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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아빠곰 Apr 14. 2016

주인 위주의 서점 사업계획서

내맘대로 사업계획서 1.

사업계획서 - 주인 위주의 서점


평소 별로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이 없는 나인데 요즘에 갑자기 뭔가 하고 싶은 것이 하나 생겼다. 


주택가 골목에, 아니 굳이 주택가 골목일 필요는 없다. 넓은 주차장이 있고, 대형마트와 주차장이 있고, 프랜차이즈 가게들로 쭈루룩~ 채워진 상가가 아니면 된다.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출퇴근 하는 길에, 선선한 저녁에 맥주 한 캔 사러 가는 길에, 아이들이 소리지르며 뛰어다니는 길에, 여자친구를 바래다 주러 온 남자아이가 집으로 들어가는 여자친구 뒷모습을 보고 들어가야겠다고 굳이 서서 기다리는 동네 길가면 된다. 동네 길.ᅠ 


그런 데에다 서점을 하나 하고 싶다. 서점은 서점인데 들어갈 때 이거 들어가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어 멈칫 하게 되는 서점. 주인의 취향대로 꾸며지고, 많이 팔리는 책들이 아니라 주인이 좋아하는 책들을 표지가 보이도록 디스플레이 해 놓은 서점.ᅠ 


아, 좋은 분위기. 아마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주인은 손님이 오거나 말거나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다. 편의점 야간 알바가 신경쓰는 것의 절반 정도만 신경을 쓴다. 어서오세요~ 같은 인사도 없다. 대신 주인은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거다. 책을 들었다 놨다 하거나 커피머신을 손보고 있거나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거나 책을 보고 있거나. 참, 여기에서는 커피도 파는 모양이다. 


메뉴는 두 가지다. 아메리카노랑 카페 콘 레체. 이것은 우유를 데우는 기계가 없거나 데워주기 귀찮아서이다. 커피에 우유만 부으면 되니까. 가격은 내 맘이다. 잔돈 받기 귀찮으니까 각각 2천원, 3천원으로 한다. 카드는 안 받는다.ᅠ 


책은 몇 권이 좋을까? 글쎄, 3천 권에서 5천 권 사이 정도 될까? 그러면 두 칸짜리 가게 벽면을 다 채우고 가운데 테이블 두 개 정도에 올려둘 만할 것 같다. 책꽂이에 전부 다 책등이 보이도록 꽂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책 표지가 보이도록 꽂고 주인의 코멘트도 달아 놓는다. 요즘 좋아 보이는 서점들은 다 그렇게 한다. 노래는 주인 맘대로 튼다. 대개는 헤비한 음악이겠지만 어떤 날은 좀 조용한 음악을 틀 수도 있다. 어떤 날 같은? 




여기까지는 요즘 많이 생기고 있는 분위기 좋은 동네 서점과 비슷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가 다른 곳과 다른 점은 반찬을 판다는 거다. 응? 나의 무의식 속에는 항상 반찬가게에 대한 열망이 있는가보다. 아무데서나 튀어나와.. 반찬가게는 다른 사업모델에서 생각하기로 한다. 


여기가 다른 곳과 다른 점은 주인의 시간을 살 수 있다는 점이다. 주인의 시간을 사서 뭘 하는고 하니 고민 상담을 할 수 있다. 이 집을 사야 할까요, 말까요. 이 남자랑 결혼을 해야 할까요, 말까요. 차를 사려고 하는데 제 형편에는 어떤 차가 좋을까요. 내가 잘 해결해 주는 고민들이다. 보통 웬만한 고민은 15분 내에 결판이 날 테니 15분 단위로 판매. 예약도 할 수 있고, 쿠폰제로도 할까? 15분 단위로 받는 금액은 복채를 참고하면 될 것 같다. 요즘 한 5만원 하는지? 나는 그럼 15분 1단위에 2만원을 받겠다. 1시간에 8만이라기보다는 점유율 50%로 잡고 시간당 4만원 정도 되겠다. 


고민 해결이 빨리 끝난다면 손님의 관상과 행색으로 미루어 본 현재 상태를 바탕으로 한 조언들을 해줄 수 있겠다. 오히려 이부분이 더 가치있을 수도 있다. 이미 고민을 하나 해결해 주었기 때문에 그 내용과 합체하여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조언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ᅠ 


고민이 아니라면 책을 추천해 줄 수 있다. 그동안 읽은 책들 중 기억나는 책들 5권하고 자기가 책에서 좋아하는 요소를 이야기하면 넌 이 책을 보는게 좋겠어! 하고 추천해 주는 거다. 그 책은 무조건 사야 된다. 나중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도로 들고 와서 막 뭐라고 해야 한다. 집에 두고 슬쩍 모른 체 하면서 가끔 눈에 띌 때마다 서점 주인을 원망하면 안 된다.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책을 들고 오면 주인이 책을 받고 커피 한 잔을 준다. 돈도 좀 돌려 줘야 되나? 아니다. 케이크를 추가로 준다. 


