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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일 May 23. 2021

망중한(忙中閑) 1

회사에서 명동의 로컬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프로젝트를 맡았다. 콘텐츠 에디터로 인터뷰 등, 콘텐츠에 대한 기획과 제작을 총괄하게 됐다. 입사한지 9개월, 신입에게는 큰 기회이자 영광이 아닐 수 없다. 하우스 디자이너, 포토그래퍼가 없기에 이들을 섭외하는 것도 나의 몫으로 주어졌는데, 다행히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일하는 데에 있어서 고려할 수 있는 요소는 헤아릴 수 없겠지만, 좋은 사람들과 일한다는 것은 가장 큰 축복 중 하나가 아닐까.


저번 주로 취재를 마치고 이제 편집을 앞둔 상태라 한 고비는 넘긴 듯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단순히 콘텐츠 기획과 제작 뿐 아니라 비즈니스로의 연결고리를 찾아내야 한다는 점이 특히 어려웠다. 이 부분은 회사 내의 다른 협력 주체분들이 열심히 고심하고 계시지만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다. 나아가 그런 상황에서 인터뷰를 준비하고, 전문가와 상인들을 섭외하는 것은 내가 넘어야 할 가장 큰 고비였다. 특히 노포들은 마땅한 컨택 포인트가 없어 회사 건물의 관리 팀장님과 함께 명동을 돌며 일일이 설명을 드리기도 했다. 촬영할 때는 준비해간 질문지에서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아 꽤나 애를 먹기도 하고, 잘 꾸며진 스튜디오가 아니기에 현장에서 재빠르게 구도를 수정하고 여기저기 대보는 과정이 이어졌다. 눈 감았다 뜨니 일주일이 지나갔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드는 일에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일을 하면서 여전히 배울 것이 많다고 느낀다. 나아가 좋은 사람을 우연히 만나는 게 얼마나 재미있고 짜릿한 일인지를 다시 한 번 느꼈다. 그 우연한 만남이란 함께 작업한 포토그래퍼님들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취재와 촬영을 묵묵히 따라와주고 내 주문을 들어주면서 웃음까지 잃지 않는 것, 계약관계로 맺어졌다고 해도 쉽지는 않은일이다.


좋아하는 것과 사람에게 특히 쏟아지는 편이어서 가끔 스스로 절제하려고 한다. 처음에는 좋았는데 사용하면 할수록 물건에 정을 잃어버릴 때도 있고, 사람도 비슷하다. 쉽게 좋아하고 쉽게 판단하지 않으려 거리를 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쏟아지는 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상대가 부담을 느끼지 않기만을 바랄뿐. 그래서 최근에는 과연 내가 쏟아지는 사람들의 특징과 공통점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봤다.


바깥의 존재들

나는 안과 밖을 넘나드는 존재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것이 시스템일수도 있고, 편견이나 스테리오타입일수도 있다. 최근 만난 포토그래퍼님은 딱 그런 존재 같았다. 스스로 규정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가 세상을 규정하는 존재, 세상이라는 파도에 맞서는 게 아니라, 그 흐름을 타며 자기만의 움직임을 만들어가는 존재. 결혼적령기라든가, 직업적인 틀에 갇혀있는 게 아닌, 자신이 지은 이름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꿈의 환상에 갇혀있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존재였다.


내가 쏟아지는 존재들에 대한 또다른 공통점은 계속 무언가를 시도하고, 배우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시스템이 강요하는 흐름 위에 올라서거나 그것을 거부하며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현실적인 부분을 아예 간과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매몰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어떤 이들은 '그래도 현실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이들은 '현실과 꿈, 모든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오만함이나 아집으로 비춰지지 않는, 기분좋은 자기애를 가지고 있는 사랑스런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마주치면 정말이지 밑도 끝도 없이 쏟아져 내리고 싶은 기분이 든다. 익명의 사회에서 낯선 이에게 나를 드러낸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도 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비춰질 가능성도 높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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