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큰 아이가 6살 때쯤이었던 것 같다. 아이에겐 친할아버지, 친할머니가 없다. 나도 한 번 뵙지 못한 시아버님은 남편이 중 2학년 때에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고, 시어머님은 남편 대학 2학년 때 노환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아이에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외가에만 존재하는 분들.
친정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고 18개월이 될 때까지 1주일에 2일씩 아이를 봐주셨고, 이후 일이 있을 때마다 아이를 봐주시러 오셨기에 아이에게 할머니는 친숙한 존재. 반면 할아버지는 1년에 1번을 만날까 말까 한 존재인 만큼 할아버지에 대한 존재감은 미미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같이 만난 적이 없었어도 별달리 이상하다고 느끼거나 질문을 하지 않았는데, 6세쯤 되니 이상하다고 느껴졌는가 보다.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엄마 어릴 때부터 사이가 안 좋아서 엄마 학교 다닐 때부터 따로 살았어."
"근데 왜 사이가 안 좋아?"
"할아버지가 할머니한테 잘못한 일이 있어서, 할머니가 할아버지랑 같이 살기 싫다고 했거든."
"무슨 잘못을 했는데?"
"음.. 그건 나중에 말해줄게. 근데 할머니랑 엄마, 삼촌 마음을 다 아프게 했어."
아이가 일반적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함께 하는 가정의 모습이 아님을 인지하게 될 거고 질문할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그 시기가 6세쯤 찾아온 것. 우선 아이의 질문에 저리 답을 해주고 나서는 혹여나 아이가 '사이가 나쁨=헤어짐' 이라는 잘못된 등식을 가지게 될까 싶은 걱정이 들었는데, 여지없이 아이가 다시 묻는다.
"엄마랑 아빠도 사이가 나쁘면 헤어져?"
"아니, 엄마랑 아빠는 사이가 나쁘지 않고 금방 화해해서 괜찮아. 왜 걱정돼?"
"아니, 걱정 안 해. 그냥 물어봤어."
당시 설명해주고 나서 괜스레 마음이 착잡했었다. 아이에게 할머니, 할아버지가 함께 하는 따뜻하고 포근한 외가가 있었다면 저런 질문은 하지 않을 텐데.. 부모의 갈등으로 인해 헤어질 수 있고 그 과정이 완결된 형태가 '이혼' 임을 추후에 찬찬히 설명해주니, 안 그래도 불안감이 높은 녀석이 물어본다.
"엄마 아빠는 이혼 안 할 거지? 이혼하면 절대 안 돼."
"응, 걱정 안 해도 돼, 아빠가 엄마를 너무 좋아해서 안 헤어져."
라고 답해주니 깔깔 웃더니 맞다고 맞장구친다.
남편님, 머 그대의 현재 마음은 중요하지 않아요. 아이가 저렇게 믿도록 합시다 ^^;;;
요즘은 아이들이 교육기관을 빠르게 다니기 시작한다. 통상 교육기관을 다니면서 우리 가족에 대한 주제로 수업과 활동이 이뤄지면서 아이들은 일반적인 가정의 형태에 대한 상(figure)을 형성하게 되고,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의 경우에는 부재하는 부모에 대한 궁금증과 어렴풋이 자신이 생활해가는 가정과 친구의 가정이 다르다는 걸 인식해간다. 더욱이 이 시기는 동성 부모의 역할을 모델링하면서 남성 및 여성의 모습을 학습하는 시기이기에, 부모의 이혼이나 한부모 가정의 경우에는 대상의 부재로 인해 역할의 다양성을 학습할 기회가 제한되며 이점이 추후 역할 학습 및 수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소지도 있다.
일반적인 가정의 형태는 엄마와 아빠, 자녀로 구성된 형태이고, 이 고정화된 가족의 이미지를 친구의 가정에도 대입하는 동시에, 친구의 집에는 조부모님이 함께 생활할 수도, 이모, 삼촌, 고모 등이 함께 거주할 수 있으며 가정의 규모가 달라질 수 있음을 배워가고 이를 통해 가정을 확장시켜 이해해간다. 더불어 대중매체에서 다루는 정형화된 가정을 보고 습득하기에 화목한 가정의 모습,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다정하게 살아가는 가족의 이미지를 갖게 된다. 그 이미지와 자신의 경험이 불일치할 때 아이들은 궁금증이 생기고 그 이유를 탐색해가면서 또 다른 형태의 가정이 존재함을 학습해간다. 그리고 가정이 해체되는 '이혼'에 대해서도 간접적/직접적 경험을 통해 배워나간다.
'이혼'에 대한 개념을 좀 더 나이가 들어서 알게 되면 좋으련만, 이혼 가정에서 성장한 부모를 둔 아이들의 경우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함께 살지 않는 것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질문을 하게 되고, 이런 경우에 이혼에 대해서 빠르게 설명해줘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 아이에게 "몰라도 돼"라는 말보다는,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설명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 사랑하여 결혼하였지만 두 사람의 사이에서 변화가 있을 수 있고 그래서 같이 살 수 없는 상황들이 생겨나기도 한다고. 물론 걱정이나 불안 수준이 높은 아이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설명을 듣고서 부모의 소소한 갈등에도 '엄마 아빠가 이혼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으며 반복적으로 부모에게 이혼하지 않을 것임을 확인받고자 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에는 아이들의 의문이 해소될 때까지 설명해주고, 갈등이 생겼을 시에는 이를 해결하고 이전과 같은 안정감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아이가 경험하도록 해주면서 사람들의 관계란 항상 좋기만 한 것도 항상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며, 갈등이 있으면 이를 해결해가면서 관계가 지속된다는 것을 체득하도록 접근해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