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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눈길 Oct 29. 2024

학종 탐구,  컨설팅받으면 되는 거 아니예요?

어머님, 컨설팅으로도 안되는 게 있습니다.


"이질적일수록 좋아, 더 과감해져 봐!"

     우리는 함께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토론한 후 개인별 심층 탐구 주제를 정하고 있었다. 최대한 도전적인 키워드들의 결합을 자극하는 게 나의 목표였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 들어봤지?
로마를 위대하게 만든 건 서울보다 조금 더 클 뿐인 그 장소 자체가 아니야.
학문, 교역, 문화 및 정치를 모두 결집시키는
연결성이 로마의 힘이었어.
탐구도 마찬가지야.
더하고, 또 더하고, 계속 더해봐!”


그 덕분에 이후 탐구 발표 수업엔 흥미로운 주제들이 가득했다.

과학에 관심이 깊은 서윤이는 작품의 영감이 된 갈바니즘(Galvanism)의 과학사적 의의에 대해 소개하고, 미디어 관련 전공을 희망하는 현우는 해당 작품을 영화 ‘가여운 것들’과 비교 분석하며 원전의 재해석을 매체 특성의 측면에서 분석했다. 철학에 관심이 깊은 혜수는 작품을 레비나스의 타자 철학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칸트의 환대 개념에서 해답을 모색하며 갈채를 받았다.  


아이들의 탐구를 지도할 때 가장 강조하는 점이 바로 이 연결의 힘이다.

교육과정에서 배우는 다양한 과목의 고유한 사고 구조와 관련 지식을 충실하게 학습하되, 그것을 나의 주요 관심 분야와 연계시켜야 비로소 나의 독창적 역량이 드러난다.




여기, 한 학생이 있다.

국어, 영어, 과학 과목의 내신이 모두 1등급인 학생. 이 학생의 주변인들은 와, 잘하네, 좋겠다, 기특하다, 서울대 가겠다며 온갖 부러운 시선을 보낼 것이다. 칭찬받아 마땅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칭찬만으로 부족한 게 입시의 현실이다.

대한민국 고등학교 학생 중 이 정도 내신을 가진 학생이 과연 이 학생 하나일까? 미안하지만 널리고 널렸다. 전국을 통계로 잡자면 같은 학년에 최소 수천 명은 있을 거라 확신한다. 학생의 내신이 얼마이건, 같은 내신을 가진 학생은 전국에 수두룩한 게 팩트다.


그렇다면, 비슷한 숫자의 내신을 가진 학생 중 도대체 어떤 학생이 주머니 속 송곳처럼 대학 입학사정관의 눈에 띌 것인가?


여기 또 다른 학생이 있다.

이 학생 역시 국어, 영어, 과학의 내신 등급이 두루 우수하다. 그리고 AI 프롬프팅(prompting)을 영어와 한국어로 진행해 본 결과를 비교하며 AI의 언어적 편향성을 분석하는 탐구를 진행했다.


입사관들은 분명 이 학생을 만나보고 싶어질 것이다.

모 대학에서 설명하는 탐구력의 정의처럼, ‘지적 호기심을 바탕으로 사물과 현상에 대해 탐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자신의 강점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모든 학생이 이렇게 하진 못한다는 점이다. 

교사의 지도를 받아도 그렇다.

연수가 그런 아이 중 하나였다.




“선생님, 저 탐구 주제를 못 정하겠어요.”

연수는 울상을 지으며 나에게 오곤 했다.

“소재는 어떤 것으로 정했니?”
“인권으로 하고 싶은데, 작년에도 했던 소재라 어떨지 잘 모르겠어요, 힝.”
“소재가 동일한 건 괜찮아. 새로운 문제의식이 있으면 돼.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고 싶니?”
“그게 문제예요. 잘 모르겠어요.”
“너의 강점 과목이 외국어 교과고 국제학 관련 전공을 고려하고 있잖아. 최근 국제사회 관련해서 너가 눈여겨봤던 인권 관련 소식이 뭐였니?”
“음, 글쎄요. 뭐가 있지? 잘 모르겠어요.”
“어제 내가 읽은 기사에서 시진핑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중국인들의 망명이 급증하고 있다고 하더라. ‘공익을 위한 정책이 개인의 권리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서로 다른 국가들의 사례를 비교하며 답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떠니?”
“오, 좋은 것 같은데요. 근데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어요.’

연수가 상담 때마다 가장 많이 하는 말이었다.


맞춤형 탐구 주제를 만들어주다시피 해도 연수의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참고 자료까지 안겨주면 간신히 활동을 하긴 했으나 내가 던진 화두 그 이상을 보여주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수는 이렇다 할 관심 분야가 없었다. 똘똘하고 성실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많은 과목에서 두루 우수한 성적을 얻었고, 특히 어학 분야에선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그뿐이었다. 연수에겐 재밌는 분야도 없고 꼭 가고 싶은 학과도 없었다.


그러니 '너가 궁금한 걸 더 파헤쳐봐,' 같은 조언은 연수를 사막 한가운데 던져놓는 것과 같았다. 늘 혼란스러워하며 선생님들의 조언을 구했지만, 좋은 영감을 선물 받아도 꽃 피울 단단한 기반이 없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갈지자를 그리며 갈팡질팡하는 연수의 활동에선 학년을 거듭하며 성장하는 뚜렷한 맥을 읽기 어려웠다.


연수가 비슷한 내신대의 친구들과 달리 재수를 하게 되었을 때 안타까움은 컸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연수의 반대에 서있는 학생이 진원이었다.




진원이는 어떤 학생이었을까요?

무엇이 진원이를 비슷한 성적대의 친구들보다 돋보이게 했을까요?

여러분 주변의 주머니 속 송곳같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다음 화 '관심의 씨앗을 찾아서'에서 여러분들의 ‘제보’들을 함께 살펴보며

‘진원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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