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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너조이 Jul 07. 2023

내가 왜 글쓰기에 게을렀는지 알아버렸다

움츠러드는 사람의 글쓰기


이너조이님은 독자가 누군지 전혀 신경쓰지 않고 글을 쓰시는 분 같아요. 이런 글을 쓰시는 분이 책도 쓰고 매거진에 기고도 하셨다는 게 믿기지 않네요. 대체 누가 이 글을 읽나요?

_ 2021년 내 글에 대한 피드백 시간



오늘은 참으로 피곤한 만큼 짧고 간결하게, 내가 왜 3년간 글쓰기에 게을렀는지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참을 수 없이 강력한 비난을 받은 이후로 글을 차마 쓸 수 없었다고 습관처럼 말하고 다녔는데 말이죠. (내 글을 읽고 내앞에서 울다 웃다 갑자기 비난을 퍼부었던 그분의 얼굴도, 이름도 희미합니다. 잘 계시는지. 두고 두고 당신을 떠올리며 '건강한 비평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참 많이 생각했습니다.) 


오늘 사거리 신호등 앞에서 날개를 다쳐 날지 못하고 길가에 뛰어 다니는 비둘기 한 마리를 보며 순간적으로 인식하게 된 '내가 글을 못 썼던 진짜 이유'. 노파심에 미리 말씀드리자면, 하필 왜 그 비둘기를 보고 이 깨달음을 얻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글에서 설명하지 않을 참입니다. 오늘 거기까지 에너지가 닿지 않을 것 같아서요.  


아무튼, 글을 못쓰겠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이유를 오늘 적겠다는 말입니다. 


 




블로그 구독자가 2천명 즈음 되던 시절, 나는 참 신나게 글을 써재꼈습니다. 제 삶은 늘 글감이 충만하고 하루에도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껴안고 사는 미친 감수성, 그러면서도 자기확신과 논리에 찬 문장들을 써내려가며 글쓰기를 즐거워하던 시절이었죠. '블로그 글쓰기'와 관련해 문의도 많고 일도 들어오던 때였습니다. 매거진에 연재도 했고, 출간 제안도 받았고 실제 공저로도 출간해 보았고요. (먼지 같이 뿌연 경험들입니다) 


피멍 든듯 심장에 남아있던 십대 시절 마음의 폐허, 이십대 시절의 증오들은 신명나는 글쓰기, 남편과의 결혼생활, 함께 책 읽는 사람들, 섬세해지는 미술 취향 등의 영향으로 사그라들거나 흩어져 더 이상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들은 내가 글을 쓸 때, 그림을 감상할 때 좋은 재료가 되어줬어요. 치유 글쓰기의 정수를 경험한 셈이죠. 


삶의 거의 모든 글감을 블로그에, 에버노트에 쏟고나니 더 이상 내 이야기를 하기가 싫어졌습니다. 내게만 특별한 그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엔가 하찮아지고 별볼 일 없게 느껴지다 '나'가 중심이 되는 일기, 에세이 형식의 글쓰기가 조금 부담되더군요. '나'라는 사람을 세상에 그토록 드러내야할 일인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세상에 나를 표현해야할 이유가...? 온갖 SNS에서 '자기' 이야기로 아우성인 이 시대에 굳이 나까지 숟가락 얹어 놓기가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그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에세이를 잘 안 읽고 안 쓰기 시작한 게.


누군가의 경험이 글을 통해 날것 느낌으로 내게 전달되는 것도 불편했고, 나도 더 이상 '나' 이야기를 글로 열심히 쓰고 싶지 않았고요. 그래서, 자꾸만 독서도 글쓰기도 '소설'이라는 장르 속으로 숨어 들어갔어요.


에세이보다 소설 읽기가 훨씬 편합니다. 동네에서 운영 중인 북클럽에서도 소설만 읽습니다. 현실 속의 '나'를 감추고 '등장인물'을 세워 내 마음인 듯 아닌 듯하는 대사를 시키면서 소설 한두 장 쓰다 낄낄 대다 삭제하고요. (쓴 글을 삭제하는 습관을 고치는 건 내게 아주 어려운 일이나 조금씩 교정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니 나는 대중 앞에서 자기소개하는 일을 무척 꺼려했고, 소수의 지인들에게만 내 이야기를 하는 사람. 늘 움츠러드는 이였고, 관계를 새롭게 가꾸는 일에 누구보다 소극적인 사람이라 자유롭게 자기를 표현하고 주장하거나 권면하는 에세이 쓰기는 참 어려웠다고, 뒤늦게 고백합니다.


그래 2~3년 정도 글쓰기가 참 낯설고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세이는 우리가 중학교 때 '수필'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배웠듯 신변잡기를 기록할 수 있는 폭넓고 대중적인 글쓰기의 한 장르이지요. 글쓰기 커뮤니티 리더로서 부지런히 에세이를 쓸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꼭 리더인 나를 드러내기 위함이라기보다, 모든 글쓰기의 기본이자 독자들과 소통하기 아주 좋은 통로이기 때문이죠.


조금 전 저녁에는 한 출판사에서 '독립출판과 1인출판, 그를 위한 퍼스널 브랜딩과 훈련'에 관한 내용으로 준비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글쓰기'와 관련해 새로운 목표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더군요. 글루스 덕분입니다. 글을 쓰다보면 아무튼, 희망, 이라는 그 메시지(글루스의 뜻)가 저를 터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글루스 Ⅲ 네 번째 날입니다. 




2023.07.06.목

이너조이의 '글 쓰는 오늘' 시즌 13

우리들의 글루스 Ⅲ에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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