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의정원 Jan 31. 2024

'닥치고 정치'식의 정권 만능주의, 매우 큰 문제

[인터뷰] <어나더 경제사> 저자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①

아마 대부분은 한 번쯤 세상이 대체 왜 이럴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오죽 난제였으면 전설의 반열에 오른 나훈아 선생마저 테스 형에게 '세상이 왜 이래?' 하고 묻지 않았던가. 어쩌면 그 답은 테스 형이 아니라 역사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경제학자인 홍기빈이 쓴 <어나더 경제사> 시리즈야 말로 그간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세상의 수상한 질서'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인류의 거의 모든 경제사를 다루는 방대하고 거대한 스케일의 <어나더 경제사>는 자본주의와 산업문명이라는 틀로 인류의 경제라는 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 충실하게 조망한다. 그 속에서 고대인들의 식생활부터 유럽 흑사병, 미터법의 발명, 복식부기의 등장, 화폐와 은행과 신용의 발생, 설탕과 면화 이야기, 산업혁명, 세계 대공황, 석유 파동에 이어 신자유주의 초입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오늘을 만든 다종다기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홍기빈이 차려놓은 이 지적 만찬을 즐기다 보면, 결국 우리에게는 두 가지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또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지난 17일 <어나더 경제사> 시리즈의 저자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을 만났다. 경제사에 관한 내용부터 현재의 국내 · 국제 정세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까지, 과거·현재·미래에 관해 두루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리 물어도 테스 형은 대답해줄 리 만무하니, 경제와 역사를 통달한 이 사람에게 물어야겠다. "기빈이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인류, 매우 중요한 변곡점에 와 있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 우선 책 얘기를 먼저 해보겠습니다.  <어나더 경제사> 시리즈는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경제사를 다루는 정말 거대하고 방대한 스케일의 역사책입니다. 작가가 직접 소개한다면요?

제가 빅히스토리에서 가져온 두 가지 개념이 있는데요. 여러 과정의 누적과 뒤엉킴입니다. 예를 들면 지구는 처음 빅뱅이 생긴 다음 물리적 과정·화학적 과정·생물학적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죠. 이 각각의 과정들은 아래의 과정을 전제로 생기지만 동시에 누적됩니다. 또 새로운 과정이 생기면 그전의 과정과 뒤엉키면서 새로운 결과가 생겨납니다.


저는 역사와 진화라는 관점에서 이 개념을 인류의 경제에 적용할 수 있다고 봤어요. 고대부터 근대까지 발생한 여러 사건이 누적되고 뒤엉키면서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과정이 나타났고, 이 자본주의를 전제로 산업문명이 생겨났습니다. 19세기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자본주의와 산업문명이 뒤엉키면서 다시 지구적 시스템이 강고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결국 인류의 경제, 아니 그걸 넘어서 인류의 삶과 지구 전체를 지배하게 된 지금의 시스템은 이 세 개의 층위가 누적되고 뒤엉키면서 생겨났다고 봐야 합니다. 이 책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이론적인 틀은 거창하지만, 각각의 내용들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야부리' 풀 듯 이야기 했습니다.(웃음) 고대인들이 어떻게 경제 생활을 했는지부터, 면화로부터 시작된 산업혁명 이야기, 대공황, 석유 파동 등 세계 경제사의 다양하고 굵직한 사건과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지금 인류와 지구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한번쯤 되돌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그간 선생님께서는 경제학자이자 사회과학자로서 현재에 집중했던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분석하고 이야기 해 왔으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역사, 그것도 경제사라니... 뭔가 그간 해온 작업과는 다소 동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경제학은 굉장히 종류가 다양합니다. 이를테면 학계에서 흔히 얘기하는 경제학이라고 하면 수리 모델을 세우고 데이터를 모아 계량하고 검증하는 방식인데, 이런 경제학의 베이스는 수학과 통계입니다. 동시에 사회과학을 기반으로 한 경제학도 있습니다. 이것은 제도와 정치와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경제를 바라봅니다. 제가 해 왔던 경제학이 후자에 속하는 것인데요. 이런 경제학의 기본이 바로 역사예요. 그러니 저에게 역사는 크게 낯선 것은 아닙니다.


