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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트레킹 중 찾아온 고산병

해발고도 5,643m 칼라파타르를 향한 히말라야 트레킹


산소가 부족해서 그런지 깊게 잠들지 못했다.

여러 차례 잠에서 깼고 다시 잠들 때마다 계속 무언가 꿈을 꾸었다.

다들 하나같이 이상한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로 아침을 시작했다.

아침으로 간단히 오믈렛을 시켰는데,
너무 간단해서 문제였다.
계란 두어 개 정도를 풀어서 얇게 펴낸 듯 터무니없이 적은 양에 말도 안 되게 비싼 가격...

그렇다고 하나를 더 시키기엔 너무 비싸고..


히말라야의 롯지에서 파는 음식은 결코 싸지 않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른다.
그도 그럴게,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없어 물자를 나르는 데에는 사람이 직접 들고 가거나 당나귀나 야크 같은 동물들을 이용해 날라야 한다.
실제로, 마을과 마을 사이를 오가며 물자를 나르는 포터들과 동물들이 굉장히 많이 지나간다.



오늘의 목적지는 ‘딩보체’라는 마을로 해발고도 4,410m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다.


위 사진 속에 보이는 골짜기 사이를 한참을 가로질러야 하며, 육안으로는 대체 어디쯤에 마을이 있는지는 짐작조차 하기 힘들었다.


일단 가보자!



지난밤 머물렀던 ‘텡보체’라는 마을에서 30분간 내려가면 ‘데보체’라는 마을이 있는데, 녹지 않은 눈길과 빙판 때문에 아이젠을 끼워야 했다.

계곡 사이 곳곳에는 산사태의 흔적인지 무너진 절벽들이 많이 보였다.



깊은 계곡 절벽 사이를 잇는 다리를 건너자 비교적 평지 같은 오르막길이 나왔다.



햇빛은 구름에 가려졌고, 계곡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날카로웠다.

땀이 나는 느낌이 들면서도 추워서 패딩을 입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계속 망설이다 결국 패딩을 벗고 바람막이만 입은 채로 걸었다.



절벽길을 따라 보이는 깊은 계곡과 히말라야의 산세는 무척이나 황량하면서도 차가운 느낌을 주었다.


비교적 고도가 낮은 루클라와 남체 부근에서는 수많은 당나귀와 야크의 배설물의 악취가 코를 찔렀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그 수도 적어지고, 냄새조차 얼어붙는 것인지 악취가 나는 것을 느끼질 못했다.



딩보체에 닿기 전 ‘소마레’라는 마을에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짐을 풀었다.

아침을 오믈렛 하나 먹었기에 상당히 배고픈 상태였고, 무얼 주문할까 고민하다 며칠 전 호주 친구 중 한 명이 감자튀김 위에 치즈가 올려진 음식을 맛있게 먹었던 게 생각나서 주문했다.


맛은 나쁘지 않았으나 양이 꽤 많았다.
그래서인지 이 음식을 먹은 후로 두 시간 동안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 들었다.

안 그래도 고산에서는 소화가 잘 안되는데, 또 어리석게도 다 먹으려고 했던 게 실수였다.

인간은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항상 절제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하는데,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조금 빨리 걸어서인지 추위 때문인지 머리까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고산병은 아니겠지..?


고산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물을 최대한 많이 마셔야 했지만 물도 많이 없었고 너무 차가워서 자주 안마시게 되었다.

일시적으로 그런 거겠지 하며, 속도를 늦추고 호흡에 집중하며 걸어 올라갔다.

호주 친구 중 ‘벤’이라는 친구는 선두에 있던 내가 후미로 빠지자 내게 괜찮으냐고 물었다.
조금 어지럽고 두통이 있다고 말하자, 고맙게도 내 속도에 맞춰 걸어주며 자기 물도 내게 나눠주었다.

비록 ‘남체 바자르’에서 고산 적응일을 하루 가졌다고는 하나 그 뒤 이틀에 걸쳐 고도를 1km를 높였으니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내일 고산 적응일 없이 로부체(4,910m)까지 올라가려고 했었는데 고산 증세가 나타나니 문제였다.

타이트한 일정 때문에 하산을 3일을 고려했었는데, 만약 고산 적응일을 하루 더 갖는다고 하면 2일 안으로 하산을 해야 하는 꽤나 힘든 일정이 된다.

그래도 자칫 욕심을 부렸다간 칼라파타르 근처에도 못 가서 고산병 때문에 하산해야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선 오늘 목적지인 딩보체에서 하루 더 머물며 고산 적응일을 가져야 했다.

고산 적응일을 가졌음에도 증세가 나아지지 않고 더 심해지면, 진짜 하산해야겠지....?


이미 하산까지 고려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도 아쉽게 느껴졌다.


그래도 어째... 목숨은 하나인데..


고산증세가 나타났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올랐다가는 정말 큰일을 치를 수도 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그 직전에 헬기에 의해 강제 하산을 당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최소 300만 원부터 많게는 1000만 원까지 부르는 게 값이기에, 어떤 최악의 경우라도 피하고 싶었다.

아직 젊기에 도전할 수 있는 날은 많이 남아있다.
설령 이번에 포기하게 되더라도 다음번에 도전해서 성공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을 갖기로 했다.

숙소에서 나선 지 약 7시간 만에 목적지인 ‘딩보체(4,410m)’에 도착했다.

롯지의 식당 중앙에 있는 난로가 따뜻하게 반겨주었다.


그럼에도 몸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고, 한기가 가시질 않아 계속 오들오들 떨었다.
추운 몸이라도 달래기 위해 저녁으로 따뜻한 국물이 있는 걸 찾다가 한국 라면이 있길래 주문했다.

