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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일 May 30. 2021

5월의 허송인 ; 오진희

허송세월 인터뷰,헛터뷰


평일에는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허송세월 하면서, 온전한 쉼이라는 건 결국 환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온전한 ‘나’로 쉬는 순간을 상상하지만, 결국 휴식의 순간에 느껴지는 건 다가올 일에 대한 긴장과 설렘이기도 하니까요. 낮과 밤이 서로의 존재를 더 가치있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일과 휴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 같습니다. 


도예가 진희님은 도예 작가 생활과 수업을 병행하며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직장인들의 입장에서 자기만의 무언가를 꾸려간다는 건 꽤나 자유롭고 행복해 보일 수 있지만, 어쩌면 자기만의 룰을 지속한다는 건 생각보다 불안하고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치대는 흙처럼, 그것은 어떤 형태의 무언가가 될지 알 수 없으니까요. 중요한 건 ‘잘 구워진 무언가’를 계속 상상하는 일이고, 그런 종류의 믿음이야말로 스스로를 이끄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요. 


진희님은 책을 보거나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때로는 게임을 하거나 바깥바람을 쐬며 작지만 단단한 휴식의 순간을 즐깁니다. 그리고 그 휴식의 순간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5월의 헛터뷰, 곧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eosongsaewol original contents.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이공계 생이었는데, 전공을 바꿨어요. 예술 쪽으로 가고 싶었죠. 미술을 하던 사람이 아니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손이 닿는 분야를 추려내다 보니 도자공예와 보석세공, 무대 디자인 등이 나왔고요. 그중에서 도자기 공예를 선택했어요. 흙은 재료비도 저렴하지만, 유동적으로 형태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소소한 재료를 여러 가지 방향으로 방대하게 풀어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아직 졸업한 지도 얼마 안 됐고, 작가로서도 긴 경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분을 채우기 위해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어요. 전공을 살려 단순히 형태를 잡고 만들어내는 것 이상으로 도예의 기본적인 제작 노하우를 알려드리고 있고요. 제 클래스에 참여하시는 수강생분들이 ‘재밌었다’, ‘신청하길 잘했다’라고 해주실 때 큰 보람을 느껴요. 저 또한 수업을 통해 수강생분들이 직접 만든 도자기를 유용하게 사용했으면 좋겠어요. 


선생님과 작가, 두 가지 생활을 병행하다 보니 힘든 점도 있죠. 도자기는 형태를 만든 이후에 공정이 많거든요. 그래서 작업을 하고 싶어도 수업에서 해야 할 것들을 준비하거나 마무리 해야 할 때가 있어요. 저를 찾와와주시는 분들을 지도해드리는 시간도 감사하고 좋지만, 종종 개인 작업 시간이 부족해 뒤처지고 있진 않은지 걱정될 때도 있어요. 아마 두 가지를 병행하는 모든 분들이 느끼는 부분이 아닐까요? 



처음에는 아이들 그림이 인상 깊었어요. 아무래도 어른보다 조금 더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기에 시각과 구도가 다르더라고요. 그러다가 피카소나 세잔의 작품 같은 현대미술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이런 요소를 조형에 접목시키고 싶어졌죠. 그러면서 마르셀 뒤샹이나 하라 켄야같은 작가들을 알게 됐고요. 마르셀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도 사실 작가가 그 오브제를 만든건 아니잖아요. 거기서 일상적으로 익숙한 오브제들을 다르게 본다는 아이디어에 꽂혔고, ‘사용성’이라는 키워드가 나오게 됐죠. 작업을 하면서 문제의식을 확장하기 위해 종종 책을 봐요. 요즘은 ‘생각의 탄생’이라는 책을 보고 있는데, 분야를 넘나들며 창조성을 드러낸 사람들의 생각법을 알려주는 책이에요. 


제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는 ‘불편함’인데요. 사람들에게 익숙한 사물들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인식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일상적인 사물들의 구조를 파악한 후 사용이 불편하도록 제작해 사고의 확장을 이뤄내는 거죠. ‘이 물건을 왜 이렇게 만들었지?’라는 의문을 시작으로 각자의 사고가 확산되기를 목표하고 있어요. 



도예 공방을 운영하며 작가 활동을 하는 건 프리랜서에 가까워요. 그래서 출근 시간을 정해놓는 편이에요. 수업이 없으면 쉬고, 있으면 나오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나와서 작업을 하든, 다른 일을 하든 하죠. 항상 작업실에 머물며 생산적인 시간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어요. 다만 프리랜서처럼 일하기 때문에 쉬는 날에 대한 구분이 없는 편인데요. 그래서인지 공방에 가지 않으면 쉰다는 느낌을 받습니다.(웃음) 


작업실에 있지 않은 때에는 친구들과 바깥바람을 쐬기도 하고, 게임을 하기도 해요. 하루 종일 게임을 하다 문득 시계를 보면 내가 뭐 했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요.(웃음) 가끔은 유행이나 지식이 뒤처진다는 느낌을 받아 인터넷 강의를 보기도 하는데요. 요즘은 한국 도자 박물관에서 진행하는 ‘우리나라 도자의 역사’를 듣고 있어요. 그래도 이런 활동들을 하다 보면 저를 채운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네요. 


공방을 운영하며 가장 허투루 쓴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청소할 때예요. 청소를 생산적이라고 할 수도 있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빨리 처리해야 하거나 결과를 내야 할 게 있으면 청소하는 시간이 괜히 아깝게 느껴져요. 


방황이라고 하기엔 애매한데요, 입시를 준비하면서 디자인과로 전향하기 위해 뒤늦게 재수와 입시미술을 병행했어요. 그렇게 도예과에 진학했고, 실기에 집중했던 4년의 학부시절을 보냈죠. 그러다 심도 있는 작업을 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게 됐고, 부족한 이론과 지식을 쌓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런 과정 속에서 결과를 내지 못하고 비생산적인 시간도 분명 있었지만, 이런 시간들이 쌓여 전문가가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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