케이크는 아주 맛있는 케이크다. 파리바게트 같은 데서 파는 가짜가 아니라 진짜 케이크. 주인은 케이크 구울 시간이 없으니 동네에 어떤 말없는 여자가 하는 케이크 제대로 하는 집에서 만든 케이크를 사다가 12조각으로 잘라 둔 것을 한 조각 내어 준다. 케이크는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는다. 냉장고가 아예 없을 뿐더러 저희 업소는 당일 생산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반찬가게에서 다시 서점으로 오자. 어쨌든 서점 주인이 그마만큼의 확신을 가지고 책을 추천해 준다.ᅠ 


서점에 난로가 있으면 불이 날 것 같은데..






서점이 크지 않기 때문에 모든 장르를 다 갖다 놓을 수는 없다. 서점에 어떤 장르들이 있는지 전체 그림이 그려지지를 않으니 취급하지 않을 장르를 꼽아 볼까. 먼저 사전, 에또.. 모르겠다. 재미있는 책들, 표지가 예쁜 책들, 어? 이런 책들도 있었네? 하는 말도 안되는 주제의 책들. 그리고 추리소설들. 아니면 저 구석에 군인코너를 만들어서 야한 책들을 모아 두어도 좋을 것 같다. 아, 취급하지 않을 책들 중에 문제집, 자기계발서, 음악 교본 같은 것들이 있다. 왠지 저런 책들이 있으면 서점의 일관된 컨셉을 깰 것 같다. 만화책은 있다. 사진 책들도 있다. 여행 책들은 세심하게 골라서 갖다 놓을 거다. 단순 가이드북은 좀 치우고, 지도나 지리에 관련된 것들, 옛날의 모습들, 그 나라나 지역의 사람들에 대한 책들이 있다. 할인이나 쿠폰제는 하지 않는다.ᅠ 


서점 주인은 손님들을 귀찮게 하지 않는다. 들어오는 순간부터 시선으로 따라가지 않고, 괜히 옆에 와서 책 이야기나 어쭙잖은 추천나부랭이를 하지도 않는다. 그냥 자기 일을 하고 있다. 일을 한다기보다 자기 공간을 지키고 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서점 주인 모습을 한 고양이가 지키는 서점 같은 거다. 다만 물어 보는 것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확신을 갖고 답해 준다.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OOO에서 OOO해야 하는 OO가지 이유' 같은 식의 답변을 갖고 있다. 한 가지 정도는 15분 단위 시간 구매를 하지 않아도 해 준다. walk in guest 에 대해서는 파격적으로 무료 정책을 펴는 셈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집의 영업 방침이랄까? 그리고 우유 넣은 커피를 팔고 있으니 냉장고가 있기는 있어야 할 것 같다. 우유는 저온 살균 우유만을 사용합니다. 코스트코에서 사온 냉동 케익도 팔지 않습니다.ᅠ 


뛰어올라갈까 말까~




전면에는 해가 좀 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책의 색이 바래기 때문에 좋은 조건은 아니지만 대신 어닝을 달고 어닝 아래쪽, 서점 바깥에는 헌책이나 떨이 책을 늘어놓는다. 반투명 플라스틱 박스 같은데 넣어 두었다가 탁자 위에 올려 놓고 뚜껑만 열어 두면 된다. 서양에서는 다 그렇게 하더라. 그리고 고민상담 내용은 종이에 간단히 적어서 여기저기 붙여 두어야겠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고민하는 것은 비슷한 것이 많고, 고민에 대한 해답을 얻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 큰 만족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러면 알라딘 서점에서처럼 오늘 들어온 고민, 방금 해결하고 간 고민 같은 식으로 배치를 해 두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아니, 이런 컨셉으로 서점을 가장한 점집을 차려도 되겠는걸? 그리고 거기서 반찬도 파는 거다. 맛있는 케이크도 팔고.ᅠ 


그러면 

거기서 나는 어디에 앉아 있을까? 즐거운 고민이다.ᅠ 


주인 할아버지는 잘 계시는지? - 런던 윔블던 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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