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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지 Apr 13. 2020

엄마와 베이스 기타

엄마와 나는 자주 안 만난다. 일 년에 네댓 번, 더 적을 때도 있다. 엄마 아빠는 생신날이 같으니 생신에 한 번 모이고, 명절 두 번, 작년 내 생일에도 뵈었던가? 아이 친구 엄마들과 사귀다 보면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데 친정에 자주 안 간다고 하면 이웃들이 물었다.


"부모님이 외국에 사시나요?"

"아뇨, 경기도라 길이 안 막힐 땐 차로 삼십 분밖에 안 걸려요."

"그래요? 엄마 안 보고 싶어요?"


이런 대화가 많았다. 처음엔 당황했다. '내 나이가 곧 마흔인데 엄마가 보고 싶냐니!' 생각하면서도 세상엔 애틋한 모녀가 많은가 보다 싶었다.  그래서 "저도 보고 싶죠~" 라 답하곤 했다.


사실 우리는 명절에도 안 만날 때가 있다. 엄마와 아빠는 설과 추석에 무조건 여행을 가시니 여정이 길어지면 못 뵙는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렇게 정하셨다. 차례는 명절 전 주말에 간단히 모시고 연휴에는 여행을 가시기로. 지난 설에는 2박 3일 남해 사량도에서 산행을 하셨고 작년 추석에는 중국에 가셨다. 덕분에 나도 편하다. 시댁에서 이른 아침 차례 모시고 손님상까지 내고 나면 드러누워 쉬고 싶은 마음뿐이니까. 의무감에 가는 친정은 불편하다. 내 피곤함이 풀릴 때쯤이면 엄마도 여독을 푸시고 나에게 전화를 하신다. "잘 쉬었니? 안 피곤하면 올래?"

    

그렇게 만나면 우리는 식당에 간다. 연휴에는 손에 물 묻히기 싫다는 핑계를 대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음식을 잘한다면 집에서 차려냈을까? 우리 모녀는 솜씨가 별로다. 부엌일 자체를 싫어한다. 어느 해 맛있고 어느 해 맛없는 갈비찜 복불복은 재미없다. 잡채와 동그랑땡 한다고 다듬고 썰고 볶고 난장판에 짜네 싱겁네 하다 남은 음식은 결국 냉동실로 들어간다. 차리고 치우다 보면 제대로 된 대화를 할 틈이 없다. 그러니 외식이 낫다는 걸 우린 경험으로 알고 있다. 컵라면 한 사발이라도 편하게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먹는 게 더 좋다.

 

평생 맞벌이를 해 오신 엄마는 음식 만들 시간이 없었다지만 주부인 나는 왜 솜씨가 없는 걸까? 초반의 성공 경험이 중요한 듯하다. 신혼 때 게장이나 배추김치 등을 시도했는데 몇 번 망치고는 의욕을 잃었다. 장 본 돈과 시간은 그렇다 치고, 간장 물 끓이고 배추 절이고 무 채 썰고 재료 손질하느라 들인 공이 아까웠다. 그래도 깍두기나 파김치 정도는 담는다. 엄마는 이런 딸이 걱정되시는지 김치를 사 보내시곤 했다. 그러실 필요 없다는데도, 우리 집은 일 년에 몇 포기 안 먹는다는데도.


돌아보면 엄마는 내 친구들 엄마와 달랐다. 결혼한 친구들은 부모님이 손주를 찾으셔서 매 주말 친정이나 시댁에 간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주중엔 일로 주말엔 취미로 바쁘셔서 찾아 뵐 틈이 없었다. 엄마는 '손주는 올 때 반갑고, 갈 때 더 반갑다'는 격언을 알려 주셨다. 그래도 봄이면 공원에서 만나 손주들 머리에 철쭉을 꽂아 주셨고 겨울이면 썰매장에도 데려가셨다. 한 번은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시는 바람에 엄마 손목이 부러졌다. 얼마나 죄송하던지 한동안 아이들 데리고 친정 갈 마음이 안 생겼다.

      

아빠가 퇴직을 하실 즈음 엄마와 아빠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셨다. 노후는 음악과 함께 하리라 결심하시고 음악 연습실에 등록하신 것. 베이스 기타를 배우느라 부어 오른 손가락을 보여주시며 엄마는 공연을 앞두고 있어서 마음이 바쁘다 하셨다. 그러다 문득 생각나신 듯 "이제 내 친구들도 다들 할머니가 되었거든. 그런데 하나같이 손주를 봐주고 있더라. 나도 네 아이들을 봐줬으면 네가 더 편했을까? 나 너무 날라리 할머니지?" 하며 웃으셨다. 나는 "엄마는 엄마 일이 있는데 무슨 손주를 봐요. 연습실 열심히 다니셔요." 했다.

 

지인들이 부모님 안부를 물어오면 '우리 엄만 요즘 베이스 기타 치신다'고 한다. 열에 아홉은 놀란다. 체력과 열정이 부럽다고, 노후의 롤 모델로 삼고 싶다고. 부모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돈 벌어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킨 것으로 충분하지 않나. 자식들 집에 반찬과 김치를 나르기보다는 취미 즐기고 건강 챙기는 노후를 보낼 수는 없을까. 엄마가 되면 자식 위해 사는 것과 나를 위해 사는 것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나는 소설 『엄마를 부탁해』에 나오는 희생적인 엄마 싫다. 그 누구도 남편과 자식 위해 '할 수 없는 일까지 다 해내며 사느라 텅텅 비어 가는 엄마'로 살지 않았으면 한다. 



Photo by Frame Harira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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