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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fter lunch Dec 02. 2019

내가 선택하는 삶과 직업

행복한 삶과 직업을 선택하는 노하우

PART1. 직업의 선택


인간과 동물이 다른 이유는 많다.

어떤 일을 하면서 '왜 이 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우린 하는데, 난 그 차이점에서 얘기를 시작하고 싶다.

고뇌하는 유일한 동물, 인간

공부를 하면서도,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아님 그냥 놀다가도 왜 그것들을 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고, 자신을 돌아본다. 그것이 불만의 형태로 비칠 수 있지만, 상당히 인간적인 일인 것이다.

동물들은 그런 의문을 갖지 않는다. 반가워서 꼬리를 흔들고, 밥을 먹기 위해 차렷 자세를 취하는 것 같지만 막상 그 행동들을 하면서 '왜 내가 이 짓을 하고 있나?'라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동물의 입장에서 그들의 언어로 불만을 토로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러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어릴 때, 산에서 가까운 고지대에 살았었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칡도 캐고, 자살바위에도 올라가 보고 하면서 산을 오르내렸는데, 가끔씩 외진 공터에서 개를 잡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나무에 개를 묶고 방망이로  때려 기절시킨 다음 토치로 구워댔다. 마치 연쇄살인마가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우연히 본 것처럼, 큰 바위 뒤에 숨어 친구들과 꿈쩍도 못하고 지켜봤었다. 더욱 놀라웠던 건, 그 살인마들(?) 중 한 명이 우리 동네 사는 아저씨였고, 그 아저씨가 키우던 자기 개한테 그러고 있었던 것이었다. 두려움 속에서도 뭐가 궁금했었는지 나는 끝까지 보고 있었는데, 묶어놓은 끈이 풀리고 개가 떨어진 것이다. 놀랍게도 죽지 않았던 개가 정신을 차렸고, 그 개가 주인을 마주했다.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상상치도 못한 개의 행동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자기를 죽여 먹으려고 했던 주인을 보고 등이 까맣게 타버린 그 개는 꼬리를 흔드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밉다. 우리나라의 개고기 섭취에 대한 비판을 하려는 건 아니고,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는 얘기를 하고 싶고, 앞서 확신했던 이유를 말하였다. 동물들은 어떤 행동을 하면서 '왜 이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 같은 걸 품고 있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하기 싫어하거나, 불만에 차서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비난하거나 고치려 하지 말았으면 한다. 너무나도 인간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는 지극히 정상이고, 인간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아내가 "우리 딸이 공부하는 걸 싫어해, 놀려고만 하고... 속상해 죽겠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게 그렇게 속상했어? 공부만 하고 싶고, 오히려 놀지 않으려고 했다면, 그게 더 속상한 거 아닐까?"라고 말했더니, "그런 건가?... 하지만, 중학생인데, 공부하기 싫어하면 어떡해..."

아내도 몰라서 말하진 않았겠지만, 지금의 사회분위기에서 그것이 얼마나 인간적이고 당연한 일인지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다. 아마도, 우리가 인간다운 행동이라고 내버려 둔다면 분명 이 세상을 어렵게 살게 될 거라는 경험에 근거한 유추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여담을 이어가자면, 그렇게 공부하기 싫어하던 중학생 딸은, 이제 "왜 나는 계속 놀려고 하지? 공부 잘하고 싶긴 한데, 나는 그림 그리는 게 더 좋아"라고 말한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공부하는 것도, 노는 것도, 뭔가를 계속하다 보면 그 일을 좋아하는지,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말고 싶은 대로 말고, 계속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내가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게 될까?

또 그런 일로 먹고살 수는 있는 것인가?


WANT-CAN-MUST


쉽고 간단한 이 세 단어를 나는 도전의 메커니즘이라고 명한다.

