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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DE Jun 08. 2024

ETF의 세상 8
- 블랙록과 래리 핑크

MR. 10 Trillion



2021년 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에서조차 경이로운 액수를 굴리는 기업이 나타났다. 4분기 말 기준 발표된 운용 자금의 규모는 10 Trillion USD로 원화 기준 1.3경 원을 상회한다. 최초로 1 Trillion USD의 시가총액을 달성했던 애플처럼 경이로운 기록이 경신됐다. 일반적인 경제 구조에선 적게는 “억” 그리고 많아야 “조” 단위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으로 “경”단위의 숫자가 튀어나왔다. 참고로 21년 당시 미국의 GDP가 23 Trilion USD이니 10 Trillion USD는 천조국으로 불리는 미국 GDP의 43%에 해당하는 자본금이다. 


이 기업의 이름은 바로 ETF 제국을 이룬 블랙록이다. 창업자의 이름은 래리 핑크(Larry Fink). 누군가의 유산 없이 맨 손으로 창업해 월가의 제왕으로 등극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월가를 주름잡는 골드만삭스, JPM 및 씨티와 같은 이름은 매우 익숙할 것이다. 이들이 08년도 금융위기의 중심에 있었던 점도 한몫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은 역사가 길다. 100년이 넘은 기업들이다. 하지만 오늘 소개할 블랙록은 역사가 이들에 비해 매우 짧다. 30년에 불과하다. 30년 남짓한 기간에 경 단위의 돈을 굴리는 기업이 됐다.


이번 장에서는 창업자 래리 핑크(Larry Fink)가 맨바닥에서 시작해 월가의 정점이 되는 과정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보글은 ETF의 토대가 되는 인덱스 펀드를 만들었지만, 실제로 ETF에는 회의적이었다. 이로 인해 뱅가드는 보글이 은퇴한 이후인 2001년에서야 ETF를 출시했다. 모스트는 실제로 ETF를 창시했으나 본인만의 기업이 없었다. 창시자로서 영광을 크게 누리지 못했다. 반면 핑크는 인덱스 펀드를 설립하지도 않았고 ETF를 만들지도 않았다. 핑크는 패시브 투자와는 아주 동 떨어진 채권 운용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ETF의 잠재성을 잘 파악했고 이를 통해 블랙록의 월가의 최대 규모 운용사로 만들었다. ETF의 가장 큰 수혜자는 래리 핑크와 블랙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몰락한 후계자


출처: Bloomberg

창업자 래리 핑크는 UCLA 학부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동대학 MBA 과정에서 부동산을 전공했다. 모스트와 유사하게 경제 및 재무학 같은 전통적인 금융 백그라운드는 없었다. 하지만 래리 핑크는 졸업 이후 First Boston이란 회사 취업해 채권 트레이딩으로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나름 MBA에서 배운 부동산 지식을 활용해 부동산을 담보로 발행된 모기지 채권을 주로 거래했다. 


입사 이후 핑크는 빠르게 승진해 31살의 나이에 회사의 가장 젊은 임원이 됐다. CEO 자리는 거의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CEO 가도를 밟는 젊은 임원 –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Financial Times와의 인터뷰에서 핑크는 그 당시 본인에 대해 스스로를 하늘 높은 줄 몰랐던 얼간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핑크의 드높은 자존감은 1986년 한순간 증발하게 된다. 당시 이자율의 급작스러운 움직임을 헷지 하지 못해 핑크와 그의 팀은 100 Million USD에 달하는 돈을 잃었다. 이로 인해 CEO 후계자였던 핑크는 구도에서 밀려나 결국 1988년 회사를 나오게 된다. 


명예를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기는 쉽다는 말이 있듯이 핑크는 입사 이후 First Boston에 큰돈을 벌어다 줬지만 한순간의 큰 실패로 CEO 후계자 라인에서 퇴출당하게 됐다. 다만 핑크는 혼자 나오지 않고 본인과 함께 일했던 최측근들과 함께 퇴사했다. 그리고 채권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최고의 자산운용사를 만들기로 다짐했다. 결국 핑크가 First Boston에서 얻은 가장 큰 자산은 CEO 후계자 타이틀이 아닌 퇴사를 함께 할 정도로 신뢰가 굳건한 동료들이었던 것이다.


잘못된 인수 합병의 결과로 책임을 지고 퇴사한 보글. 금리 변동을 헷지 못해 큰 손실을 내고 퇴사한 핑크. 보글과 핑크가 겪은 젊은 시절의 성공 및 실패 그리고 불명예스러운 퇴사. 그리고 과정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동료들을 함께 데리고 나온 사례는 평행 우주처럼 유사하다. 




