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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상하는 토끼 Feb 17. 2023

몸에서 올라온 동기는 힘이 세다

중등임용 초수 합격의 결정적 요인

    사실 수험 생활을 시작하면서 늘 머릿속 한쪽에서는 합격 후기를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저도 ~한 일이 있었지만 해냈습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어요!’와 같은 말로 끝을 지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합격하고 일 년이 지난 지금에야 적어본다. 합격 발표 난 이후로 정말 쓸 시간이 아니, 지난날을 회고할 만큼의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다신 스터디 카페에 안 갈 줄 알았는데, 수업 준비로 정기권을 끊을 줄 누가 알았겠냐고. 무튼 겨울 방학이 끝나기 전에 조금이라도 기억을 상기하여 합격 수기를 적어본다.      



    나는 대학생 때 편입을 고려할 정도로 전공에 흥미가 없었고 공부도 열심히 안 했다. 당연히 졸업하고 전공과 무관한 일을 했다. 그러다 31살에 임용고시 준비해 보겠다고 했을 때, 과 선배에게 임용고시 우습게 보지 말라는 충고와 내 동기들의 재수, 삼수 경험을 들어야 했다. 그렇지만 도전했고 일 년 안에 합격했다. 유달리 머리가 좋은 것도, 엉덩이가 무거운 것도 아니다. 합격 후기 몇 개 읽고 남들 다 따라 하는 커리큘럼대로 공부했다. 그래도 나만의 차별화된 합격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몸에서 나온 동기다.     



     여기 생전 오렌지를 맛본 적 없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에게는 오렌지의 맛과 영양가를 설명해 준다. 또 다른 사람에게는 당이 필요할 때 오렌지 주스를 마시게 하여 상큼함과 영양을 직접 느끼게 했다. 그 다음 힘든 과제를 시키고 보상으로 오렌지 주스를 준다고 하면 누가 열심히 할까? 필요를 '아는' 사람과 '느낀' 사람의 간절함은 분명 다르다. 나는 이 시험의 필요를 오롯이 몸으로 느껴버렸다.      



    임용고시를 생각하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다. 다니던 상담 대학원 근처에 있는 중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를 병행하게 되었다. 교사는 적성에 잘 맞았다. 중1 수업이라 수업 준비는 어렵지 않았고 그 전 직장에서 행정은 질리게 해서 빠르게 적응했다. 무엇보다 학생들과의 교감이 가장 즐거웠다. 같은 부서 선생님들께서 임용 시험을 계속 권유하셨다. 나를 좋게 봐주셔서 그러시나 보다 하고 흘러들었다.            


   

    하루는 교무실에 부장님이랑 단둘이 있었다. 적막을 깨고 부장님이 임용을 생각하지 않는 이유를 진지하게 물어보셨다. 부장님은 본인 주변에도 상담 쪽으로 일하는 사람이 많다며 상담의 열악한 현실을 안다고 했다. 교육도 상담의 일종인데 굳이 상담사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냐고, 교사하면서 상담에 계속 뜻을 두고 집필 활동과 외부 강연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반박할 수 없었다. 그 열악한 현실을 이미 체험한 뒤였다. 그 전 직장은 구청에서 위탁받아 운영되는 상담센터였다. 소장의 의견에 전적으로 맞춰야 하는 수직적 구조, 너어무 좁은 사무실이 주는 스트레스, 대학원 진학과 자격증 수련에 엄청난 돈이 들지만, 그에 비해 좁은 취업 기회와 열악한 처우... 학교에서 일하면서 그 전과 대비되는 좋은 점들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교사 또한 성장을 돕는 일이니, 마음에 대한 통찰과 사랑의 역량을 꾸준히 키우고 충분한 내공이 갖춰지면 개인 상담센터를 개원해야겠다는 설계가 그려졌다.      


    기간제 계약 기간이 끝날 때, 이제 공부에만 올인하겠다고 부장님께 말했다. 임용 생각도 없었던 애가 갑자기 급발진한다고 생각하셨는지 부장님은 다시 나를 설득했다. 당시 학교에 있던 신규 선생님들도 삼수하고 들어왔다며, 어차피 한 번에 합격하기 어려우니 수험 기간 오래 잡고 기간제 교사를 계속 병행하면서 공부하라고 했다. "싫어요. 그렇게 힘든 시험이니깐, 일 년만 고생하고 끝낼래요.”라고 대답했다.     



    무슨 자신감으로 초수 합격을 기대했냐고 묻는다면, 내 몸에서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20살 전의 나는 오롯이 외부로부터 주입된 동기로 움직였다. 그래서 이를 갈고 대학생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스스로 내 몸의 느낌에 귀 기울이고 내 안에서 올라오는 진정한 필요를 알아차려서 그에 따른 책임 지기를 계속 훈련해 왔다. 그러니 이번에 올라온 내 필요에도 책임질 자신이 있었다.      



    수험생활을 하면서 동기의 중요성을 더 확실히 느꼈다. 시험에 왜 붙어야 하는지 몸으로 아는 사람은 힘들고 어려울 때, 도망가려는 마음들을 꽉 붙들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 절심함이 있다. 그러나 생각의 수준에서 동기 부여가 된 사람들은 온 마음을 한 곳에 모으는 힘이 부족하다. 자아 분열로 갈등한다고 에너지가 센다. 공부 방법, 공부 시간은 똑같아도 동기의 깊이가 집중의 깊이를 만들어낸다.     



    노량진에서 기상 스터디를 했었다. 벌금을 걸고 아침에 특정 장소 모여서 서로 인사한 뒤, 각자의 독서실로 가는 것이다.그때 멤버들이랑 독서실 가는 방향이 같아서 한 3분 정도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며 어색함을 메꿨었다. 그 시간이 아까워서 제안을 했다. "각자 교육학에서 나올 것 같은 내용 하나씩 말해볼까요?" 반응이 썩 호의적이진 않았다. '이 시간마저도 공부를 해야 하나'라는 저항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꿋꿋이 늘 그 제안을 했다. "아니, 우리가 이렇게 말했던 것 중에 하나가 시험에 나와서 '아~ 그때 그거!' 하면서 답 적을 수 있다니깐요!" 그리고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한 멤버가 '총평관'에 대해서 말을 했는데, 처음 들어본 거라 되물었다. 그 사람이 내 질문에 대답을 해주려고 하는데, 다른 장수생 멤버가 "아~ 그런 거 안 나와요"해서 말을 더 이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사람이 짧게 '수행평가 같은 거'라고 말한 것을 들었다. 그 기억 하나로 시험장에서 총평관의 평가 방법을 묻는 교육학 문제를 풀 수 있었다. 나는 남들보다 오래 공부할 자신은 없었다. 대신 깨어있는 모든 순간은 다 공부 시간으로 쓰려고 애썼다.      



    법륜 스님께서 공무원 시험에 계속 떨어지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성냥개비로 성냥갑을 많이 긋는다고 불이 붙지 않는다. 단 한 번이라도, 힘을 제대로 줘 긁을 때 불이 붙는다."

수험 기간과 상관없이 한번의 공부에도 일치된 방향으로 온 에너지를 확 쏟는 것이 필요하다. 온 마음을 다해서 한 번에 끝낸다. 단 하나의 불꽃을 피운다는 마음으로 시험을 준비했다.



단 하나의 불꽃, 1년 동안 내 방에 붙여져 있던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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