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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만보 Aug 07. 2023

엄마의 기저귀는 무섭다

이상한 나라의 할머니-엄마와 함께 차차차

어머니 아버지와 한동네 산 지 벌써 석 달째로 접어든다. 처음 두 달은 열과 성을 다해 가급적 '일주일 내내' 어머니 집에서 먹고 자고 일했다. 회사에 가는 날을 빼고는 어머니 옆에서 일하고 (재택이 가능한 직종이니 얼마나 감사한지, 정말 감사한 거냐?), 삼시세끼를 챙기고, 기저귀를 갈고, 몸을 씻겨드렸다. 누가 봐도 평온한 일상이고, 제법 익숙해진 터라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내심 올해 안으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야지, 뭐 이런 생각도 하면서 방문해주시는 재가요양보호사님과 깔깔 웃기도 하고 이따금 지나온 서로의 역사를 풀어놓기도 한다. 요양보호사님 연세가 많으셔서 두 분은 이제 친구 같다. 하여 샘이 오시면 간식을 챙겨드리고, 넷플릭스로 흘러간 옛 영화를 틀어 드린다. 그러면 두 분은 다정하게 주거니 받거니 영화를 보신다. 그런 하루하루다. 평화롭다.


사진: UnsplashGeorg Arthur Pflueger


그런데 실은 남의 눈에만 그렇다. 두 달째 접어들면서부터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폭풍의 원인은 첫 번째가 엄마의 "기저귀 갈기", 두 번째가 "삼시세끼 밥하기"다. 엄마는 이상하게도 보호사 샘이 오시는 시간을 딱 뺀 앞뒤 시간에 기저귀에 일을 보신다. 그냥 일만 보시면 문제가 덜할 텐데, 자꾸 손을 넣어 만지신다. 그러다 보니 몸에 옷에 이불에 요에 휴지통에 .... 주변 거의 모든 것에 흔적이 확실하게 남는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손이다. 손톱 아래 낀 오물을 빼내려면 따뜻한 물과 비누로 손을 닦고, 처리용 치솔을 가져다가 손톱 아래를 일일이 솔질해야 한다. 그럼에도 남아 있는 잔존물은 이쑤시개를 써서 조심스레 파내야 한다. 이 일을 이른 아침부터 할 때도 있고, 출근하기 직전 할 때도 있고, 하루에 세 번 할 때도 있다.


물론 처음보다는 익숙하다. 첫날은 정말이지 눈앞이 하얬는데. 내 아이의 기저귀를 갈 때와 엄마의 기저귀를 가는 것은 똑같은 일인데 너무도 다르게 느껴진다. 왜 그럴까? 바로 이 생각 때문에 오래도록 마음이 좋지 않았다. "싫음"과 "죄책감", "포기"와 "의무감", "재가보호"와 "요양병원" 사이에서  나란 사람의 그릇부터 부모에 대한 자식의 마음에 이르기까지 세고 헤아리며 몇 번이나 히말라야 같은 막막한 산을 넘고 대서양과 태평양을 몇 번이나 건너야 했다. 이제는 냄새만으로 먼저 일어서 준비를 하고, 마스크를 끼고 장갑을 끼고, "엄마"를 부른다. 그럼 이젠 정말 익숙해진 걸까, 정말로? 독일어에 'gerne'란 단어가 있다. 우리말로 굳이 표현하자면 '기꺼이' '자발적으로' 정도 되겠다. 익숙해졌다는 느낌이 올 때마다, 이 정도는 괜찮아 하는 느낌이 올 때마다 나에게 'gerne' 하고 묻게 된다.


사진: UnsplashSergiu Vălenaș


어떤 일은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영영 익숙해지지 않는 일도 있을 것이다. 치매 초기, 운신을 하지 못하는 엄마,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는 엄마를 돌보는 일도 그렇다. 이 여름에 (올여름은 유난히 덥지 않은가)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춥다고 하는 엄마 때문에 에어컨도 못 틀고, 삼시세끼 준비하느라 녹초가 되다 보면, 나의 시간도 줄줄 녹아 흐르는 것만 같다. 그리고 꼭 이럴 때 드는 뻔한 생각 하나, "아, 지금 엄마만 아니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을 텐데. 이 책도 읽고 저 책도 읽었을 텐데."

이봐,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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