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도 이거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모든 동네에 이런 공간이 하나씩 있었으면 좋겠다.
동네의 기억을 담은 전시회, 종암서재에 다녀온 뒤 들었던 생각이다.
종암서재는 성북구청 직영기관인 '문화공간 이육사'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다.
'종암'서재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종암동에 거주한 작가의 작품이나 종암동이 등장하는 문학을 전시한 곳이다. 625 전쟁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을 담으며, 박완서부터 박준까지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종암동이라는 동네를 문학을 통해 만난다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가장 눈길을 끈 건 바로
서재는 기본적으로 주인의 취향이 반영된 공간이다. 요즘 독립서점에서 제공하는 '큐레이션' 서비스의 원조(?)인 셈이다. 서재를 가지고 있을 만큼 부유하고 배운 사람은 자신만의 학식과 취향을 서재에 맘껏 펼치곤 했기 때문이다.
종암서재는, 말 그대로 '종암동 큐레이션'이라고 볼 수 있겠다. 종암동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종암동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묘사되는지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종암 서재 전시로 인해 주민들은 우리 동네였지만 잘 몰랐던 우리 동네의 이야기를 알게 될 거다. 외부인들은 종암동이라는 유명하지 않은 동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고.
하지만 이 전시의 목적이 단순히 배움만은 아니다.
보통 '전시'라고 하면, 큐레이션된 정보를 관람하기 마련이다.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종암서재는 다르다.
큐레이션 된 책을 바탕으로 내가 직접 영감을 만들어간다.
일단 공간만 해도 그렇다.
여느 문화공간이 아니라 트렌디한 호텔 라운지 같았다.
은은한 조명이 한층 더 공간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 주고, 차분한 우드톤의 테이블이 아늑한 서재 같은 느낌을 줬다.
종암동 큐레이션된 곳을 바라보며, 나만의 서재를 누리듯이 앉을 수 있는 좌석도 있다.
종암동 큐레이션을 바탕으로 해당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구비해놓았다.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책부터 최근 다시 나온 전집까지 모두 모여 있다.
이런 책의 다양성이 더욱 누군가의 '서재'에 놀러온 듯한 느낌이 든다.
끌리는 책을 한 권 집어 들고 와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았다.
내가 선택한 좌석은 바로 창가 자리였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종암동의 풍경이 정겹다.
오전에 방문해서 그런지, 이 공간엔 나 하나밖에 없었다.
덕분에 조용한 서재에서 맘껏, 책을 읽었다.
이따금씩 창문 밖 종암동을 바라보기도 했다.
작가들이 종암동에 관한 글을 남겨 아직까지 우리에게 전해와 종암동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지금 이 공간을 방문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기억서재도 있다. 이 작은 기억 역시도 현재의 종암동을 이루는 기록이 되겠지?
각 동네의 작고 소소한 이야기나 개인의 기억이 무궁무진한 콘텐츠가 될 수 있는 시대니까.
종암 서재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뒤, 나오면서 생각했다.
우리 동네에도 이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동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편안하면서도 의미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교과서에서 배운 굵직 굵직한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동네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그것을 권위적으로, 가르치듯이 알려주는 공간이 아니라
자기 동네를 사랑하는 지식인의 서재에 놀러간 것처럼
편안히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면 더 좋을 거다.
비록 종암서재 역시 상시적으로 운영되는 공간이 아니라,
문화공간 이육사의 특별 전시로 곧 문을 닫을 예정이다.
하지만 동네의 이야기를 편안히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를 알게 된 점에 있어,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공간이었다. 어쩌면 몇 달 동안 존재했던 공간이 몇 년 동안 지속한 공간보다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