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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Nov 01. 2020

힘들면 담배를 피워봐.

스토리텔링은 중독의 시작이다

한숨을 대신하는 담배연기
어딘가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닐까

 

1800년대 말, MIT 공과대학의 전신인 학교를 다니는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는 부잣집 딸과 사랑에 빠졌으나 딸의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다.

결국 여자는 친척집으로 멀리 보내졌고 남자는 여자를 찾기 위해 며칠을 헤맸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여자가 고향으로 오게 되었고 남자는 여자의 집 앞에서 여자를 만난다.

그때 여자는, 자신의 결혼 소식을 전한다.

남자는 자신이 담배를 한 대 피우는 동안만 자신 곁에 있어 달라고 했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그들은 그렇게 이별했다.

이후 남자는 필터가 있는 담배를 만들어 대성했다.

세월이 지나 남자는 여자의 소식을 듣게 된다.

남편이 사망하고 혼자 병든 몸으로 사랑하는 그녀를 보며

아직도 사랑하고 있음을 고한다. 그리고, 자신과 결혼해 줄 수 있냐고 묻는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했던 그녀는 다음 날 목을 매달고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 이후 남자는 자신이 만드는 담배에 MARLBORO라는 이름을 붙인다.      


Man Always Remember Love Because Of Romance Over

‘남자는 흘러간 로맨스 때문에 항상 사랑을 기억한다’     



첫사랑이 어쩜 저리 지독할까. 잊지 못한 사랑을 다시 찾았으나 끝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종결된 결말이다. 참으로 지독한 그 심정을 본인이 만든 담배 필터에 글로 새기고, 담배를 피울 때마다 힘든 사랑을 또 애타게 찾을 것이다. 이 순수한 청년은 그녀와 첫 이별에서 담배를 피우고, 마지막 이별을 할 때도 담배를 피웠다. 그는 힘든 순간을 담배로 승화한다. 다소 촌스러운 클리셰지만 8-90년대엔 충분히 먹히는 스토리이다. 사실처럼 느껴지는 이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유명한 루머라고 밝혀졌다.


실제로 말보로 제품명은 필립 모리스의 공장이 있던 영국 런던의 소호지역에 있는 그레이트 말버러 거리(Great Marlborough Street)에서 따 온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글을 처음 보았던 10여 년 전에는 이 스토리가 사실인 줄 알았다. 흡연하는 사람들이 말보로 레드를 피고 있을 때면 나도 모르게 담배 이름에 얽힌 사연이 떠올랐다. 내가 소비 고객이 아님에도 담배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했으니 이미 입소문을 태울 연결고리인 셈이다. 말보로를 피우지 않는 흡연자에게 이 이야기를 알려주고 그 사람이 말보로를 새로 산다면 입소문 마케팅은 성공이다. 말보로 담배를 즐겨 피우던 사람들 중, 이 스토리에 감명을 받은 사람은 계속해서 말보로를 소비했을 가능성이 높다. 필립 모리스의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어쨌든 저런 스토리가 떠돌았다는 것은 마케팅적으로 성공한 것이다.      


학과 선배가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적이 있다. 한참 호주 썰을 듣는 와중에 갑자기 일어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서 한 대만 피우고 오겠다고 한다. 원래 흡연을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흡연을 시작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타국에서 일하느라 힘이 들어서이다. 처음 한 두 번 흡연을 했을 땐 사람들이 왜 담배에 중독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미 사놓은 담배 버리기가 아까워 가끔 태워간 게 시작이라고 한다. 그 이후 끊기가 어려워 그냥 계속 피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흡연을 시작했다는 레퍼토리는 매우 흔하게 듣는다. 힘들 때 담배를 피우면 힘든 일을 잠시 잊게 된다는 말을 전해 듣는 것이다.      


흡연의 매력은 신속하고 반복적인 뇌 보상이다. 몸속에 흡입된 니코틴은 약 15초 안에 쾌락 회로에 도달한다. 이에 흡연자들은 한 모금 빨아들인 후 곧바로 다음 모금을 빨아들이게 된다. 흡연은 한 번 보상을 주기보다 작은 보상을 자주 제공하여 동물의 행동을 조형하는 효율적인 학습 형태이다. (...) 흡연이 현대적이고 세련되며 섹시할 뿐만 아니라 날씬해지는 비결이어서 영화 스타들과 팬들에게 필수적이라고 광고했다. *  

  

담배 속 니코틴이 뇌에 즉각 도달하여 쾌락 회로를 자극한다. 그러므로 정신적으로 힘든 일을 잠시 잊게 되고 서서히 중독의 길로 향하는 것이다. 니코틴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성 물질이지만 정신적인 고통을 잠시 잊게 하는 효과 때문에 소비된다. 니코틴이 팔리기 위해서는 고통을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마케팅이 필요하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담배를 피우게 되는 루트는 마치 전래 동화를 듣는 위로를 자극하는 마케팅이다.  


담배 피우는 여성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     

남성 중심의 권력 사회에서 담배는 분명 남성성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남성으로부터 시작된 소비 제품이라 여성의 소비와는 거리가 멀고 그 거리감은 성차별적 편향과 가깝게 이어졌다. 과거 우리나라에선 미군들과 친목을 다지던 작부들이 그들에게서 받은 양담배를 즐겨 피웠고 이는 담배 피우는 여성에 대한 이미지가 낮아지는 편견에 일조했다. 남성들의 전유물 혹은 일부 여성들의 상징과 같은 담배는 마치 특별한 사연이 있어야만 납득되는가.   

