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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웃라이어 교사 Mar 18. 2024

소나타를 향하여 2

피아노를 치며 배운 것 : 꾸준함

 내가 피아노를 배우려고 피아노 학원을 알아보던 때 사람들은 1~2달 잠깐 배우다가 그만두겠거니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피아노를 계속 배우고 있다고 하면 많이들 놀란다. 그만큼 가벼운 삶을 살아온 것일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게 된다.

(솔직하게 말하면 가볍게 살아온 부분이 많다.)


 피아노 학원은 내 직장인 초등학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그곳에는 학교 학생들도 많이 다니고 있었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피아노를 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자기보다 못 치는 것에 놀랐고, 학교 복도에서 나를 만나면 피아노 잘 못 친다고 놀리기도 하였다. 그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뭐든지 자신보다 잘하는, 잘해야 하는 존재였나 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것을 깨 주는, 선생님도 처음 하는 것들은 어렵다는, 시작은 누구나 다 똑같다는 것을 알려준 계기가 된 것 같아 뿌듯하다.


 내가 피아노 학원을 다닌다고 하니 2명의 학교 선생님이 피아노를 배우겠다며 학원에 등록했다. 1~2달쯤 같이 다니다가 어느 날 2명 모두 그만두고 다시 나 홀로 다니게 되었다. 꾸준함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꾸준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처음에 나는 열심히꾸준히가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피아노를 배우며 결론적으로는 두 용어가 서로 다른 의미임을 알게 되었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내가 가진 역량을 쏟아부으며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이라는 말이 전제되는데, '과열'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계속 한계점 부근에 자신을 위치시키며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비극적인 부분은 누구나 자신의 역량 또는 행동에는 변동성(fluctuation)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하려고, 즉 역량을 쏟아부어 한계점 부근에 계속 머무르려 해도 그곳에 지속적으로 머무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변동성으로 인한 상태의 하락은 스트레스와 좌절을 가져다준다. 

 누구나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나는 평소에 관심 있는 분야의 자격증을 따기 위해 종종 시험공부를 하는데 공부를 열심히 하다가 잘 안 되는 순간이 다가오면, 이제까지 얼마나 준비했느냐와는 상관없이, 갑자기 그만두곤 한다. “어차피 이거 없다고 해서 인생에 큰 어려움이 오는 것도 아니고, 다음 시험 기회도 있지 않은가?” 그만둠에 따라 발생하는 스트레스와 좌절은 간단히 합리화로 치환된다. 임용 시험을 준비할 때에도 막판에 가서 이렇게 다 던져버리는 동기들을 많이 보았다. 그 이유의 근본은 자신이 예상한(목표로 세운) 것보다 열심히 하지 않았음을, 또는 자신이 열심히 하지 않는 상태임을 비관하는 마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도 처음에는 열심히 해보려고 하다가 과정이나 결과가 조금이라도 자신의 성에 차지 않으면 곧잘 포기하고 아예 하지 않아 버리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꾸준한 것은 위에서 말한 열심히와는 조금은 다르다. 꾸준하다는 것이 나로 하여금 내 행동을 한계점 부근에 위치시키라고 명령하지는 않는다. 그저 놓치지 말고 계속해서 해 나가라고 말한다. 내가 처음 다닌 피아노 학원의 원장님은 나에게 일단 여러 곡을 많이 쳐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곡이 완성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칠 줄만 안다고 여겨지면 다음 곡으로 곧바로 넘어가곤 하였다. 이다음에 다닌 학원에서는 이와는 정반대의 방법으로 원장님이 지도해 주셨고, 지금도 그 정반대의 방법으로 연습하고 있지만 그래도 처음 피아노 학원 원장님이 나에게 지도했던 방법이 어떤 것을 배우는 초창기에는 매우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처음 피아노 학원에서 모든 곡을 정밀하게 분석하면 쳤다면, 모든 과제가 도전이고 나에게 열심히 할 것을 강하게 요구한다면 얼마 되지 않아 피아노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꾸준함은, 꾸준히 하게 만드는 것은 그냥 그 시간에 와서 앉아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알려주었다. 열심히 하는 것은 꾸준함이 갖춰진 뒤에, 습관과 역량이 본궤도에 올라온 후에 시작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쓰는 글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나는 지금까지 몇 번 블로그를 개설했다 지웠다를 반복했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내 블로그에는 정말 잘 쓴 글을 올리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과 관련한 게시글 하나하나를 쓰는데 매우 고통스러웠다. 하나의 게시글을 쓰는데 몇 주가 걸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고통을 겪는다고 해서 좋은 글이 써지는 것도 아니었다. 전형적인 열심히는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은 경우이다. 몇 번 글을 올린 뒤에 예상대로 블로그를 던져버렸다. 그러나 지금은 잘 쓰건 못 쓰건 그냥 시간을 정해놓고 글쓰기를 한다. 이렇게 꾸준히 쓰다 보면 유창해지고 그러다 잘 안 써지면 글쓰기에 관한 책도 읽으면서 내 글쓰기 스타일도 수정해보고 하는 과정 속에서 내 글은 점점 좋아지지 않을까?

 

 김연아 선수와의 인터뷰 중에 나온 지금도 많이 회자되는 장면이 있다. "무슨 생각하면서 (스트레칭을) 하세요?"라는 촬영자의 물음에 김연아 선수는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고 대답한다. 이 말이 내가 느낀 점의 핵심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감히 김연아 선수가 말한 내용에 조금 덧붙인다면 이런 말이 생략되지 않았을까?


"무슨 생각을 해... (잘하든 못하든) 그냥 하는 거지"


 뭔가 해야 할 것이 있으면 그냥 계속하면 된다는 것을 피아노를 배우면서 알게 되었다. 일단 시작하고 꾸준히 하다 보면 그 속에서 열심히 하기도 하고, 또 열심히 안 하기도 하고, 잘 되기도 하고 잘 안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도약의 기회가 다가올 것이다.


 ps. 나에게 중요하게 다가오는 곡은 항상 촬영을 해서 기록으로 남긴다. 모차르트 소나타 16번 k545. 1악장촬영을 하고 다시 돌려보았다. 박자도 완벽하게 안 맞고, 아티큘레이션도 잘 표현하지 못했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계속 피아노를 치다 보면 먼 훗날 다시 쳤을 때 지금보다는 잘 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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