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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웃라이어 교사 Mar 29. 2024

공산당선언

유토피아적 이데올로기가 아닌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공산주의

 이 책을 처음 읽었던 경험은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이다. 너무나 유명한 책이여서 읽어보고 싶어 당시 고등학교에 다니던 누나에게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달라고(중학교 도서관에는 이 책이 없었다) 했다. 누나가 빌려온 책은 인문 도서로 유명한 출판사의 작은 소책자 크기의 책이였고 딱 보기에도 페이지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책을 호기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책을 다 읽지 못했던 것 같다. 소파에 누워서 읽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15살의 내가 읽기에 책 속에는 모르는 용어들이 너무 많았고, 또 책 속에서 설명되는 역사적 사건과 생활 양식, 그 전개 방식이 중학생의 시각으로는 생소해서, 번역자의 설명에도 <공산당선언>이 당시의 노동자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웠다는 언급이 있다, 나는 중간쯤 읽다가 더이상 읽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읽기를 포기하였다.


 그렇게 <공산당선언>은 한동안 내 머릿속에서 잊혀져 있다가 대학교 도서관을 둘러보던 중 서가에 꽂힌 책 중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라는 임승수 작가의 책을 보게 되었다.

 <자본론>에 마르크스의 사상이 가장 뚜렷하게 들어가 있다는 말을 이전에 들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다시금 호기심이 생겨 이 책을 빌려 읽었다. 제목대로(작가의 의도처럼) 이해하기 쉽게 쓰여 있어서 마르크스가 주장한 바를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책을 읽으면서 원노트에 꼼꼼히 기록을 해 두었는데,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다시 찾아보니 유실되었다. 기록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관하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시간이 훌쩍 지나 다시 <공산당선언>을 읽게 되었다. 아마 15살 때의 나보다는 폭넓어진 배경 지식과 높아진 독해력을 바탕으로 이번 <공산당선언>은 그때보다는 더 원활히 읽을 수 있었다.


시대적 배경과 마르크스의 예상

 업튼 싱클레어의 <정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꾼 이민 가족이 육류 공장에서 일하는 과정 속에서 서서히 몰락해가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오물과 악취가 넘치는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서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노동하는 모습. 고된 노동이지만 당장의 노동력을 유지할 수준밖에 안되는 최소한의 푼돈을 받으며 일하는 모습. 고된 노동으로 지치고 병들어서 점차 생명의 불이 꺼져가는 모습. 마지막에는 모든 가족을 잃고 죽음으로 향해 한걸음씩 씁쓸히 다가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착취당하는 소외 계층 노동자를 이 책은 실감나게 표현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선언>에서 언급한 프롤레타리아의 생활 상황도 소설 <정글>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공산당선언>에서 <정글> 속 이주 노동자의 모습과 같은 프롤레타리아의 삶에 관해 언급한다.

 부르주아지는 가족 관계 위에 드리워졌던 감동적이고 감상적인 베일을 찢고 그것을 순전한 금전 관계로 전환시켰다.
 노동자들에게는 조국이 없다. 그들이 가지고 있지도 않은 것을 그들에게서 빼앗을 수는 없다.
 임금 노동의 평균 가격은 노동 임금의 최소치, 즉 노동자들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생활 수단의 총계이다. 다시 말해 임금 노동자가 자신의 활동으로 취득하는 것은 겨우 자신의 헐벗은 삶을 재생산하는 데에만 충분할 뿐이다.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 노동자는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야 했다고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인간의 존재는 갈수록 소외되고, 노동자는 자본의 생산 기술 안에 노동이라는 요소로 종속되고 소모될 뿐이다. 사회 체제도 이들의 편이 아니었는데 종교는 민중이 현실과는 괴리된 이상적 세계관을 추구하게 함으로써(마르크스는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말했다.) 정책은 정치적, 경제적 환상을 노동자들에게 꾸준히 심어줌으로써 착취를 은폐했다.

 착취는 노동자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더 많은 자본이 승자독식하기 때문에 종래의 중간 계층, 소기업가들, 상인, 수공업자, 농부들도 곧 커져가는 자본주의 시스템하에 종속되고 노동만을 제공하는 계급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로 인해 정말 극소수의 생산 수단을 소유한 (경쟁에서 승리한) 자본가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착취 당하는 위치가 되는 종말론적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종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을 착취하고 소외시키는 사적 소유의 측면을 폐지하고 생산 수단의 공유(공산주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 사회의 모든 역사 = 계급의 투쟁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

 공산주의가 한 시대를 휩쓴 전지구적 사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진리를 내세우며 여기에 무릎을 꿇으라고 명령하는 강압적인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사회과학자로서, 또는 철학자로서 인류 역사의 생산수단의 변화와 그로 인해 형성된 지배계급, 피지배계급의 분화와 갈등 과정을 지켜보면서 세계 일반의 원리를 찾아냈고 이를 근거로 자신의 공산주의 사상을 펼쳤다. 그래서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는 '유토피아적'이 아닌 '과학적' 이라고 평가받는다.


