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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EastAgent Aug 15. 2019

신의 선물일까 저주일까?

무지함에 대하여

몇 달 동안 여러 가지 책을 읽으며 신에 대해 내가 이해한 방식대로 접어두려 한다. 특히 "신과 나눈 이야기"의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지만 나는 똑같은 문장을 보고 나와는 다르게 느끼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따라서 여기 쓴 내용은 온전히 내가 이해한 방식대로임을 미리 밝힌다.



우선 나는 "신은 전능하다"라는 공리로부터 출발하려 한다. 이것은 반박당하길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전능함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이며 신은 또한 전능하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많은 종교에서 신을 하나의 개체로 여긴다. 하지만 나는 
신의 형상을 하나의 개체로 한정하는 것은 신의 권능에 대한 도전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선 첫째로 전능함은 전지, 즉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능력 또한 갖추고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다면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 된다. 왜냐하면 전능함을 가진 개체는 모든 존재를 알고 있고 모든 존재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전능함(신)은 모든 존재를 알고 모든 존재를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모든 것 그 자체일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실제로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떠나서 오로지 전능함에서 시작된 논리적인 추론이다. 따라서 신의 형상을 하나의 개체로 한정하기보다는  "신은 모든 것",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이다"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이 가설이 의미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자. 우선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개체가 있다. 그 개체는 신체+마음, 또는 신체+마음+영혼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나'라는 개체 또한 신의 조각들이다. 하지만 중요하게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신은 '나'이다"라는 명제는 참이 될 수 있지만, "'나'는 신이다"라는 명제는 참이 아닐 수 있다. '나'라는 존재는 신의 조각으로서 존재할 수 있지만, 신이 '나'로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신이라는 그릇이 나라는 그릇보다 크기 때문에 신은 '나'일 수는 있지만 내가 신일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신은 모든 것"이라는 명제는 "신은 전재 하다"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이 글에서 나는 이 명제 또한 전제하겠다.


그렇다면 전능한 신에게 인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간에게 전능한 신보다 우월한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전지, 전능, 전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생에서 행복이나 성취를 느낀 순간을 한번 상상해 보자. 인생의 카타르시스는 항상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그 차이에서 생긴다. 갈증이 미미 할 때 습관적으로 먹는 물의 맛과 오랜 시간 물을 먹을 수 없다가 갈증이 극에 달했을 때 먹는 물의 맛은 많은 차이가 있다. 심화된 갈증은 "맛있는 물"을 먹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된다. 또 다른 예로, 우리는 시험이 끝난 직후 엄청난 해방감을 느낀다. 평소에는 시간이 많아도 해방감과 같은 자유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시험을 준비할 때처럼 자신을 어떤 것에 한 동안 구속시켰다가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때 엄청난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갈증이 심하면 심할수록, 구속이 심하면 심할수록 우리는 그것으로 해방됐을 때 쾌감은 더 커진다.


그렇다면 이제 전능한 신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자. 전능함에 갈증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떤 존재가 신에게 갈증이나 구속감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언제든 갈증이나 구속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고, 또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신이 부정적인 감정을 갖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신은 인간이 느끼는 성취감이나 쾌감을 느낄 길이 없다. 성취라는 것 역시 자신이 이전에 성취하지 않았고 또 그것을 염원했던 것을 자신이 성취했을 때 생기는 것이다. 신은 이미 모든 것을 가졌고 성취할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성취감"이라는 것을 인간처럼 느끼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공리가 말하는 "전능함"이 사실이라면 신은 이 불가능 하저 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은 인간을 통해서 이것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때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지"이다. 우리는 신처럼 미래의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미래가 두렵기만 하다. 갈증과 구속을 느낄 때도 우리는 이 갈증과 구속이 미래에도 지속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무지"는 성취감, 안도감, 그리고, 행복감과 같은 어떤 감정 변화를 느끼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무지"를 그냥 인지하라고 말하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새삼 깊이 있게 들린다. 만약 신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이 "전능함"의 일부로서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면 라면 우리는 "무지"를 어떻게 봐야 할까? 행복을 위한 축복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끊임없는 갈증을 주는 저주로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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