그냥 신라면인데, 차라리 내가 직접 끓이는 게 더 맛있었을 텐데...


한참 양이 부족했지만, 조금만 먹고 저녁 8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밤새 산소의 부족함과 냉혹한 추위에 여러 번을 잠에서 깨며, 지끈거리는 두통을 느꼈다.

원래 계획이었던 로부체(4,910m)에 가려니 도저히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려올 때 조금 힘들더라도 올라갈 때 천천히 올라가자. 급하게 가다가 고산병이라도 오면 다 물거품이니..


호흡을 가다듬고 명상을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산소가 턱없이 부족함이 느껴졌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식당으로 향했다.
고산병 약을 먹기 위해선 뭐라도 뱃속에 집어넣어야만 했고 마늘 수프를 주문했다.

이제 고산병 약도 두 알밖에 남지 않았다.

하루에 한 알씩 먹고 있는데, 이젠 아침저녁으로 먹어야 할 것 같은데, 두 알밖에 남지 않았다니..


다들 오늘은 고산 적응일로 이곳에서 하루 더 머무는 일정이었고 나도 오늘 로부체에 못 오를 거라 거의 확신했던 터라, 이곳에 하루 더 머물며 함께 고산 적응일을 갖기로 했다.

고도에 적응하는 데엔 주변에 조금 높은 고도에 올라갔다 오는 게 가장 좋으나, 도저히 밖을 걸어 다닐 힘조차 나질 않았다.

하나, 둘 고도 적응을 위해 롯지를 떠나기 시작했고, 롯지엔 나와 시드니에서 온 네명의 친구들만 남아있었다.

따뜻한 차를 주문해서 계속 마시기 시작했다.

아마도 어제 트레킹 중에 물이 너무 차가워서 자주 안 마셨기에 고산병 증세가 온 것일 수도 있다.

만약, 오늘 여기서 더 심해지거나 나아지지 않는다면 포기하고 하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외엔 방법이 없었다.

나아지지 않았는데 억지로 감행하다간 더 심해져서 하산조차 하기 힘든 상태가 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을 테고 그전에 헬기를 불러 하산을 하게 되면 그나마 목숨은 건지겠지만, 세계일주를 하기 위해 모아둔 돈을 다 잃게 될 것이고 물거품이 될 것이다.
그건 정말이지 상상도 하기 싫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따뜻한 차를 계속 마시다 보니 두통이 차츰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두통은 가라앉고 있는데 가만히 앉아있자니, 추위에 몸이 떨리고 고도 적응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기에 남아있던 호주 친구들과 뒷산에 오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언덕이었고, 무리를 하지 않는 날이기에 천천히 쉬면서 올라갔다.

언덕 위에는 등반을 하다 목숨을 잃은 셰르파들을 기리는 돌무덤들이 세워져 있었다.



호주 친구들은 돌무덤을 따라서 돌을 쌓으며 놀았고, 나는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최대한 안정을 취했다.

그다지 높지 않은 높이에 독수리 몇 마리가 먹이를 찾아다니며 유유히 비행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그다지 높지 않은 높이라지만,  고도 약 5천 미터의 상공을 날아다니는 것이다.

언덕 위는 어림잡아 고도 약 4,700~4,800m 정도 되는 것 같다.

저 멀리서 구름이 우리 쪽으로 몰려들고 있었고, 우리 주위를 감싸기 전에 하산하기로 했다.
천천히 2시간에 걸쳐 올라왔던 언덕길을 20분 만에 내려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열려있는 상점이 있기에 혹시나 고산병 약이 있을까 잠시 들렀다.


남미에서 유명한 고산병 약으로 ‘소로체 필’ 이 있다면,
네팔에는 ‘다이아목스'가 있다.

하지만, 내가 찾던 다이아목스는 없었고 무언가 성분이 적혀있는 알약들뿐이었다.

고산병 약 성분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알아보고 다시 오기로 하고 간단히 간식거리를 샀다.


확실히 아침에 비해서는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다.
오늘 쉬기를 정말 잘한 듯했다.
만약 오늘 무리해서 산행을 감행했다면, 지금 어디서 어떻게 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점심으로 피자를 먹고, 계속해서 따뜻한 차를 마셨다.
아침 일찍 고소 적응을 위해 떠났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속속히 도착했다.

호주 친구들 중 한 명이 고산병 약을 보여주어 성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세타졸라마이드


분명 상점에서 같은 성분의 약을 보았다.

다시 상점으로 가서 같은 성분을 가진 약을 구입했다.
이걸로 고산병 약을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번씩 먹을 수 있다.
고산병 증세는 다행히 다 가라앉았고, 약도 넉넉히 있으니 마음이 놓였다.

고산병 약 ‘다이아목스’ 의 주요 성분 ‘아세타졸라마이드’


저녁에 호주 친구들과 '업 앤 다운'이라는 카드게임을 했는데 처음 해보는 데다가 룰이 어려워서 갈피를 못 잡고 있었으나 내가 계속 이기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다 내가 게임 룰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다들 내 점수를 바짝 따라오는 또 다른 기현상..
그러나 게임은 나의 승리로 끝이 났다.

저녁으로 네팔식 전통 만두인 모모를 먹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만약, 오늘 내가 무리해서 로부체에 갔다면 난 지금 살아있었을까?

이제 목적지인 칼라파타르에 도달하기까지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내일 무사히 로부체(4,910m)에 도달하게 되면, 그다음 날 칼라파타르 (5,643m)에 오르게 된다.
아직 실감이 나진 않지만 이제 이 기나긴 여정도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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