 이제까지 사회의 모든 역사는 계급의 투쟁이었다.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도, 장인과 직인 등 서로 적대 관계인 계급은 역사 속에 항상 존재해 왔다. 계급은 생산수단(물질)의 토대 아래에서 시대별로 다른 이름으로, 다른 관계로 발현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생산수단(물질)의 토대 아래에서 발생한 계급은 언제나 서로 적대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역사는 지배자와 피재배자의 관계를 지키고, 뒤집기 위한 투쟁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역사는 발전한다.


 마르크스가 글을 쓰던 초기 자본주의 시대는 중세 봉건주의가 몰락하고 새로운 생산수단(물질),  대규모 자본을 통한 대량 생산의 토대 아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이 태어나고 이들의 적대적인 관계(지배와 착취)가 심화되는 과정이다. 역사적 발전 과정 속에서 억압받는 프롤레타리아는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일어나며 자본주의 사회를, 부르주아가 시민혁명을 통해 봉건주의를 무너뜨렸듯이, 무너뜨릴 것이다.


새로운 시대 공산주의는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찾아온다.

1. 자본주의 시대에 대규모 자본을 통한 공장식 산업이 발달하고 노동자들은 여기에서 임금을 받아 생활한다.

2. 판매는 재화의 가격에 의해 결정되는데 가격은 생산요소 비용의 영향을 받는다.

3. 재화의 생산 요소에는 자본(장치 사용료)과 노동(임금)이 있는데, 장치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에 사와서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고정변수이고 결국 경재력을 위해 재화의 가격을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노동 임금의 변동이다.

4. 때문에 노동 임금은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준으로 유지된다.

5. 낮은 가격으로 인해 경쟁에서 밀린 부르주아는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자본 경쟁에서 밀린 자영업자, 소상공인, 수공업자 등도 결국에는 착취 계층(프롤레타리아)으로 전락한다.

6.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극소수의 부르주아와 다수의 프롤레타리아가 존재하는 사회가 형성된다.

7. 자본은 국경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살아남은 극소수의 부르주아들도 무한 경쟁 관계 속에서 끊임없는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 본인들의 생존을 위해 자국에 있는 프롤레타리아와 연대하기 시작한다.

8. 프롤레타리아와 협력하는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정치적 권력을 획득하는데, 정치적 권력을 획득한 프롤레타리아는 다수의 힘과 연대를 바탕으로 사회 개혁을 시작한다.


 이 과정을 보면 공산주의 혁명은 자본주의가 매우 발달한 경제체제에서 발현되야 한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는 자본주의가 발달한 미국, 영국 등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발생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적으로 낙후된 후발 산업국가였던 러시아에서 최초로 공산주의 권력을 기반으로 한 국가가 수립된다. 그리고 냉전에서 자유·자본주의에 패배하고 해체된다. 제2세계의 패배로 마르크스는 <공산당선언>에서 전제한 사회 발전의 과정이 틀렸으며, 공산주의는 환상의, 실현 불가능한 이데올로기이며 이미 종말을 맞이한 실패한 이념이라 비난 받는다.


3.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공산주의

 지금까지가 내가 알고 있었던 <공산당선언>의 배경지식이다.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 있는데 사회적 실천가로서의 마르크스의 모습이다. <공산당선언>과 각 나라별 서문들의 모음 뒤에는 역자의 풍부한 해설이 있다. 해설에서 역자는 실패한 예언가가 아닌 철학자로서의 마르크스가 소개한다. 철학자로서의 마르크스는 이성과 현실 사이의 매개와 화해에 대한 헤겔의 변증법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이것이 개념(관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실천을 통해 실현되야 한다고 믿었다. 철학은 이론에서 멈추지 않고 실천까지 나가야 완성된다고 믿었다.

 착취가 반복되는 현실의 변화를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 마르크스는 역사 발전 과정을 통해 현실을 분석했다. 역사적 발전과정을 통해 착취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실천 방안을 찾아냈다. 억압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혁명의 물질적 토대가 필요하고, 그 토대는 당연 프롤레타리아다. 인간성을 거대 자본에 의해 잃어버린 이들이 억압을 풀고 스스로를 해방하는 여정을 마르크스는 <공산당선언>에서 말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공산당선언>은 프롤레타리아에 한정된 정치 변혁이 아닌 인간 해방에 관한 실천방법의 제시이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가 공산주의와의 대결에서 이념적 승리를 거둔 지금 <공산당선언>에서 이제 방점을 찍어야 할 부분은 예언적, 대결적 이념으로서의 정치 선언문이 아니라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시키고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실천 선언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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