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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예 Aug 30. 2021

다예의 세계 정복을 시작하며,

10살에 떠난 첫 해외여행


나를 소개할 때 빠질 수 없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여행이다. 나는 크루즈 승무원이며 19개국 55도시를 여행한, 세계 정복을 꿈꾸는 여행자이기도 하다.


어쩌다 내가 세계 정복을 꿈꾸게 되었냐고? 여행과 관련된 직업까지, 여행과 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다. 분명 내 첫 해외여행은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







차들로 가득 찬 도로와 시끄러운 거리, 발 디딜 틈 없이 깔린 수많은 사람들, 강한 향신료 냄새에 숟가락 마저 놓게 만든 나와 맞지 않는 음식들로 가득했던 곳. 어렸던 10살에 떠난 첫 해외여행, 중국으로 떠났을 때 기억이다.


내가 기억하는 첫 해외여행의 기억은 온통 투덜댐으로 가득하다. 워낙 넓은 중국 땅, 관광지를 가면 워낙 넓어 이만 보는 거뜬히 걸어 다니기 일수였고 사람은 또 어찌나 많은 지 까딱하면 국제 미아가 될 것만 같았다. 날씨는 왜 이리 덥고, 밥은 또 왜 맛이 하나도 없는 건지!


이것이 바로 처음으로 한국 밖을 나온 어린 꼬맹이의 첫인상이었다.





베이징 왕푸징 거리



하지만 이런 불만 가득했던 여행에서 내가 흥미를 느꼈던 건 처음 보는 환경 때문이 아닐까 싶다.


베이징 왕푸징 거리를 구경하는데 수많은 꼬치들은 내 시선을 끌었다. 알 수 없는 이상한 냄새가 남에도 불구하고 그 비주얼들은 10살 꼬맹이의 시선을 끌기엔 충분했다. 전갈꼬치라니! 말이 되는가? 점점 흥미가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리장성에 다녀왔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린 후 내 첫인상은 바로 ‘우와’였다. 우와 의미는 ‘와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을까?’가 아니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규모로 웅장한데 저 위까지 어떻게 사람들로 꽉 찰 수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곧 수많은 인파에 정신을 못 차려 입이 삐죽하고 튀어나왔다. 올라가기는 커녕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이었다.


저 순간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수많은 인파를 겪어본 경험일 것이다. 대륙의 스케일 그리고 인파에 압도당했더라지.


이렇게나 사람이 많을 수 있다니, 에버랜드에서 겪은 수많은 인파는 인파도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내가 한국이 아닌 외국에 왔구나를 실감하며 첫 해외여행에 적응하고 있었다.







중국 여행을 하며 제일 신났던 순간이 있다. 당시 한국에 없었던 2층 버스를 처음 보았을 때 신기함에 계속 버스만 쳐다봤었다. 결국 여행 일정이 끝나기 전 가이드님께 부탁해서 타고 다니는 버스에 내려 정류장으로 걸어간 뒤 기어코 2층 버스를 탔다. 그리고 다시 걸어서 전용 버스를 탔더라지. 여행 일정 중 가장 적극적으로 임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이야 한국에도 2층 버스가 대중교통으로 자리 잡았지만 2009년 당시엔 상상할 수 없었기에 꼬마인 나는 그저 신기함으로 가득했었다. 그때 그 시절 감성 때문일까? 2층 버스 타면 맨 앞자리에 자리가 있는지 스캔하게 된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2층 버스 좋아하는 건 마찬가지인가 보다.





인생 처음으로 탄 국제선 비행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정말 가벼웠다. 처음으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 땅을 밟아보고, 낯선 것들 투성이었던 나의 첫 해외여행은 끝이 났다.


여행 내내 불평불만 투성이었지만 새로 접하는 다른 나라의 환경과 문화가 10살 꼬맹이의 흥미를 끌었던 것은 분명하다. 아직도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걸 보아하니. 그렇게 다예의 세계 정복이 시작되었다.







2009 / 2019 중국 베이징


번외 에피소드 : 10년 만에 다시 온 베이징


스무 살에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국경절 동안 베이징으로 여행을 갔는데 감회가 남달랐다.


10년 만에 다시 온 베이징은 고층 빌딩들로 가득 들어서 있었다. 모든 대중교통은 핸드폰으로 결제가 가능했고 심지어 길거리 음식점까지 모든 게 핸드폰으로 가능할 만큼 발전되어 있는 걸 보며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를 실감케 했다.


달라진 점이 너무나 많았다. 입에 하나도 못 대던 중국 음식을 지금은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나도 변해있었다. 훠궈, 카오위, 꿔바로우, 베이징덕 등 이제는 모두 그리운 음식들이 되었다.


다시 베이징에서 먹어보는 탕후루는 여전히 맛있었고, 그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남아있는 엄청난 인파도 여전했다. 국경절 시즌이라 더 많았겠지만.


10년 전 그 꼬맹이는 몰랐겠지? 내가 내 발로 베이징을 다시 올 줄 그리고 이토록 여행을 사랑하게 될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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