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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얘기하고 넌 웃어주고(by 펄스)

인간관계의 통찰이 담긴 노래

by radioholic
그때 그 소중했던 시간들은
다시 그 길을 거닐며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보고 싶어 널 만나고 싶어
난 이야기하고 넌 웃어주고
우리 둘만의 세상에서
(펄스, '난 얘기하고 넌 웃어주고')


이젠 친구들을 만나 왁자지껄하게 술 마시고 깔깔대며 웃고 노래방에 가서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다가, '아~ 잘 놀았다!'며 흐뭇하게 헤어지는 일은 없다. 그렇게 놀만한 친구들도 주변에 얼마 남지 않았고, 저렇게 놀 수 있는 체력과 열정이 없으니 술 마시며 노는 것 자체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서로를 익히 잘 아는 중년의 남자들끼리는 주절주절 나눌 이야기도 많지 않다 보니, 언젠가부터 가볍게 한잔 한 뒤에 LP 바에 가서 맥주 한 병씩 마시고 노래를 듣다 헤어지는 것이 편해졌다.


나와 저런 취향이 잘 맞는 중학교 친구 녀석은 LP 바에 갈 때마다 펄스의 '넌 얘기하고 넌 웃어주고'를 신청한다.(사실 이 앨범은 LP가 없긴 하지만 어떻게든 틀어주시더라) 이 노래는 왜 이렇게 들을 때마다 좋은 것이냐고, 대체 우리 시대에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명곡들이 넘쳐나는 것이냐는 감탄을 하면서. 신청한 노래가 흘러나오면 흐뭇한 표정으로 흥얼거리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노래가 끝나면 살짝 아쉬워하며 맥주를 목에 넘기는 모습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다. 이게 중년의 아저씨들이 즐거움을 찾는 소소한 방식이다.




한 사람이 얘기를 하면 다른 한 사람이 웃어주는 사이. 언뜻 당연하고 별거 아닌 것 같은 이런 관계가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인지를 한 살 한 살 나이가 쌓여가면서 알게 된다. 저런 관계가 잘 유지만 된다면 방송에서 넘쳐나는 '이혼숙려캠프'니 '결혼지옥'이니 하는 비극적인 콘텐츠들은 아마 소재를 잃고 설 자리를 잃지 않을까. 서로 자기 얘기만 하려 들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거나 긍정적으로 반응해주지 않는 관계가 얼마나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인지를 저런 방송들을 통해 우린 아주 극단적으로 느끼곤 한다.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와 웃음을 주고받는 관계는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관계들이 있다. 그것은 사랑을 나누는 사이일 수도 있고, 업무 목적으로 맺어진 비즈니스 관계일 수도 있다. 어떤 목적으로 이어진 관계냐에 따라 그것이 진행되는 양상과 깊이는 모두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한쪽의 이야기에 호의적으로 반응해 주는 관계는 더 긍정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웃는 낯에 침 뱉으랴'는 우리 선조의 속담처럼, 내 말에 웃어주는 사람에게 모질게 대하기는 참 어려운 노릇이니까. (참고로 웃는 낯에 침을 뱉는 사람은 상종을 안 하는 것이 인생을 사는데 큰 도움이 된다)




펄스의 '난 얘기하고 넌 웃어주고'에는 인간관계에 대한 모든 통찰이 다 들어있다. 서로 얘기하고 웃어주는 관계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그런 사람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가 이토록 흥겨운 멜로디 속에 역설적으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라디오에서 처음 들었던 여드름쟁이 고등학교 시절에 나에게 설렘을 주었던 이 노래는, 무려 28년이 지나 아저씨가 된 나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듣는 귀가 달라지면 같은 노래도 이토록 다르게 들린다.


90년대 댄스음악이라고 하면 듣기엔 정말 좋지만 살짝 가볍다거나 당시 유행에 치우친, 음악성이 없는 복제품이라고 여겨지는 경향이 있었다. 레트로 음악을 틀어주는 포차나 중년들이 즐겨 찾는 클럽에서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장르 정도로 치부될 때면 사실 화가 났다. 다소 사운드가 촌스럽더라도 무려 3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노래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그들은 모른다. 그리고 그 시절 노래들에 담긴 가사들이 시간이 흘러 또 다른 위안과 의미를 안겨준다는 것도. 나에게 이 노래는 그저 세기말 댄스곡이 아닌, 시간을 초월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어 준 참 고마운 노래다.



https://youtu.be/199jU2C2sqs

고마워요~ 이런 좋은 노래를 불러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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