'내가 원하는 무언가가 있는가? - 그 무언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 그렇다면 반드시 도전하라' 이 원칙을 가지고 부단히 도전하라고 권하고 싶다. 모든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 원칙으로 자문해보면 보다 쉽게 도전할 수 있다. 이 도전의 메커니즘을 들은 후배 한 명이 우스게 소리로 "'나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 '나는 죽일 수 있는가' - '그럼 바로 죽이자', 이래도 되겠네요?" 한 적이 있는데, 그런 일엔 적용하지 말자. 반사회적이고, 부도덕한 일은 제외하자... 두 번째 CAN단계에서 그런 판단은 해야 한다.

can? Can! and then Must do it!

젊은 친구들에 비해 좀 더 살아보니, 40대가 넘어가면 무언가를 도전하기가 참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하는 무언가는 너무 많은데, 두 번째 단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머뭇거리게 하는 게 많다. 처자식을 부양해야 되는 일을 포함해 대부분은 돈과 관련되었고, 돈 문제 외에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는 버리기 어려운 것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정도면 두 번째 단계가 가장 어려운 고비라 생각되지만, 사실은 세 번째 '반드시 도전하라'의 단계가 더 어렵다. 인간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성이 상상보다 크다. 안정된 직장을 선호하는 요즘 시대에는 더욱 그렇고, 그렇기에 20~30대가 도전을 하기에는 가장 적당한 시기인 것이다.


내가 선택하는 삶과 직업이란 주제에 도전의 메커니즘으로 얘기를 시작하는 건,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지? 부모님이 원하는 일이 과연 나에게 맞는 일인지? 그런 것들을 해보지 않고는 알지 못할뿐더러, 아무도 책임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보지 않고 상상하는 것만으로 우리의 적성을 점검할 수 있을까? 감히 말하지만, 그럴 수 없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라 생각하겠지만, 모든 영역에서는 아니다. 때로는 부모와 같은 제삼자가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알기도 하고, 그게 더 객관적이다.

세상에는 수십만 가지의 직업이 있는데, 그렇다고 그걸 어떻게 다 해보고 판단하지? 평생 도전하다 늙어 죽을 거고, 제대로 돈도 못 벌면 자기 앞가림이나 하겠어? 이런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안 해보면 모른다는 거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안 해보면 알 수 없으니, 도전해야 하는데, 도전하기에는 너무 선택지가 많고, 그걸 모두 하다가는 늙어 죽고 굶어 죽게 생겼는데, 어쩌라고?

어쩔 수 없다.

해보지 않고 판단하기란 어렵다. 일단 해보자

어떤 일을 도전하면, 그 일만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일을 '도전의 메커니즘'으로 선택해서 시작했다면, 우선은 자기가 원하는 일로 시작한 것이고, 그 일을 하다 보면 그 일과 관련된 수많은 일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하나의 일을 통해 적어도 수십 가지, 많게는 수백 가지의 일들을 관찰하고 느끼고 체험하며 우리의 의문을 지워나갈 수가 있다. 내가 하는 일의 특성 및 시스템을 이해하는 과정 중에 만나게 되는 다른 파트, 다른 회사, 고객, 협력사, 발주처, 심지어 혼자서 하는 예술행위를 하더라도 거기서 보게 되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경험하면서 나의 일과 타인의 일의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행히 첫 번째 도전을 통해서 평생토록 행복해 할 수 있는 일을 만날 수도 있고, 그냥저냥 만족하며 살 직업을 선택하기도 하고, 생각과는 다르게 행복을 찾기 어려울 때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그 도전은 의미가 있고, 성공적인 도전인 것이다.

사실, 가장 안타까운 케이스는 정말 만족하고 '내가 원하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업을 발견했는데, 그게 생산성이 떨어질 때이다. 까놓고 얘기해서 돈이 안 되는 일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 말이다. 그건 이따 다루어보자.