        

영화 <말레나> (2000)에서 주인공 '말레나'는 광장을 나설 때면 늘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를 못 들 은척 하며 지나갔다.

그녀는 자신을 사냥하고 싶어 하는 남성들과 손가락질하는 여성들의 잘못된 욕망으로 인해 결국 타락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다니던 그녀는 남편을 잃고, 아버지를 잃고, 천박한 소문에 휩싸여 멘털이 무너진 다음 날, 고개를 들고 광장으로 나선다. 그리고 빈 테이블에 앉은 그녀가 꺼낸 것은 담배였다.

섹시하고 아름다운 게 죄가 된 그녀는 머리를 자르고 짙은 화장을 한 후 흑화의 피날레를 담배로 장식한다. 어려운 사연이 생긴  입에 담배를 물게 되는 스토리라인은 판타지일까, 현실일까?

 



흡연에 대한 정부의 규정이 강화되면서 길거리에서 흡연을 하는 사람의 비율도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길에서 일명 ‘길빵’을 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러나 같은 길빵을 하는 사람이어도 남성이 하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으나 여성이 하면 차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운전자들마저 시선을 여성에게 두고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쳐다본다. 요즘은 여성들이 흡연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는 카더라가 낯설지 않지만 여전히 여성의 흡연에 대한 터부가 높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치 원래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이젠 너무 흔해져서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는 식이다. 흡연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5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하다.


흡연하는 여성들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여성들도 흔하게 흡연을 즐겨왔으나 사회적 시선을 피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흡연을 했다는 관점은 왜 생각하지 않는가? 억압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여성들이 숨지 않고 양지로 나온 것이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흡연에 대해 삿대질을 하거나, 분노가 어린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들이대는 논리는 임신과 출산에 미치는 영향이다. 그러나 흡연이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마찬가지이며 남성만이 유전자 변형 확률로부터 자유롭다는 보장은 어느 의학지식에도 없다.


살다 보니 생긴 고통 때문에 흡연을 시작했을 수도 있고, 재미 삼아 시작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가 권해서 시작했을 수도 있다. 잊지 못하는 첫사랑 때문일 수도 있고, 인생을 저주하는 흑화 된 캐릭터가 되었을 때 하필 시작했을 수도 있다. 직업도 성별도 사연도 다 다양한 것이다. 판타지와 현실을 오고 가는 담배 산업은 중독을 이끄는 마케팅으로 편향을 만들고, 매체에 영향을 받는 개인이 흡연을 선택하는 스폿을 명확하게 자극한다.



한 번도 안 하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 하는 사람은 없다
변연계 자본주의가 비극인 것은 인간의 본성이 일반적으로 무해한 상업의 원칙에 악의적인 예외를 만들기 때문이다. 유익한 상업의 원칙은 시장의 테스트에서 살아남은 기술 혁신을 택해야 사회적 진보가 뒤따른다는 것이다. 역사는 가장 오래 살아남은 제품에 대한 가정을 정당화한다.*


담배는 신체와 정신을 지배하는 대표적인 중독 물질이다. 담배가 백해무익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담배를 필요로 한다. 한 번도 안 하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 하는 사람은 없다는 중독의 대명사이다. 담배가 사람들이 손이 쥐어지는 경로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주변의 권고나 사회적 분위기 혹은 개인의 어려움을 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손에 잡힌다. 그리고 그 경로에는 삶의 어려움을 신체적으로 빠르게, 정신적으로 즐겁게 해소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이 맞닿아있다. 기업의 마케팅은 그 지점을 자극시킨다.  

 

기업이 소비제품을 생산해내면 팔기 위해 마케팅을 시작한다. 사람들의 구매 욕구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쾌락을 선사할 수 있는 광고가 필요하다. 냉철한 메시지로는 소비가 일어나지 않는다. 본능에 가까운 감정을 건드려야 한다. 가장 쉬운 스토리는 사랑과 삶의 고뇌가 가득한 이야기이다.    


담배는 특별한 사연이 있어야 피울 수 있는 사유물이 아니다. 그저 사회적 낙인과 기업의 악덕 마케팅이 조합된 독성 물질이다. 소비자에게 담배는 궁금해서, 흔해서, 구하기 쉬워서 시작할 수 있는 합법적인 마약이다. 유해물질인 것을 알면서도 제조하는 생산자의 공급과 중독을 본성이라 생각하는 소비자의 수요가 맞물린 자본주의의 대표 상품이다.


담배는 사람의 수명을 매우 빠르게 줄이는 중독 물질로서도 성공했지만

담배는 사람의 판타지와 욕구를 자극하는 중독 상품으로써도 성공했다.





<참조자료>

1.「중독의 시대」 데이비드 T. 코트라이트

2. 말보로 (담배) 에 관한 루머 : 구글 검색 - 다음 카페 글 - http://blog.daum.net/cjk0102/4039

3. 말보로 (담배) 이름의 유래 : https://ko.wikipedia.org/wiki/%EB%A7%90%EB%B3%B4%EB%A1%9C_(%EB%8B%B4%EB%B0%B0)#%EC%9D%B4%EB%A6%84%EC%9D%98_%EC%9C%A0%EB%9E%98

4.「말레나」(2000) : https://youtu.be/zkBkTx-GL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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