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세 글자로 울리는 노래가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는 햇살에 마음을 맡기고
나는 너의 일을 떠올리며
수많은 생각에 슬퍼진다
(김윤아, 'Going Home' 中)
기다리던 택배가 왔다. 박스 포장을 뜯고 내용물을 감싸고 있던 비닐포장을 칼로 조심스레 걷어낸 뒤, 그 안에 들어있는 하얗고 동그란 판을 턴테이블 위에 올리고 바늘을 조심스레 얹었다. 한곡 한곡이 차례로 시작되었다가 끝이 난 뒤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던 네 번째 트랙이 시작되는 순간 들려오는 세 글자에 내 마음은 어김없이 무너지고, 뜨끈해지는 눈언저리를 달래 가며 노래를 끝까지 들어냈다.
집으로...
'집으로'라는, 어떤 감정 표현이나 수식어도 담기지 않은 건조한 세 음절의 가사로 시작되는 김윤아의 'Going Home'을 들으면, 응축된 분노와 하루의 고단함으로 인해 뾰족하게 날이 서있던 내 마음은 저항할 여지없이 무장해제가 되어버린다. 누구에게나 가슴을 후벼 파고 마음을 적시며 눈물샘을 터뜨리고야 마는 노래들이 한두 곡쯤은 있기 마련이고, 나도 그런 이유로 참 좋아하면서도 잘 듣지 않는 노래들이 있다. 하지만 이 노래처럼 시작부터 반주 없이 단 세 글자로 무방비 상태인 내 감정 속으로 훅 들어와 버리는 곡은 없었다. 그렇게 날 온통 흔들어놓음에도 계속 들을 수 밖에 없는 곡도.
사람들이 유독 '집'이라는 글자에 감정이입을 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곳에는 바깥에서 지치고 상처받은 나를 반겨주고 안아주는 누군가가 있다고 여겨서가 아닐까. 회사에선 무능한 직원이고 인간관계에서도 무시당하고 조롱받는 존재일지언정, 적어도 우리 집에서 나는 사랑받는 가족의 일원이고 권위 있는 가장일 수 있으니까. 온통 나에게 상처만 주는 세상에서 시달리다가도, 집에 돌아와 문을 닫는 순간부터 난 그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는 그 안도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는 소중한 감정이다.
이제는 나이 드신 엄마가 살짝 굽은 몸과 주름진 손으로 된장찌개와 오징어볶음을 해주시며 날 반겨주시는 곳, 함께 일을 마치고 퇴근한 배우자와 맥주를 나눠 마시며 하루의 고단함을 토로할 수 있는 곳, 문을 열면 깔깔대며 달려오는 아이들의 환영으로 바깥에서의 환멸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곳이 집 밖에 더 있을까. 바깥세상에서 온갖 수모와 험한 꼴을 감내하면서도 버틸 수가 있는 것은, 나에겐 돌아가서 숨을 돌릴 수 있는 집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허덕이고 힘겨워하면서도 그 집을 지켜내야만 하는 의무를 가지고 오늘도 살아간다.
이 세상은 너와 나에게도
잔인하고 두려운 곳이니까
언제라도 여기로 돌아와,
집이 있잖아, 내가 있잖아
(김윤아, 'Going Home' 中)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은 다가왔고 긴 연휴 동안 나와 와이프는 함께 양쪽 집을 다녀왔다. 명절이라고 해서 양가에서의 모습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저 우리는 모여서 각자가 준비해 온 전과 잡채 등을 어머님들이 준비하신 음식들과 함께 먹으며 준비하느라 고생했다는 인사를 나누고, 거실에 모여 앉아 고스톱을 치다가 기대어 앉아 TV를 보며 잡담을 하고, 이젠 제법 커서 어른들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다가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며 외출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특별하지 않은 시간들이었음에도 이 모든 일들이 애틋한 것은, 언젠간 사무치게 그리워질 집에서 나눈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연휴 전 도착한 김윤아의 음반을 듣다가 흘러나온 'Going Home'에 유독 마음이 흔들렸던 이유는 시간이 갈수록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애틋함이 점점 짙어져서 그런 것 같다. '응답하라 1988'의 엔딩 장면처럼 영원히 지키고 싶지만 언젠가는 결국 비어버리게 될 곳임을 알기에, 이젠 집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지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우리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집에서의 시간을 더욱 충실하고 따뜻하게 보내야 한다. 녹초가 된 우리가 터덜터덜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은 그곳뿐이니까.
부디 양가 부모님께서 건강하시기를, 특히 명절에 몸이 좋지 않으셨던 장인어른께서 빨리 쾌차하시기를, 처제네 부부가 그토록 원했던 이사를 무사히 마치고 새로운 집에서 행복하기를, 그리고 그곳에서 조카아이들이 구김살 없이 자랄 수 있기를, 누나들과 매형이 별 탈 없이 잘 지내기를, 그리고... 아버지가 좀 더 오랜 시간 우리들 곁에 머무르시기를. 그래서 우리가 다음 명절에도, 그다음 명절에도 집에 함께 모여 즐거울 수 있기를 소원해 본다. 그리고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의 집에도 무탈함과 평화로움이 깃들기를 바라며.
https://youtu.be/tW_OZTVXRDA?si=_Rp2rNq-aIM1JmZ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