자, 그럼 하나의 일을 도전할 때, 얼마 동안 또는 어느 정도로 일을 해 보고 판단해야 하는 가? 몇 개월, 몇 년으로 말하기보다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라 권하고 싶다.


첫째, 적어도 전체적인 일의 시스템을 이해할 때까지는 일하라.

둘째, 누군가에게 그 일을 세세하게 전문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 될 때까지는 일하라.

셋째, 관련 자격증을 취득할 때까지는 일하라.

넷째, 스트레스로 인해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이 될 때까지는 참지 마라.

다섯째, 다른 도전의 아이템을 발견하고,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때까지는 일하라.


정도는 달라도 위의 기준이 될 때까지는 일을 하는 게 좋다. 그렇지 않고 어떤 일을 판단하기는 어렵고, 후회를 동반하기 쉬우니까... 


하나씩 살펴보자,

Stop thinking? After thinking!

1. 어떤 일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전에 그만둔다고 가정할 때, 만약 그 일의 끝에 엄청난 반전이 있다면(과정의 고단함을 한방에 날려줄 보람과 보상 등), 그 사람은 그 일을 전체적으로 경험했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과정 자체가 어떤 보상이 있다 하더라도 견딜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이라면 다른 얘기겠지만, 그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지 인내심이 부족한 안타까운 결과일 가능성이 많다. 아울러, 남은 과정에서 만나게 될 많은 기회들을 날려버린다는 것은 덤으로 발생한다.


대부분의 일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겪어봐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어떤 직장이든 최소한은 1달(급여를 받아볼 때까지), 제조업과 기술직의 경우는 최소 하나의 프로젝트 단위, 일반 사무직은 4분기(1년) 정도는 기본적으로 경험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2,3. 누군가에게 전문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 될 때까지 와 관련 자격증을 취득할 때까지는 일하라는 말도 마찬가지로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출 정도가 되어야 더 이상 추가로 참고 있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더라도, 그만두기 전의 일이 나의 경력으로 인정받아서 '직업'이 생기려면 최소한 3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4. 참기 힘든 스트레스까지 참으라고 말할 수는 없다. 자신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인식하고, 그 한계 범위 내에서는 일단 인내하고 일해야 한다. 즐겁지 않다는 이유로 조금의 스트레스도 참지 못하고 그만둔다면 세상에 할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반대로, 인간성이 말살되는 극심한 고통까지도 참으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설사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다른 대안을 빨리 찾고 나오는 게 상책일 것이다.


5. 마지막으로, 이게 아니다 싶다면, 내가 하는 일과 놀이의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주변을 살피고, 분석하여 다른 도전의 아이템을 찾아야만 한다. 또 무슨 도전이야? 하겠지만, 인생은 어차피 그런 최종의 즐거움을 찾기 위한 과정이니 조급해하지 말자. 다른 WANT의 아이템을 찾을 때까지는, 그래서 그걸 할 수 있는 CAN의 능력을 키울 때까지는 차근차근하던 일을 하고, 생계를 유지하면서 준비해야 한다. 앞서 말한 돈이 안 되는 일을 좋아하게 된 안타까운 케이스도 이 경우에 해당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돈이 안 되는 일을 하고 살 수는 없다.


내가 좋아하고 나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을 발견하는 것은 참 이상적이고 황홀한 기쁨이지만, 그런 일은 흔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다소 간단하기 그지없는 도전의 메커니즘과 그 과정에 수반되는 그런 일을 찾았다고 해도,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던 일이 아닐 수 있고, 평생 해야 할 직업을 찾을 때까지 몇십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정말로 내가 원했던 건가? 정말 계속해도 행복할까?




PART 2. 삶의 선택


살아오면서 이런 얘기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냥 하라고 하면, 해!", "왜 이리 질문이 많아?", "시키는 대로만 제발 해!",... 이런 말들은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말이고, 인간의 기본적인 의문들을 허용하지 않는 말이다. 하지만,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는 조직이나 집단에서 자주 들을 수 있고, 군대나 소방서처럼 생명을 다루거나 일분일초의 머뭇거림이 안전과 직결되는 곳에서는 일상생활이 된 지 오래다.


