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가 우는 밤이면...
어제는 별이 졌다네
나의 가슴이 무너졌네
별은 그저 별일 뿐이야
모두들 내게 말하지만
(여행스케치, '별이 진다네' 중)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면 우린 이웃나라 중국을 욕하곤 하지만, 사실 약 30여 년 전 우리나라의 공해도 늘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했다. 퇴근하고 돌아오신 아버지의 흰 셔츠 옷깃이 늘 거뭇거뭇하게 변해있을 정도로 서울의 공기는 탁했다. 그런 서울의 스모그 속에 태어나고 자란 나는 하늘에서 별이 빛난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적어도 스무 살을 넘겨 군대에 가기 전까지는.
강원도 삼척에서의 군생활은 밤낮이 바뀐 날들의 연속이었다. 한밤중에 해안에 있는 초소에 투입되고 초소 안의 나무 의자에 앉아 밤을 지새우면서, 동해 밤바다 위에 가득 떠있는 별들을 원 없이 보았다. 어느 날 내 눈앞에서 유성우가 쉴 새 없이 떨어지던 날의 장면은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경이로웠다. 이등병 시절, 동기의 편지를 읽다가 내가 따르고 좋아하던 선배형이 유학 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옆에서 졸고 있는 고참한테 들킬세라 몰래 눈물을 찔끔거리던 그 초소에서의 밤에도 바다 위엔 정말 많은 별이 떠있었다.
이젠 누군가에게 '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면구스러운 나이가 되었다. 어제 밤공기가 좋아 하늘에 별이 많았다던지, 좋아하는 별자리가 있냐는 등의 이야기를 꺼낸다면 '저 아저씨가 오늘 무슨 일이 있는 건가'하는 의아한 눈빛을 받을게 분명하니까. 그래서 결국 그런 감정들이 그리울 때면 노래라는 영역으로 도피를 한다. 시대를 초월하여 '별'을 소재로 만든 노래는 너무나 많으니까. 별이라는 한 글자에서 느껴지는 예쁜 어감과 따뜻한 감성은 노래로 만들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매력적이어서였을까.
누군가는 적재의 '별 보러 가자'를, 또 누군가는 도경수의 '별 떨어진다'를, 또 어떤 이는 경서의 '밤하늘의 별을'을 좋아할지 모르겠다. 요즘 아이들이라면 얼마 전 드라마 OST로 사랑받았던 'Starlight'를 최애곡으로 꼽을지 모르겠지만, 난 그냥 별을 별이라고 하는 게 더 좋으니 패스. 이토록 별을 다룬 노래들이 많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별' 노래는 누가 뭐래도 여행스케치가 부른 '별이 진다네'다. 여름이 지나가고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하는 밤이 오면,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이 노래를 무의식적으로 찾아 무한반복해 듣는 것이 가을을 맞이하는 의식이 되어버렸다.
고등학교 때 단골 음반가게에 갔다가 우연히 구입한 여행스케치 Best CD는 그 후로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10년이 넘게 정말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앨범이다. 그 속을 채운 13곡 중 어떤 곡도 소홀히 듣기 아까운, 그래서 한곡 한곡을 가사집을 들여다보며 마치 시험공부하듯 그 노래들을 곱씹으며 들었더랬다. 그 노래들 중에서도 전주 첫 멜로디만으로도 날 무장해제 시키는 곡은 역시나 '별이 진다네'다.
누군가 나에게 기타를 배운 계기가 있냐고 물어보면, 난 늘 015B의 '슬픈 인연'과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를 연주하고 싶어서였다고 대답한다. '별이 진다네'는 남준봉의 맑은 목소리도 참 좋지만, 노래의 절정은 도입부를 악기가 아닌 귀뚜라미 소리로 채우는 감성과 그 뒤에 이어지는 어쿠스틱 기타 반주임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이젠 이 노래를 기타로 어설프게나마 칠 수 있게 되었지만, 난 언젠가 이 노래를 내 손으로 연주하는 장면을 꿈꿨던 고등학교 시절이 무척 그립다. 이젠 더 이상 일상에서 별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시간만큼은 밤바다 위에 별들이 가득했고 수많은 유성우에 황홀해했던 20대 초반의 군인이었던 나로 돌아간다. 젊은 나이에 지는 별이 되어버린 선배형의 명복을 빌며, 울음을 참고 밤바다와 밤하늘을 번갈아 바라보던 그때로.
https://youtu.be/J9opBQFpI8M?si=B5c4Nsk9fW9jXV7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