였고, 어쩌면 이 말을 해줄 사람을 지금까지 찾아 떠돌아다녔는지도 모른다.


드디어 원하던 답을 들은 나는

그다음 날 회사에 출근해 눈물을 쏟으며 그렇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퇴사사유는

이직도, 휴식도 아닌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그렇게 저는 39살에 첫 해외배낭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도비는 이제 자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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