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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화 Mar 19. 2022

자연분만 vs 제왕절개. 남편도 고민된다.

남자도 출산이 무섭다.

 출산과 관련된 모든 선택은 산모가 결정해야 한다는 나의 생각은 확고하다. 아이를 낳으면서 겪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은 온전히 산모의 몫이므로 무조건, 절대적으로, 반드시 산모 스스로가 조금이라도 더 편안함을 느끼는 쪽으로 모든 선택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래 고민이란 선택지가 많을 때 보다 딱 두 개만 존재할 때가 더 어려운 법이다. 게다가 그 선택지가 고통과 관련된 것이라면 고민이 허락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두 가지 선택지 사이를 빠르게 오가며 심각한 결정장애를 겪게 마련이다.   

 출산을 앞둔 모든 산모가 그러하듯 아내도 꽤 오랜 시간 동안 분만 방법을 고민했다. 사실은 남편인 나도 같은 고민을 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저 아내의 선택이 나와 같은 선택이기를 기도할 뿐. 아내만큼은 아니겠지만 나 역시 네이버와 유튜브 검색창에 '자연분만 제왕절개'를 수없이 입력했던 남편으로서 내색하지 못했던 출산을 앞둔 남편으로서의 고민을 시원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지금은 무사히 분만도 끝났고 아이도 건강하게 생떼를 부리며 두 돌을 향해 가고 있기에.)


 남편의 입장에서 두 가지 분만 방법의 장단점을 꼽아봤다. 


1. 자연분만

 분만 후에 회복이 빠르다는 결정적인 장점이 있다. 거동이 가능하기에 곧바로 아이를 안거나 수유를 할 수 있으며 산후조리원 복도를 당당하게 걸어 신생아실도 오갈 수 있다.(병원이나 산후조리원 복도를 오가는 산모의 걸음걸이만 봐도 분만 방법을 알 수 있다.) 잘 걷는 게 그렇게 큰 장점인가 싶겠지만 몸을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남편이 보살펴야 하는 총양이 현격히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나에게 자연분만의 가장 큰 단점은 아내가 산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삿바늘도 무서워하고 바퀴벌레, 청룡열차 등에 치를 떠는, 덩치값은 애저녁에 갖다 버린 겁쟁이 남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가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두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평균 진통 시간이 6시간~12시간이라니... 어떤 산모는 고통에 절규하는 자신의 모습을 남편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분만의 순간에는 남편을 밖으로 내보낸다고 하고 어떤 산모는 두 눈 똑바로 뜨고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지켜보게 한다고 한다. 

 '그래. 부인님(내가 부르는 아내의 애칭)은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니까 분명히 전자의 산모일 거야. 내가 겁쟁이인 것도 누구보다 잘 알잖아?'

 처음으로 분만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때가 생각난다. 

"자기야. 분만실에 내가 들어가면 좀 그렇겠지? 자기 불편할 것 같은데.." 

"뭔 소리야! 무조건 옆에 붙어 있어! 내가 얼마나 아픈지 똑똑히 봐야지!"

그랬다. 부인님은 강력한 후자였다.

 내가 생각하는 자연분만의 또 다른 단점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예정일이 다가오면 짐을 꾸려놓고 새벽이든 오후든 언제든지 병원으로 튀어갈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분명 단점이었다. 태어나는 아기는 반갑지만 태어나는 과정은 반갑지 않으니 말이다.


2. 제왕절개

 제왕절개 분만의 장점과 단점은 정확히 자연분만의 반대다.

제왕절개는 분만 날짜와 시간이 정해진다. 그러므로 언제 다가올지 모를 출산을 초조하게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짐을 들고 병원으로 향하면 된다. 이게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주는 스트레스는 꽤나 만만치 않기 때문에 제왕절개 분만의 아주 큰 장점이 된다. 그리고 나 같은 겁쟁이 타입의 남편에게는 분만의 순간을 보지 않는다는(볼 수 없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내의 뒷모습과 침대에 누워 수술실을 빠져나오는 아내의 모습 역시 무척이나 슬프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모습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비명과 절규는 없다. 

 제왕절개의 단점은 산모의 회복 과정이 길고 고되다는 것이다. 고되다는 단어로는 부족할 정도로 수술 후 고통이 꽤나 심각하다. 제왕절개는 결국 개복수술이므로 움직였던 장기와 절단된 피부에서 오는 통증으로 고생해야 한다. 산모는 아픈 자신의 몸을 견디느라 태어난 아기를 온전히 돌볼 수 없다. 그래서 마음까지 아파진다.  누군가 그랬던가. 자연분만은 고통 선불제이고 제왕절개는 고통 후불제라고. 


자. 이렇게 정보를 모아놓고 과연 어떤 분만 방법이 나에게 좋을 것인가를 고민해본 결과. 나는 제왕절개를 선택했다. 물론 마음속으로 혼자 선택했다는 이야기다. 아내와의 대화 중에 은근히 제왕절개의 장점들을 부각하고 자연분만의 단점들을 과장하긴 했지만 말이다.


 아내도 나와 비슷한 정보 수집의 과정을 통해 제왕절개를 선택했다. 선불로 고통을 치를 자신이 없다고 했다. 나는 전적으로 아내가 원하는 쪽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나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내내 말해왔지만 내심 반가웠다. 그런데 출산이 가까워오면서 아내의 마음이 갑자기 자연분만으로 바뀌었다. 점점 배가 불러오고 뱃속 아기의 모습이 사람다워지면서 출산과 동시에 건강히 아기를 돌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선택의 기준이 '출산의 고통'에서 '태어날 아기'가 된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엄마의 마음이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이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 역시도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내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양수에 대한 두려움을 말이다. 그렇게 분만 방법이 바뀌자 '출산일'은 '출산 예정일'로 바뀌었다.

 자연분만으로 마음을 먹은 아내는 출산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아기의 위치가 아직 높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은 이후로 짐볼을 튕기는 시간이 늘었으며 집 앞 산 능선의 산책로도 자주 오르내렸다. 만삭의 몸으로는 무척이나 고됐을 그 산책을 하루도 빠짐없이 해냈다. 기필코 자연분만으로 아기를 만나겠다는 의지였다. 나는 아내의 노력을 옆에서 지켜보며 참으로 아름답고 경이로운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극도의 공포를 이기는 따뜻한 모성애가 시각적으로 정확히 표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역시 분만실에서 어떤 표정과 멘트로 아내에게 힘을 보태면 좋은지를 알아내기 위해 새로운 검색을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딸 '은유'는 제왕절개로 화려하게 이 세상에 등장했다. 출산예정일이 다 됐는데도 도통 아래로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선택한 분만 방법이었다. 엄마가 그렇게 열심히 짐볼을 통통 튕겼는데, 그렇게 열심히 계단을 오르내리고 산을 탔는데. "엄마 뱃속이 편안하고 좋은가 봐요"라는 선생님의 따뜻한 포장과는 별개로 아내와 나는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제왕절개의 장점과 단점은 명확했다. 아내는 수술 후에 꽤 긴 시간 동안 아픈 몸으로 고생을 해야 했고 아기를 돌볼 수 없음에 아픈 마음도 감수해야 했다. 아내의 고통을 쌀 한 톨만큼도 해결해 줄 수 없는 남편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묵묵히 그리고 유쾌하게 아내와 아기를 돌보는 것뿐이었다.


 자연분만이냐 제왕절개냐. 이 지상 최대의 난제의 해답은 분명하다. 

남편, 시부모, 친정부모, 형제, 자매, 친구, 전문가, 의사 등 제 3자가 아닌 당사자, 즉 산모가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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