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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Jan 09. 2024

1년 만에 들어온 주문에 직접 배송을 갔습니다


“실장님 대박 사건이요!!”    

 

이른 아침부터 사무실에 한 직원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울려 퍼졌습니다.   

저도 덩달아 놀라 무슨 일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이것 좀 보세요! 제가 잘못 본거 아니죠?”     


직원의 다급한 목소리에 뛰어가서 모니터를 들여다봤습니다.    

 

2년 전쯤 아이들에게 미술로 세상을 공부하게 한다는 취지로 교재를 만들어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판매가 조금씩 되었고 경험을 한 분들은 후기나 만족도가 좋았지만 낯선 브랜드의 한계로 매출 자체는 그렇다 할 성과를 못 냈고 그 뒤로 고객들의 관심도 저희들의 관리도 거의 받지 못했던 그런 상품이었습니다.   

  

그런데 1년 정도 만에 갑자기 주문이 들어온 것입니다. 결제 완료건 1개가 어찌나 비현실적으로 보이는지 판매가 되었다는 기쁨보다는 대체 누가 이걸 검색해서 구매했는지 궁금함이 더 컸습니다. 

    

CS 담당 직원이 고객에게 연락을 해서 착오로 구매한 것이 아님을 확인했고 너무 오랜만에 들어온 주문으로 발주처가 어디였는지조차 다시 찾아봐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회사 창고에 박스채로 보관되어 있는 재고들을 발견했고 한 직원이 택배사와 연락을 시작했습니다.     

아침부터 이런 해프닝이 다 있나 하면서 업무로 돌아가려던 순간 뒤늦게 상품을 구매해 준 고객에 대한 고마움이 밀려왔습니다.     

고생해서 만들었지만 빛을 못 본 상품을 이렇게나마 다시 끄집어 내준 분이 누구일지도 너무 궁금했습니다. 적어도 감사의 표시를 꼭 하고 싶었습니다.   

  

“혹시 주소가 어떻게 되나요?”   

  

“태릉 쪽이요! 왜요?”     


“오늘 퇴근길에 제가 직접 배송할게요” 

    

“네?? 왜요???”     


“아니 뭐 감사하기도 하고.. 혹시나 대화 몇 마디 할 수 있으면 어떤 점에 이끌려서 상품을 구매하셨는지 들어볼 수 있으니.. 인사이트가 있지 않을까 해서요”   

  

당황하는 직원에게 상품을 건네받아 최대한 깔끔하게 포장했습니다. 퇴근길에 문구점에 들러 색연필 세트도 하나 샀습니다.     


해당 주소를 찾아가니 문이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벨을 눌러서 배송 왔음을 알리고 사실 직원이 직접 배송 왔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다고 얘기할 참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쭈뼛쭈뼛 현관 앞에 있으니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혹시 교재 배송하러 오신 건가요? 고객센터 통해서 직원분이 직접 오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아 네네. 사실 오랜만에 주문이 들어온 상품이라.. 감사 인사 겸 직접 왔습니다. 구매해주셔서 감사하고.. 이건 교재에 필요한 색연필 세트인데 선물로 드릴게요”


원래 계획은 다 까먹은 채 후다닥 가려는 데 그분이 다급하게 저를 잡았습니다.   

  

“직접 배송도 오시고 선물도 가져오셨는데 괜찮으시면 차나 한잔하고 가세요”     


말 한두 마디나 나눌 수만 있어도 좋겠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그런 제안을 듣자 오히려 말을 쉽게 안 나왔습니다.     

쉬시는데 방해가 된다며 손사래를 쳤음에도 한사코 들어오라고 하는 그분의 말에 못 이긴 척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로 보이는 소녀가 테이블에서 뭔가 끄적이고 있었고 엄마로 보이는 분은 커피를 내오셨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이 교재는 저희가 오래전에 야심 차게 만들었고 미술과 그림을 통해 아이들에게 세상을 쉽게 알려주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워낙 판매가 부진하고 해서 1년 정도는 주문이 거의 없었던 상품이었어서... 혹시 어떤 점이 좋으셔서 구매를 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가 조심스레 여쭤보자 그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답했습니다  

   

“뭐가 끌려서 샀다 이런 건 없었어요. 그냥 우리가 말할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여기로 급하게 이사를 왔는데 애가 친구도 없고 또 코로나니 뭐니 하면서 학교를 못 가게 하니까 밖에 나가지를 않더라고요. 집에서 멍하니 있고 의욕도 없어 보이고 말수도 적어졌어요. 어디를 데리고 나가자니 여기 주변이 아이들 갈만한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저도 걱정이 되었죠. 근데 어느 날부터 그림을 막 그리기 시작하더라고요. 하루에도 열 장 이상씩 꽃도 그리고 하늘도 그리고 엄마도 그리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림 그리는 거 공부라도 시켜줘야겠다 하고 검색을 하는데 다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그런 것만 있어서 가격도 부담되고 애가 또 불편해할까 봐.. 그러다 그냥 교재로 그리면서 공부할 수 있는 거라길래 속는 셈 사봤죠 뭐. 후기도 2개인가 있는데 괜찮다 하고”   

  

뭔가 상품 전략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만든 상품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홈쇼핑 택배 교육 이후 십여 년 만에 직접 배송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퇴근 후 제 자유시간은 줄었지만 그만큼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몇 주 후 직원에게 그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전달받았습니다.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아이가 너무 열심히 하고 그러면서 외출도 잘하고 말수도 많아졌다며 혹시 다음 단계 교재는 없냐고 문의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상품은 치열한 고민을 통해 세상에 나오지만 고객들의 선택을 받는 상품은 매우 한정적입니다. 가끔 너무나도 냉정한 시장 평가에 좌절하고 장사꾼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이 업계에 몸담고 있는 것이 힘들 때도 있지만 이런 소중한 경험과 보람이 오늘도 저를 일하게 하는 원동력이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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