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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뉴 Oct 17. 2024

산티아고를 가고 싶어요

꿈을 먹고사는 사람

   스무 살, 반대 속에서 신학교를 선택했다. 그리고 유난히도 좋았던 자유를 느끼며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시골 촌놈이 서울생활을 하려니 이만저만 불편한 게 많았다. 시골 친구들에게서 볼 수 없는 매정함은 나에겐 너무 매콤한 맛이었다. 재채기를 한참 한 뒤에나 진정이 되었던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많이도 헤매었다. 그렇게 무난한 듯 무난하지 않은 듯 보내고 있던 내게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어떤 선배가 그랬는지, 친구가 그랬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 누가 말해줬는지보다, 그 순례길이라는 단어가 꽉 박혀 버렸다. 여행이라고는 수학여행 빼고는 없었던 촌놈이 해외여행은 생각도 못해본 말이었다. 근데 왜 그렇게 그 단에 꽂혔는지, 지워지지 않았다. 낯선 땅에서 800km를 걸어야 하는 게 정말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스무 살이 되면서 없던 용기도 다 생겼지만, 정작 가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돈도 없었고, 무엇보다 쫄보였다. 내가.   




   그렇게 가슴속 깊이 산티아고에 대한 꿈을 묻어둔 채 시간은 흘렀다. 가끔씩 조심스럽게 꺼내어 쳐다보며 가볼까 말까를 수십 번 고민했지만, 여전히 난 쫄보였다. 다른 건 척척 잘 해냈으면서 이건 왜 그렇게도 망설이게 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목사가 되려면 필수로 진학했어야 할 대학원 진학을 포기했다. 원래는 연세대학원을 가려고 준비했으나 빈약한 주머니 사정으로 과감히 포기하고 사역에 뛰어들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니 전도사로서 열심히 일을 했다. 28살이 딱 되었을 때, 갑작스럽게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8년 걸렸다. 어떤 이들은 하고자 하는 일들에 대해 망설임이 없이 바로 진행하는데 나는 그것이 너무 부러웠다. 나는 마음을 먹는 기간만 자그마치 8년이나 걸렸다. 마음을 먹었으니 이제부터는 일사천리이다. 제일 어려웠던 게 돈이었다. 전도사는 워낙 박봉인지라, 돈을 모으는 게 쉽지 않다. 그 무렵 제주도로 일터를 옮기기까지 하여 힘들어졌다. 준비하는 기간이 길어짐으로 산티아고는 또 내면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았다.      




  1년이 지났을까. 제주에서 큰 실패를 겪은 후 몸도 마음도 다 죽어가던 그때. 산티아고에 다시 눈에 들어왔고, 1년 바짝 벌어서 가야겠다는 심산으로 공돌이가 되었다. 서른 살 되는 해에 출발할 수 있겠다 싶었다. 많은 공부를 하였고, 비행기표도 끊었다. 운동도 열심히 하여 체력도 준비해 두었다. 이제 출발만 남겨 두었다. 꿈이라는 녀석을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회사며, 친구며, 가족이며, 말하지 않은 데가 없었다. ‘이제 곧 간다’   


  코로나가 터져버렸다. 그 순간 나는 그나마 남아 있던 색도 잃어버린 연한 회색의 색으로 변했다. 어떻게 준비했는데, 이렇게 길이 막히다니. 정말이지 화가 났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안 되었을 경우의 반발력도 심각했다. 깊은 우울로 빠져들었다. 마치 보상을 갈구하듯 충동적으로 바뀌었다. 취소하는데도 애를 먹어 며칠을 고생하면서 환불 처리를 했다. 코로나의 ‘코’ 자만 들려도 치가 떨렸다. 10년을 준비했는데...    

 



  이제 더 이상 산티아고 순례길을 못 갈 것 같았다. 현실의 벽은 점점 더 높아졌고, 무엇보다 심하게 꺾인 마음을 다시 잡기에 힘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은 꿈을 먹고사는 존재이다. 하고 싶은 게 마음속에 아직 남아있다면 그것이 살아가는 데 힘을 주기도 한다. 삶을 구동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꿈이라고 생각한다. 꿈은 에너지가 되며, 사람을 목표와 계획을 세우는 철저한 존재로 바꾸어 주기도 한다.      


  키에르케고오르는 “아직 갈 길은 멀고 낯설지만 바람은 언제나 날 설레게 한다.”라는 말을 했다. 바람이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면, 그것은 내가 낯선 곳으로 갈 용기가 생겼다는 말로 들렸다. 용기를 갖게 되면 그 용기가 바람이 되어 멀고 낯선 길에 대해 설레게 할 수 있다. 용기를 얻고 난 뒤에는 꽝으로 가득한 ‘언젠가’라는 복권을 긁지 말길 바란다. 또한 꼭 용기를 얻어 나와 함께 방향을 다시 찾길 바란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이제 나도 다시 꺼내 쳐다보기 시작했다. 시기를 알 수 없다만, 준비하려 한다. 그 사이 많은 일들과 어려운 일들도 지나가겠지만, 그때마다 꿈을 향한 나의 가속 페달에 브레이크가 걸리겠지만, 어쩌겠는가. 한 번 피어난 불꽃은 강제로 꺼버리지 않는 한 다 타기 전까지 끌 수 없다. 삶이 다른 의미로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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