개성이나 창의성이 질서 정연한 조직의 시스템을 방해하는 개인주의로 간주되고, 긴급한 상황에서의 신속한 행동을 매뉴얼화시킨 집단에서의 관리방법을... 우리나라 거의 모든 회사의 상사들이 부하직원을 효율적으로 다루기 위해 사용한다.


이런 말들을 평생 듣고 살면, 불행하게도 그런 말에 복종하기 시작한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건설회사도 안전이 강조되는 직업이라, 아마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긴급상황인지를 불문하고, 조직의 전반적인 일에서, 오히려 차별화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경우에서까지 그런 말들은 남발되고 있다. 조직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인간성 말살 발언을 정당화한다. 듣는 사람들은 더러워도 참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질문을 자제하고, 어떠한 부조리한 명령에도 거스르지 않으며, 생산성이 떨어지는 절차를 수행하면서도 자신의 입지를 걱정하여 조직을 위한 행동들을 하지 못하는 게 작금의 상황이다.

모르긴 해도, 이런 상황들이 모든 샐러리맨들의 가장 큰 불만이 아닐까 한다.


그건 그렇고, 나는 자신이 선택하는 삶이란 주제로 얘기하고 있다. 앞서 말한 조직의 일방 통행적인 지시는 초/중/고/대학생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 같다. 가끔씩 대학교에 강의하러 갈 때가 있는데, 성인이 된 대학생들도 자신의 생각을 자신 있게 얘기하는 친구들을 찾기 힘들었다. 학교를 선택하거나,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그 선택에 참여한 사람들이 없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느꼈다.(참고로, 아직 하고 싶은 뭔가를 찾지 못한 초/중/고등학생들이라면, 조바심 갖지 말고 부모님 말을 듣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 같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도전하면서 자신의 적성과 특기를 발견하고, 부모님이 좋아하는 일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도록 독려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진 삶에 익숙해져 개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청년들을 보며, 마치 나의 잘못인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정규 교과 과정보다 선배나 부모의 인생 조언들이 더욱 필요한 이유이고,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을 우리가 선택하고, 그 선택이 후회가 없을까?

지금까지, 자신이 원하는 일을 선택하기 위한 도전의 메커니즘과 그 과정에서의 자신과 타인을 관찰하면서 발견하게 될 또 다른 도전, 즉, 행복한 직업선택의 노하우를 말씀드렸다.


그런데, 자신에게 포커싱 된 직업선택이 갖고 있는 함정을 간과했다. 내가 원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그래서 도전해 왔고, 그렇게 선택된 나의 일과 나의 삶이 타인에게 아무런 기쁨이나 행복을 줄 수 없다면, 그 삶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나만 행복하면 되는 건가?

타인과 더불어 살지 않는 사람은 없다. 혼자서 행복하고 즐거워도, 혼자 뿐이라면 행복할 수 없다. 그래서, 도전의 메커니즘으로 선택하게 될 선택에 앞서, 우리 자신과 타인의 삶을 성찰함으로써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성찰을 "행복 영향 분석"이라 명명해 본다.


우리가 선택한 삶이 가지는 행복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성찰을 해야 한다. 나만 잘 살 수 있는 직업을 선택했으나, 그 일이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가진다면, 그 행복은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기쁨이 남에게도 기쁨이 되는 삶이라면, 그 삶을 통해 후회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아무쪼록, 짧은 여러분의 인생에서 여러분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하고, 도전해서 선택된 삶이 행복한 삶이길 바라며, 그 삶을 통해 세상이 즐거워지길 바란다.

"Success is liking yourself, Liking what you do, and liking how you do it" -Maya Angelou

(성공이란, 당신 자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고, 그 일의 과정을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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