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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끝난 후(by 샤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알기까지...

by radioholic
음악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샤프, '연극이 끝난 후' 中)


고음 부분은 음을 하나하나 천천히 짚어가며 연습하기. 빠르게 연주할 때 불안한 이유는 줄을 헷갈리거나 손가락 패턴이 완전히 익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천천히 정확한 줄과 손가락 순서를 익히면, 속도를 올릴 때 훨씬 더 안정감이 생길 거예요. 또한 어려운 구간에서는 몸에 힘을 주기보다, 호흡을 깊게 하며 집중을 유지하기.


학원 정기 연주회를 위한 첫 리허설을 치렀던 10월의 어느 주말, 리허설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학원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리허설 리뷰의 내용이다. 공연곡을 약 4개월 동안 그토록 많이 연습했음에도, 함께 공연할 학원생들과 선생님들 앞에서 손을 덜덜 떨면서 형편없이 리허설을 치른 것에 비해선 무척이나 따뜻하고 배려가 넘치는 피드백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난주 토요일에 열린 연주회에서, 난 저 피드백을 거의 고치지 못한 채 황망함 속에 무대를 마치고 내려와야 했다. '엉망이었다...'란 말을 마음속에서 수없이 곱씹으면서.


사실 자괴감 속에 피드백을 받은 이후 약 한 달의 시간 동안, 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리허설 때마다 날 패닉으로 몰아넣었던 고음 파트의 마의 구간을 극복하기 위해서 출근 전 한 시간, 퇴근 후 약 두 시간 동안 메트로놈을 켜놓고 그 구간을 속도별로 연습했다. 아무리 긴장이 돼도 그 여덟 마디 남짓한 구간만큼은 저절로 나올 수 있을 정도로 몸에 녹여 넣겠다는 마음으로 어림잡아 하루에 200번 정도 반복했지만 끝내 공연에서 극복해내지 못했다. 연습 땐 그토록 부드럽고 감미롭게 나오던 그 구간은, 수천번의 연습이 무색하게도 결국 무대에서 내 발목을 잡고야 말았으니까.


기타줄 위에 얹은 손이 덜덜 떨릴 때의 절망감이란...




지난 두 번의 정기 공연을 준비할 때도 리허설은 늘 나를 좌절케 했지만, 용케도 본 공연을 망쳐본 적은 없었다. 때문에 '아... 난 무대 체질인 건가'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번 공연에 임했지만, 첫 리허설부터 날 괴롭혔던 긴장과 손떨림을 결국 본 공연에서도 극복하지 못했다. 수없이 마인드컨트롤을 하고, 지난 공연에서의 좋은 기억들을 떠올리고, 청심환을 마시고, 대기공간에서 날 응원해 주는 다른 원생들과 수다를 떨고... 심지어 노래 제목에 어울리는 카포를 끼우고 기타에 꽃까지 붙이는 등 긴장을 없애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음에도.


난 네가 부적이 되어줄 줄 알았어...ㅎ


참담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내 얼굴을 보며 잘했다고, 괜찮았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의 격려에 웃음으로 답하고 케이스에 기타를 넣고 정리를 하며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정리된 것이 있다.


독주는 여기까지만....


나는 누군가의 앞에 나서는 걸 그리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내 기타 연주 소리가 무대를 채우기엔 너무 빈약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리허설이 시작된 이후 공연까지 약 한 달이 나에겐 사실 너무 괴로운 시간이었다. 이럴 것을 알면서도 굳이 독주 공연을 자처했던 것은, 한 번은 극복하고 가야 할 나의 숙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만 결국 난 그것을 감당할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는 사람은 혼자 오롯이 돋보이기보단, 누군가의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을 훨씬 좋아하고 어울린다는 것도.


내가 변덕규를 좋아했던 이유(출처 : 슬램덩크)




공연을 마치고 함께 공연을 한 사람들과 왁자지껄 이야기 나누고 사진을 찍은 뒤, 기타를 챙기고 나가다가 공연장을 돌아보았다. 피아노 한 대만 오롯이 남아있는 저 작은 무대가 왜 그렇게 나에겐 크고 무거운 공간으로 다가왔던 것일까. 연주를 하는 사람들의 긴장감과 열정, 그리고 관객들의 몰입과 박수가 사라져 버린 무대에는, 그룹 '샤프'의 '연극이 끝난 후' 속 가사처럼 고요한 정적만이 남아 있었다. 내가 저 위에서 손을 떨며 연주했던 약 4분 남짓의 시간이 아예 없었던 것처럼. 한바탕 난장이 끝나고 난 뒤의 허무함 속에서 우리는 분명 무언가를 깨닫고 느끼게 된다. 연극이 끝난 뒤 텅 빈 무대 위에서, 그 뜨거운 시간들이 남긴 잔해들이 우리에게 나지막이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네기라도 하는 것일까.


이번 공연은 비록 나에게 많은 좌절과 실망을 안겨주었지만, 반면에 나에게 남겨준 것도 많았다. 한 곡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연습의 과정이 필요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노력이 꼭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나에게 어울리는 것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느끼겠는가. 그리고 중년의 아저씨가 회사가 아닌 전혀 다른 공간에서 나만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 긴장을 하고 두근대면서 도전할 기회가 있었다는 것도 사실 참 고마운 일이 아니겠나.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조차 부담이 될 정도로, 정말 간만에 느껴본 몰입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비록 내겐 실패한 공연곡이 되었지만, 그 곡을 준비하는 다소 고통스러운 과정 덕분에 난 평생 잊어버리지 않고 기타로 칠 수 있는 좋은 연주곡을 얻게 되었다. 특히 날 울고 싶게 만들었던 마의 구간은 공연이 끝난 지금은 눈을 감고도 지판을 짚고 아르페지오를 할 지경이 되었으니 이걸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토록 날 울고 웃게 만들었던 그 애증 섞인 곡의 제목은... 바로 DJ Okawari의 'Flower Dance' 다.



https://youtu.be/s3uPXokhpnA

공연이 끝나고 난 뒤... 편안함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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