블랙록의 출범


주력 아이템으로 채권을 선택했고 인력까지 구성했으나 핑크에게는 돈이 없었다. 그래서 핑크는 당시 사모펀드의 제왕인 블랙스톤(Blackstone)의 스티븐 슈워츠먼(Steven Schwarzman) 회장을 찾아가 50% 지분을 대가로 5백만 USD를 지원받았다. 그리고 브랜드 가치를 고려해 신생 벤처 투자 운용사의 사명을 Blackstone Financial Management로 명명했다. 블랙스톤의 위명을 활용해 회사의 사세를 키우는 전략이었다. 


인수 합병으로 CEO 자리에서 잘렸던 보글은 인수 합병에 학을 땠는지 뱅가드는 창립 이후 40년 동안 단 1건의 인수 합병도 하지 않았다. 2021년에 매우 이례적으로 Just Invest라는 회사를 최초로 인수했다. 인수 합병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는 미국에서, 심지어 금융권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마찬가지로 First Boston에서 이자율을 제대로 헤지 하지 못해 퇴출당한 핑크는 리스크 관리에 극도로 민감했다. 이로 인해 핑크는 자산운용도 운용이지만 리스크 매니지먼트 프로세스 정립에 큰 공을 들였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최고의 리스크 매니지먼트 프로그램인 ALADDIN이다. 이는 Asset(자산), Liability(부채), Debt(채무) and Derivative(파생상품) Investment Network의 약자로 1경 원을 굴리는 블랙록의 근간이 되는 IT 기술이다.


순항하던 핑크호(號)는 얼마 지나지 않아 쩐주인 블랙스톤과 더 이상 양립하기 힘들어졌다. 이유는 Blackstone Financial Management가 커질수록 핑크는 인재들에게 신규 지분을 발행해 나눠줬고 이는 기존 50%였던 블랙스톤의 지분을 희석시켰기 때문이다. 블랙스톤과의 이혼이 임박하자 핑크는 슈워츠먼 회장을 다시 찾아가 신규 사명을 허락받았다. 왜냐면 블랙스톤이 이미 존재하기에 이와 유사한 이름을 핑크가 허락 없이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핑크가 택했던 신규 사명은 바로 Blackrock이었다. 슈워츠먼은 블랙스톤과 유사한 이름인 블랙록을 핑크가 블랙스톤에 보이는 경의로 생각했다. 이렇게 블랙록은 1994년 블랙스톤으로부터 독립해 1999년 10월 증권 시장에 상장했다. 당시 블랙록이 운용했던 자금 규모는 165 Million USD(2,000억 원)였다. 10 Trillion USD인 현재에 비하면 태양 앞에 반딧불 수준인 금액이었다.




ALADDIN 기반의 Solution 서비스


블랙락이 다른 자산운용사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단순 AUM의 크기가 아니다. 바로 ALADDIN 기반의 솔루션 비즈니스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ALADDIN은 금융업의 MRI 혹은 CT 기술과 유사하다고 평가받는다. 수술 전 MRI 및 CT를 통해 환자의 정확한 상태를 측정하는 것처럼 ALADDIN은 특정 자산의 상태를 면밀하게 분석한다. 


2008년도 금융 위기 당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 주요 요인으로 CDO라는 파생상품이 있었다. 즉 A라는 자산을 기반으로 B라는 계약을 하고 다시 B라는 계약을 기반으로 C라는 계약이 맺어졌다. 즉 C의 가치가 B에 연동되고 다시금 A에 연동되는 구조로 단계가 뒤로 가면 갈수록 정상적인 가치 평가(Valuation)가 불가능해진다. 물론 누구나 기초 자산인 부동산 실물 시장(A)이 죽으면 B와 C가 모두 부실 자산이 되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정확히 얼마만큼 부실 자산인지(40%? 50%?) 측정하는 것은 쉬운 영역이 아니다.


ALADDIN은 현존하는 리스크 매니지먼트 프로그램 중 최고로 평가받는다. 그렇기에 블랙록은 ALADDIN을 기반으로 다양한 기관들과 자문 솔루션 서비스를 제공해 오고 있다. 블랙락의 고객 커버리지는 정부, 연기금 및 중앙은행 등 광범위하다. 심지어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조차 블랙록의 고객 중 하나다. 


실제로 2020년 코로나 패닉이 정점을 달했던 3월 연준은 금기를 깨고 회사채 시장에 개입했다. 미국의 회사채를 매입해 코로나 리스크가 신용 위기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그런데 당시 연준이 회사채 매입의 방식으로 선택했던 수단이 바로 블랙록의 회사채 ETF(티커: LQD) 매입이었다. 간단히 말해 연준이 LQD 회사채 ETF에 돈을 넣고 블랙록이 그 돈으로 회사채 시장에 들어가 회사채를 매입하는 프로세스다. 


