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감성부터 뷰맛집 카페까지
사실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이 지역의 매력을 알고 있다. 연남동과 성수동처럼 신상 공간이 계속 생겨나는 핫플레이스는 아니다. 하지만 옛 서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매력적인 가게가 가득한 이 동네의 매력은 변하지 않는다. 3,40년 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매력이 있는 곳,
이곳에는 옛 서울의 정취를 간직한 골목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는 한옥도, 뷰가 끝내주는 카페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여행을 가장 좋아한다. 골목 탐험과 힐링이 반반 섞인 여행 말이다. 그럼 제일 먼저,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고? 소리가 나올만한 곳을 소개한다.
첫 번째 행선지 북정마을은 서울에서 가장 성벽과 가까이 맞닿은 성곽마을이다. 성곽마을은 말 그대로 한양도성 성곽 옆에 조성된 마을을 뜻한다. 그래서 그런지 도심 속에 있어도 여유롭고,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을 간직한 곳이 대다수다. 낙산공원 옆 이화마을도, 딜쿠샤가 있는 행촌동도 모두 성곽마을이다. 그중에서도 북정마을은 가장 성벽과 가깝게 맞닿아 있다.
사실 북정마을에 대한 궁금증은 찾아가기 전부터 있었다.왜냐? 지도에서 찾아본 모습이 너무 재밌었기 때문이다! 길 따라 걸어가면 나오는 둥그런 모양의 마을이라니. 이런 지형은 처음 봤다. 참고로 나는 한양도성을 걷다가 암문으로 빠져나와 걸어갔는데, 한성대입구역에서 찾아가려면 버스 02번을 타고 가면 된다.
어떤 모습일까 궁금증을 안고, 동그란 길을 따라 한 바퀴 걸었다. 6-70년대 모습의 집이 가장 많이 보이는데, 신기하게도 갤러리와 건축사무소도 보였다.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색적인 풍경도 보인다. 성북동의 단독주택, 갤러리 등 성북동의 우아하고 큼지막한 건물들이 언덕에 우뚝 서있다.
몇 주 전, 마을버스 02번을 타고 친구들과 북정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로스트라는 야외 방탈출 게임을 했기 때문에 미션 장소만 방문해서 북정마을을 온전히 돌아보진 못했다. 하지만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서울의 풍경에 압도당한 기억만큼은 또렷하다. 처음 보는 풍경에 우리가 감탄을 내뱉자 버스 기사 아저씨가 뿌듯해하셨을 정도다. "멋지지? 성북동에 멋진 곳이 참 많아. 마을버스 01번 타고 가도 멋있고... 거기엔 길상사라는 절이... " 하도 열심히 설명해주시는 바람에 문을 열어주시는 것도 깜박하셨다. "아이고, 빨리 문이나 열어줘요!" 북정마을 주민 할머니가 썽을 내실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으리으리한 성북동 정경에서 눈을 돌려 정류장으로 향한다. 낮은 지붕의 정겨운 슈퍼가 있는 곳이다. 그동안 서울 구석구석 많이 다닌 편이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북정마을을 돌아보는 순간 전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왜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을까?
그렇게 북정마을을 한 바퀴 돌고 난 뒤, 좁디좁은 골목 따라 내려가 한 한옥집, 심우장으로 향한다. 낮은 지붕 사이에 정갈히 자리 잡은 행선지에는 흥미로운 사연이 있다. 바로 주인의 신념에 의해 일부로 집을 북향으로 지었다는 거다.
도대체 왜? 모름지기 사람은 햇빛 따뜻이 받으며 살아야 하지 않은가. 여기에는 흥미로운 사연이 있다. 이 한옥집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는데, 일본이 있는 조선총독부 방향으로 집을 지을 수 없다며 북향으로 지어버린 것이다. 일본이 싫어 햇빛을 포기한 기개의 주인공은 한용운 시인이다.
그 신념은 이곳을 단순히 '시인이 살던 한옥집'이 아니라, 일제강점기를 견뎠던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공간으로 만들어줬다.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문화재, 한옥일지라도 그 이야기를 알고 찾아가니 어딘가 다르게 느껴진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다는 북향집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심우장 창문에 비친 햇빛은 따스했다. 쨍하게 들이치는 햇빛은 아니었지만, 잔잔히 따스했다.
여름이라 그런지 아침부터 걷고 나니 제법 덥다. 성북동 언덕배기까지 왔으니, 마지막 코스는 멋진 카페에서 땀 좀 시켜야 하지 않을까? 오늘 갈 곳은 전망뷰 맛집답게 드라이브 명소라고 하는데, 뚜벅이 여행자인 나는 다시 북정마을로 되돌아가 카페까지 걸어보기로 한다.
북정마을에서 카페를 찾아가는 길은 은근히 까다로웠다. 알려준 길을 잘못 들어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골목이 좁고 사람이 없어, 혼자 갈 때는 약간 무서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다시 빠져나와 지도를 거듭 보며 여차저차 길을 찾았다.
공사 중이었고, 뻥 뚫린 도로가 나왔다. 그야말로 도로다. 청소년수련관 같은 건물이 있고, 드문드문 카페와 갤러리가 있다. 걷기에는 썩 원활한 곳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래서 작은 모험을 하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행선지 죠셉의 커피나무에 도착했다. 시원하게 뻗은 테라스와 귀엽게 자리 잡은 하늘색 창문이 건물의 개성을 더해준다. 귀여운 글씨가 새겨진 나무 간판은 덤이다.
1990년부터 운영되었다니, 천천히 시간이 흐르는 듯한 성북동은 가게들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곳이 많다. 입구가 나무로 된 간판과 온갖 소품들이 가득해 꼭 산장지기의 작업실 같다. 기대감을 안고 계단으로 올라간다.
와. 꼭 도심 속 산장 같다. 투박하기보단 우아한 산장 같다.
나무로 된 내부를 보니 꼭 산장에 놀러 온 기분이다. 가구나 소품 하나하나는 마치 빨간 머리 앤의 한 장면 같은 빈티지한 매력이 있다. 꽃으로 예쁘게 장식된 테라스 너머로는 성북동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멀리 가지 않아도, 이런 매력을 느낄 수 있다니.
오픈하자마자 찾아간 덕에, 우리 말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덕분에 이 멋진 공간을 맘껏 누렸다. 나만의 비밀 장소가 생긴 기분이다.
서울에서 색다른 여행, 한적한 여행을 원한다면? 그 어디에도 볼 수 없었던 시점으로 서울을 보고 싶다면? 한 번쯤은 성북동을 찾아보면 어떨까.
북정마을까지 다다르는 성북동 걷기 여행의 과정은 전편 참조-
https://brunch.co.kr/@daeunhwang/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