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진 않더라도 찌르진 말자구요
주말 아침에 일어나서 세탁기를 돌리고 소파에 널브러져 휴대폰 삼매경에 빠져있다가 동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다. 대통령과 지역 주민이 모인 타운홀 미팅에서 한 시민이 무기계약직의 처우 개선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은 원론적으로는 동의하나 반대의 입장이 분명히 존재하므로 사회적 대화와 동의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로 화답했다. 어차피 무 자르듯 단칼에 해결할 수 없는 아주 어려운 문제이니 그 자리에서 답이 나올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내 마음이 아파졌던 것은, 그 영상에 달려있는 엄청난 강도의 비난의 댓글들이었다.
그렇게 억울하면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들어오면 되지 않았냐는 비아냥,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면 정규직으로 들어오기 위해 노력한 청년들의 억울함은 어쩌냐는 꾸짖음, 세상은 능력대로 인정받는 것인데 그런 요구들을 다 받아주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냐는 분노,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비난의 글들이 댓글창을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그 댓글들을 읽다가 마음이 울적해져서 조용히 유튜브를 닫았다. 입장과 입장, 의견과 의견이 서로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바닥을 볼 때까지 때리려는 비난과 혐오의 말들은 보는 사람의 기운을 다 빼버리는 것들이었다.
영상 속에서 처우 개선을 호소하신 그분의 말에도 상당 부분 공감하고, 그 영상에 모진 댓글을 다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인간은 늘 자신의 현재보다 나은 삶을 원하기 마련이고, 또한 내가 아주 어렵게 가졌거나 너무나 가지고 싶은 것을 타인이 쉽게 얻는 모습에 분노할 수밖에 없으니까. 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서러움과, 그런 서러움을 토로하는 모습을 정규직에 무임승차 하려 한다는 시선이 그 영상과 영상에 달린 댓글에서 격하게 충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충돌이 그저 단순한 갈등이 아닌, 능력주의를 가장한 조롱과 비아냥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양질의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그런 와중에 AI가 인간을 대체한다는 공포감이 확산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도 존재해 왔던 사람들 간의 갈등은 더 날이 서고 험악해지는 모양새다. 한 줌의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엄청난 스펙을 쌓느라 고생하는 청년들에겐, 이미 직장 안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이들이 더 좋은 처우를 요구하는 것이 자신들의 자리를 뺏으려는 몰염치로 비쳐질지 모른다. 하지만 처우 개선을 원하는 그들에겐 첫 시작점이 좋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생 낮은 수준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그래서 우린 결국 우리끼리 의자 뺏기 싸움을 하며 서로를 혐오하는 비극 속에 살아가야 한다. 그 의자의 수를 늘려야 한다는 당위는 약자들의 이전투구 속에서 증발해버리고 만다.
얼마 전 내가 다니는 직장의 신입사원들을 뽑기 위한 서류전형에 참가한 적이 있다. 수백 명이 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던 것은, 취업을 하기 위해 그들이 들인 노력의 과정이 정말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라떼는' 취업할 때 토익 900점이 고스펙의 척도였지만, 지금 청년들에게는 토익 따위는 스펙이라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수많은 경험과 자격증이 이력서를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아마 영상 속 댓글을 쓴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정규직 취업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이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난 악성 댓글을 다는 인간들은 아주 강력한 응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임에도, 그 영상에 달린 거친 댓글들에 대해서는 판단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댓글을 달았던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었다. 지금은 설령 당신들이 정규직이거나 정규직을 목전에 둔 입장일지 몰라도, 언제 갑자기 처지가 바뀔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회사가 어려워지거나 당신의 상황이 급변하여 지금의 위치가 아닌, 어딘가에서 당신이 비난했던 비정규직이나 심지어 실업자가 될 수도 있다고. 만약 그럴 때 당신들의 어려움에 대해 공감해주지 않고 비난만 일삼는 사람들만 가득할 때, 당신은 얼마나 외롭고 슬퍼질지를 꼭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우리의 인생은 결코 내비게이션처럼 우리가 설정한 대로만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린 너무 쉽게 잊고 산다.
세상이 각박해지다 못해 차갑게 얼어붙는 것만 같다. 이해와 포용 대신 배척과 증오가 득세하는 그런 세상.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이 미울 수도 있고 심지어 증오스러울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마음과 대상은 존재하니까. 다만 그럴 때 그 분노를 댓글을 공격수단으로 삼아 표출하는 것은 참아주었으면 좋겠다. 얼굴을 내놓고 자기 의견을 얘기하는 누군가를, 익명성 뒤에 숨어 혐오의 말로 공격하는 결과가 어떤 처참한 비극으로 발현되는지를 우리는 지금도 아프게 겪고 있으니까. 설령 나와 반대되는 말을 하는 사람을 안아줄 포용력은 없을지라도, 증오와 혐오의 칼로 찌르지는 말아 주시길. 그 칼이 언제 나에게 돌아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영상과 댓글들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검정치마의 'Antifreeze'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노래 속 가사처럼 우리들은 서로 얼어붙지 말고, 삭막하고 차갑게 얼어붙은 아스팔트 도시 위에서 함께 춤을 추며 절망과 싸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그렇게 서로 기대지 않으면 우리를 짓누르는 커다란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미약한 존재일 테니 말이다. 그런 유대감이 이 공동체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연대의식이 아닐지를 갑자기 추워진 주말 아침에 문득 생각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