이는 가장 핵심적인 공공기관 중 하나인 중앙은행이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줬다는 엄청난 논란을 야기했다. 물론 블랙록은 연준으로부터 LQD 운용 보수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Financial Times가 지적했듯이 이는 간접적인 홍보 효과를 낳는다 – “천조국 중앙은행이 산 블랙록의 ETF” 이런 광고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펀드 및 ETF 상품이 블랙록 매출의 절대다수이지만, 일반 운용사와 달리 이윤 창출의 채널이 보다 다각화되어 있다. 위 차트에서 나타나듯이 Aladdin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블랙록 전체 매출의 8%가량을 차지한다. 핑크의 트라우마가 경쟁적인 엣지로 승화한 사례다.




액티브 하우스에서 ETF의 제왕으로


지금까지 스토리를 보면 결국 블랙록은 좀 잘 나가는, 리스크 매니지먼트가 탄탄한 액티브 전략을 구사하는 채권 운용사다. 이는 오늘날의 블랙록과는 매우 상이한 이미지다. 지금의 블랙록은 대규모의 패시브 투자 전략 위주의 ETF 상품을 운용하는 자산운용사이기 때문이다. 


액티브 하우스였던 블랙록이 패시브의 제왕이 된 배경에는 금융 위기 이후 ISHARES ETF와 같은 패시브 상품에 주력하는 Barclays Global Investors(BGI) 인수가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ISHARES는 실제로 블랙록이 만든 것이 아니라 바클레이스가 만든 상품이다. 비유하면 LVMH가 티파니를 인수하고 티파니 상품 라인을 그대로 활용하는 것과 같다. 

위의 차트에서 나타나듯이 블랙록의 AUM은 2008년 당시 미미했으나 2009년 BGI를 인수하면서 급격하게 증가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상승해 2021년 최초로 10 Trillion USD를 기록하게 된다.


금융 위기 이후 투자 패러다임은 ETF로 완벽하게 전환됐다. 우선 양적완화로 대규모 자금이 풀리며 상당수가 금융 시장으로 유입되며 증시를 끌어올렸다. 동시에 글로벌 경제가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하며 여러 비용에 대해 인색해졌다. 수익률이 20% 나는 구간에선 1%의 비용은 별게 아닐 수 있으나 수익률이 7,8%인 상황에선 1%의 비용은 엄청난 비중을 차지한다. 이로 인해 글로벌 투자자들은 저비용 + 분산투자의 장점을 지닌 ETF에 매료됐다. 


이러한 이유에서 블랙록은 ISHARES 인수는 금융 업계의 가장 완벽한 인수 합병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블랙록은 BGI를 인수한 이후 3년 간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패시브 투자의 BGI와 액티프 채권 운용으로 시작된 블랙록 사이에는 매우기 힘들었던 엄청난 문화적 간극이 있었기 때문이다. 병합 과정에서 BGI 출신 임원 절반이 퇴사했으며, 핑크는 마키아벨리식 군주론을 펼쳤다. BGI 출신 임원은 이를 다음과 같이 상기했다.


왕(핑크)은 영주들(임원)의 절대적인 복종을 원했다. 그렇지 않은 자들을 모두 숙청했다.
“The prince [Fink] needed all the barons to commit to total loyalty, and basically killed off all the barons that wouldn’t do so.”




적응과 생존


블랙록이란 회사를 ETF의 왕 혹은 월가의 제왕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블랙록을 가장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표현은 아니다. 블랙록은 애초에 채권 운용으로 시작했던 회사이며 BGI 인수를 통해 ETF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그 어떤 운용사 보다 ETF 사업을 크게 그리고 잘한다. 실제 ETF 사업의 기회는 뱅가드에게 먼저 갔다. 보글이 만약 모스트의 제안을 받아들였으면 어땠을까? 혹은 BGI가 ISHARES 브랜드를 팔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혹은 모스트와 함께 최초로 SPY를 상장시켰던 스테이트 스트리트가 ETF 사업에 좀 더 진심이었으면 어땠을까? 이 모든 게 가정이지만, 결국 ETF 사업 확장의 기회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왔다고 볼 수 있다. ETF라는 신은 공평했다. 핑크는 이 기회를 가장 적극적으로 잡았을 뿐이다.


액티브 채권 운용사로 시작했으면 어떠한가? 결국 블랙록에게 ETF와 패시브 투자란 새로운 기회였고 적응해야 할 시대의 흐름이며 생존의 수단이었다. 2024년 1월 블랙록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출시했다. 혹자는 비트코인은 변동성이 너무 심해 고객에게 제공해서는 안 되는 자산이라고 한다. 그래서 전통적인 운용사에서 다루지 말아야 할 상품이라고 한다. 블랙록에게 이는 무슨 의미일까? 전통 자산운용사로 시작했으면 어떠한가? 고객이 원하고 시대가 원하는 상품임에 이견이 없다면 출시한다. 


또 다른 적응과 생존의 과정일 뿐이다.



-출처-

https://www.ft.com/content/7dfd1e3d-e256-4656-a96d-1204538d75cd

https://www.afr.com/wealth/investing/the-us10-trillion-man-how-larry-fink-became-king-of-wall-st-20211011-p58y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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