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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지 Feb 27. 2020

돌봄이 짐이 아닌 사회를 바라며

조기현,『아빠의 아빠가 됐다』(2019, 이매진)

나는 세 살 터울 두 아이를 키운다. 초등학교 입학식을 치르고 손 붙들어 등교시켜주기까지 십 년 걸렸다. 오가다 마주치는 이웃들은 비슷한 처지의 주부들이었다. 학교, 학원, 시장, 때로는 병원에 다니다 보니 어느새 아이는 훌쩍 커 있었다. 아이 손을 놓아도 될 때쯤 이웃들에게 다른 숙제가 닥치는 것을 보았다. ‘누구 엄마가 요즘 안 보이더라’, ‘집안 일로 바쁘다더라’ 하면 그 이유는 십중팔구 간병 때문이었다. 나이 든 부모 중 누군가가 앓기 시작하면서 육아 터널을 빠져나온 주부는 다시 간병이라는 터널에 갇히는 것이었다. 돌봄으로 점철된 주부에게 자신을 위한 시간은 돌봄과 돌봄 사이 틈새에서만 가능해 보였다.


내 부모님도 오랜 기간 할아버지를 간병했다. 집안 내력이라는 중풍을 피하지 못한 할아버지는 두 번의 뇌졸중 끝에 거동을 못 하시게 되었다. 반신불수의 가족을 돌보는 것이 어떤 일인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일 년에 서너 번 할아버지를 찾아뵈었을 뿐이라. 거구의 환자 남편을 돌보기에 역부족이었던 할머니는 간병인을 고용하셨다. 명절에 뵐 때면 손주들에게 과일을 깎아주시며 입버릇처럼 ‘내가 빨리 죽어야지’를 되뇌셨다. 그러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보다 삼 주 먼저 세상을 뜨셨고 우리 가족은 한 달 사이 두 번 상을 치렀다. 내가 기억하는 건 부모님의 한숨, 17년간의 간병비, 그리고 아빠의 부탁이다. “내게 중풍이 오면, 내 머리맡에 면도칼을 줘."


조기현 작가의 『아빠의 아빠가 됐다』에 비하면 내 사연은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소소하다. 92년생 조기현은 부모 이혼 후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고 한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은 포기했지만 영화감독이나 댄서나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스무 살 되던 해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그는 의도치 않게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어버렸다. 단편영화 공부를 무기한 미룬 채 병원비를 마련하려 공장과 공사장에서 일하고,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을 받으려 모멸감을 참아냈다. 주변은 그를 효자 아들이라 불렀지만 한때 그는 인생의 짐이 되어버린 아버지가 죽었으면 하고 바랐다. 아버지의 보호자로 9년을 보낸 작가는 돌봄이 개인의 일이 아니라 사회에서 공론화되어야 할 문제임을 인식하고, 돌봄의 책임을 가족이 떠안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이제는 시민과 국가가 돌봄을 논할 때라고 했다.


대통령 후보들이 내어놓는 복지국가 공약은 엇비슷하다. 소득격차를 줄이고 기회의 평등을 높이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복지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과거 한국 사회 복지는 ‘가족’에 빚을 졌다. 실업 수당이 없던 시절에는 도시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으면 ‘고향 집’에 돌아가 가족과 머물다 기회를 보아 다시 상경했다. 노후 복지가 없던 시절에는 늙은 부모 세대를 자식 세대가 부양했다.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을 가족이 맡았던 셈이다. 이제 고향 집도 부모 봉양도 사라지고 있으며 아빠는 돈 벌고 엄마는 살림하는 4인 가족의 모습은 옛말이 되었다. 맞벌이 가족, 1인 가족, 동성가족, 조손가족, 비혼들의 동거 등 가족이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었다. 이제 ‘돌봄’의 주체는 가족에서 시민 전체, 즉 국가로 다시 정의될 필요가 있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돌봄을 받지 못하고, 돌봄을 수행하는 사람은 자기 삶이 위태로워지고, 돌봄 관련 공적 제도는 50대 여성 노동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유지된다. 악순환이 반복된다. 돌봄은 누군가를 보호하며 관계 맺는 방식이라고 보기 어렵다(p.19)” 그래서 지금 한국의 돌봄은 ‘짐’이다. 진로를 탐색해야 할 시기 아버지의 간호를 떠맡게 된 청년,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뎌 한창 일을 배울 시기 임신과 출산으로 육아를 떠안을 수밖에 없는 주부. 사회경제적인 여건은 달라도 ‘돌봄을 선택할 자유’가 없다는 점은 같다. 돌봄 문제를 해결하려고 국가가 도입한 제도는 아직 미비하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50대 여성 요양보호사들의 저임금에 기대어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아이돌봄서비스’는 소득금액에 따라 이용요금이 달라지며 정부지원시간 한도가 정해져 있어 이 서비스만으로는 온전한 돌봄이 가능하지 않다. 제도를 이용하더라도 결국 누군가의 돌봄 노동이 더 필요하다는 뜻이다.


조기현 작가는 아버지의 보호자로서 경제적, 정신적으로 막중한 부담을 떠안는 동시에 책임감도 느꼈다고 한다. 아버지는 가족이기도 했지만 사회적이고 신체적인 약자였기에 자신은 ‘효자’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아버지를 돌봤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돕는 것으로 접근할 때 돌봄은 ‘가족’이 아닌 ‘사회’의 역할로 확장된다. 나는 유럽의 복지 선진국들처럼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돌봄에서 자유로운 사회를 바란다. 돌봄으로 경제적, 정신적인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되려면 돌봄 문제의 공론화가 필요하다. 작가의 바람대로 『아빠의 아빠가 됐다』가 그 발판이 되리라 생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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