- 그렇다고 해도 지금 시점에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역사를 통해 지금 우리 인류가 처해있는 위기와 그 위기의 성격에 대해서 제대로 소명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인류가 매우 중요한 변곡점에 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럼에도 이런 작업이 지금껏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역사와 진화를 나눠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사피엔스> 같은 책을 들 수 있는데요. 이 책에는 유인원에 가까웠던 인간이 인지 혁명을 겪으면서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났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선 인지 혁명이란 말 자체도 없을뿐더러, 이 말은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의식이 동일하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게 역사와 진화를 분리하는 시각입니다. 이런 시각을 전제로 하면 결코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맑스주의 경제사관에서 바라보는 자본주의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이들은 몇백 년 전에 자본주의가 나타난 이후로 지금까지 자본주의는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지난 1만 년 동안 인간은 끊임없이 진화해왔고, 자본주의 또한 계속 바뀌었습니다. 저는 인류와 지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지난 300년 동안에도 인간이 진화했다고 봅니다. 결국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풀기 위해선 인류가 경제생활을 조직하는 방식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모든 걸 정치로 풀 수 있다는 생각, 명백하게 틀렸다

<어나더 경제사> 표지 이미지


- 인류가 위기에 처했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점에서 위기라는 것일까요? 사실 따지고 보면 학자들은 몇십 년 전부터 늘 위기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요.(웃음)

저도 맨날 위기다, 위기다 하는 거 제일 싫어하는 얘기입니다.(웃음) 심지어 거의 몇백 년 동안 다 사람들이 위기라고 했으니 제가 또 이 얘기하면 정말 양치기 소년이 되는 건데, 그럼에도 위기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웃음)


이렇게 믿는 제일 중요한 이유는 인류 역사상 하나의 문명, 하나의 시스템이 지구 표면 전체를 덮은 적이 처음이기 때문이에요. 로마 제국이나 칭기즈 칸 제국이 세계 대부분을 지배했을 때도 내부적으로 획일적이지 않았고, 종교도 다르고 다 달랐습니다. 게다가 밖에 항상 다른 문명이 있었어요. 지금은 80억 인구가 똑같은 방식으로 경제를 조직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정치 질서를 만들어 하나의 지구적 시스템으로 통합한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상황입니다.



- 그런데 이게 왜 위기라는 건지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이런 거죠. 300년 전에 루이 14세가 유럽에서 전쟁을 일으켰다고 해서 조선 사람들이 괴롭진 않았잖아요.(웃음) 지금은 어때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에 인플레이션이 덮치고, 전 세계 일자리가 다 영향을 받습니다. 미국이 국익을 추구하겠다고 하면 모든 나라 사람이 다 몸살을 겪습니다. 인간만 그런 게 아니죠. 생명 영역 전체, 심지어 지질학적 차원까지 영향을 줍니다. 모든 인류 역사상 이런 게 처음이란 거예요. 사람과 사회와 자연이 하나로 통일된 전대미문의 상황인데, 누구도 이걸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난 300년 동안 자기들이 익숙한 삶의 방식인 자본주의, 근대국가, 국제정치의 틀로 지구적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러다 큰일 납니다. 인류가 삶의 방식을 지구적 시스템에 맞게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고 계속 기존의 시스템을 고집하면 사회적 불평등, 지구적 차원의 생태 위기, 지정학적 위기, 전쟁의 위기 같은 것을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 <어나더 경제사>에는 인류의 삶의 틀을 바꾼 엄청난 사건들이 수없이 등장합니다. 화폐가 생겨나고, 은행과 신용이 등장하고, 근대국가가 만들어지지요. 그렇게 근대국가와 근대화폐가 결합하면서 자본주의가 인류의 경제를 넘어 삶을 지배하고,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산업문명이 건설되고 등등의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복잡하고 웅장한 드라마가 펼쳐지는데요, 그 수많은 사건 중에서 인류와 지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인류 진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언어의 발명, 신의 발명, 철도의 발명입니다. 이 세 가지 발명은 서로 무관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언어가 생겨나면서 처음으로 상징이란 것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림이나 음악 같은 것도 어찌보면 상징을 다루게 되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지요. 다시 말해 상징을 통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루이스 멈퍼드 같은 학자는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게 된 다음부터 인간으로 보는 게 맞는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다음으로 신의 발명은 상징들끼리 하나의 질서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의 신이 전 세계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있다는 사고를 통해 이제 인간이 단순한 상징을 넘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 질서까지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이후 철도의 발명으로 인간이 추상적 질서를 생각하는 것을 넘어 인간과 사회와 자연을 몽땅 재배치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철도라는 물건을 분석하면 고도의 추상적 질서, 공학적 질서, 금융적 질서가 맞물려 있습니다. 철도로 인해 인간이 인간과 사회와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뀐 것이죠.


