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진짜 디토(Ditto)
유구한 역사의 핑크플러드 소녀인 나는 공식 브리즈가 아님에도 라이즈의 신보를 챙겨 듣는다. 라이즈의 새 싱글 <RIIZING>은 선공개된 곡 ‘Siren’을 포함해 총 5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글을 쓰는 현재 나는 5번 트랙 ‘One Kiss’를 약 168회째 재생하고 있다.
미모의 다국적 소년들이 불특정 다수의 브리즈에게 님들을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다고 수줍게 말하는 노래인 ‘One Kiss’를 듣는 순간 나의 머릿속에는 샤이니의 ‘Stand by me’(드라마 ‘꽃보다 남자’OST)가 재생되었다. 세련되진 않았지만 기교 없이 맑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부르는 데에서 오는 느낌은 앳된 얼굴의 소녀들이 녹음으로 둘러 쌓인 관념적 교실에서 노래하는 몽환적인 뉴트로와는 다른 것이었다. 두 노래 모두 과거의 기억을 자극한다. 그러나 라이즈의 ‘One Kiss’는 실존하는 나의 추억과 구체적인 경험을 상상하게 했고, 뉴진스의 ‘Ditto’는 미디어와 문화가 만들어 낸 ‘추구미’로서의 주입된 경험을 떠올리게 했다. 전자는 실제 나의 ‘노스탤지어(Nostalgie)’이고 후자는 외부의 요인에 의해 나에게 전이된 일종의 ‘가짜 노스탤지어’이다.
‘아네모이아(Anemoia)’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과거를 그리워하고 동경을 느끼는 것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70-90년대의 옷이나 소품, 인테리어를 가공하거나 그대로 가져오는 브랜딩은 우리의 아네모이아를 자극하고 소비를 유도한다. 레트로의 유행이 비단 한시적인 현상이 아님을 간파하고 가짜 노스탤지어를 감각적으로 주입시키는 것이다. 소비자의 대부분은 아날로그 카메라, 밑위가 짧은 로우라이즈 팬츠, 노이즈가 그대로 담긴 필터의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일상의 맥락에 침투하는 이미지는 점점 현실처럼 느껴지고, 소비자는 쉽게 몰입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뉴진스의 디토를 듣고 뮤직비디오를 보며 경험한 적 없는 청춘을 만끽하는 소녀들에 자신을 투영하고 시대의 감성에 녹아들 수 있는 것이다.
라이즈의 ‘원키스’도 표면적으로는 Y2k 에스테틱을 차용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몽환적이거나 아련하지 않다는 점에서 디토의 아네모이아와 구별된다. 그 시절 노래방 화면 같은 뮤직 비디오는 라이즈 멤버들이 포르투갈의 정취를 즐기고 시간을 보내는 장면만을 보여준다. 멤버들이 펼치는 화창한 서유럽에서의 아름다운 청춘드라마는 누가 봐도 카메라를 의식한 연기이기에 내 과거를 위탁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노래방 화면 말고 달리 레퍼런스가 떠오르지 않는 이러한 어색함과 촌스러움은 한국의 여중생, 여고생으로 살아온 시절을 불현듯 떠오르게 했다. 90년대생인 나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건 뛰어난 미감으로 곱게 다듬어낸 청춘 필름이 아니라, 방과 후 지하 노래방에서의 꿉꿉함이다. 아네모이아를 극대화한 영상미는 모든 걸 잠시 잊고 환상 너머의 기억에서 잠시 허우적댈 수 있게 해 주지만 있었던 일을 없던 일로 만들지는 못한다. 또 없었던 일을 있었던 일로 만들 수도 없다. 경험해 보지 않았기에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뉴트로’와 나의 진짜 추억의 간극은 ‘디토’가 나의 모두의 디토가 아님을 직시하게 한다. 환상 속 청소년기는 아름답게 프로듀싱된 가상의 세계일 뿐이며 보편적으로 공유한 공통의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미디어 속 디토를 향유하는 것은 내 것이 아니었다.
“웅장한 스트링과 힘찬 드럼이 벅찬 감성을 만드는 미디엄 템포의 팝 곡”이라는 설명답게 원키스의 멜로디는 벅차고 청량하며 가사는 전자사전에 담아 다니던 텍스트 파일 마냥 짜치게 로맨틱하다. 오천 원만 주면 키스해 준다던 ‘텍파’ 속 그놈이나 금잔디라는 별을 품고 있는 달이라던 구준표가 건넬 법 한 노랫말은 ’Stand by me’ 비슷한 멜로디에 녹아 벅찬 감정을 선사한다. 음악이 재생되는 3분 33초 동안 나는 꽃보다 남자 브로마이드를 구매하고, 필통을 F4의 사진으로 도배하며 상가 떡볶이집과 노래방을 전전했던 나의 그 시절을 상상한다. 없앨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보편적인 노스탤지어를, 시티팝이라든지 대만의 여름날 같은 감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나의 그 시절을.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거나 감성에 젖어 촉촉해지거나 아련해지지 않는다. 나의 진짜 추억은 사실 디토처럼 청량하지도, 그저 아름다움만 남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험했기에 알고 있는 추억, 또는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모두 품은 ‘원키스’의 멜로디와 가사는 가상의 레트로와 진짜 사이의 간극 속 나를 이질감 없이 과거로 호출한다. 직접 경험한 적 없는 미감으로 범벅된 것들을 동경하고 그리워하라고 하는 무수한 매체의 범람에서 나는 원키스를 들으며 나의 ‘진짜’ 디토를 체험한다.
https://youtu.be/46dquyaoe_c?si=8T6K5nW0Gvw_I6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