어쩌면 이것과 비견할 수 있는 것이 디지털 혁명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직은 시간이 그리 많이 지나지 않아 이렇다 저렇다 결론 낼 수 없는 문제이긴 합니다. 다만 디지털이 나타난 다음 세상의 변화라는 차원에서 보면 그 속도와 깊이와 폭이 그전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 흔히들 역사를 통해 희망을 본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세상은 조금씩이지만 진보하고,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어나더 경제사>를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사람들은 20세기의 좋았던 시절에 비해 더 먹고 살기 힘들어졌고, 2차 산업혁명 시대에 비해 만성적인 불평등과 고용불안은 더욱 커졌습니다. 기후 변화와 생태 위기는 세계 곳곳을 위협하고 있고요. 선생님은 역사와 미래를 긍정하시는지?

우선 다윈과 맑스에 대해서 좀 이야기 하고 싶은데요. 이 둘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다윈이 말하는 진화는 진보가 아닙니다. 인간은 진화하지만 여기선 좋아지고 나빠지고가 없어요. 심지어 아무런 목적 없이 나간다고 보기도 합니다. 맑스, 정확하게 맑스주의는 역사 안에 이상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힘이 내제하고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어요. 저는 맑스주의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의 희망이나 가능성을 역사에서 찾으려고 하면 현실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뿐 아니라, 무엇을 이상으로 삼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절망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지는 역사 안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느냐 하는 신념에서 나옵니다. 물론 역사, 즉 제대로 된 인과 관계를 통해 인류가 어떻게 흘러와서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게 <어나더 경제사>를 통해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이기도 했고요. 그렇게 현실을 제대로 본 다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역사에서 위로받으려 하지 말고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 우리가 결단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 대부분의 사람은 사회변화란 결국 정치변화에서 온다고 믿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세상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가려면 결국 '돌고 돌아 정치'라는 것인데요.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경제사를 공부하거나, 현실을 제대로 보려는 노력 같은 게 무용하다는 결론으로 이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모든 것을 정치로 풀 수 있다는 생각은 명백하게 틀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웃음) 물론 정치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권이 집권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누가 부인하겠어요. 하지만 이게 정권을 바꾸면 다 된다는, '닥치고 정치'식의 정권 만능주의로 가는 건 매우 큰 문제입니다. 무조건 윤석열 정권이 문제라거나, 정권만 교체하면 다 해결될 거라는 믿음 같은 것이죠. 선거 때마다 볼 수 있는 기묘한 풍경이 하나 있는데요. 어느 정당이든 자기들이 집권하면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집권을 해요. 집권한 다음엔 사회 탓을 합니다. 이게 이쪽이나 저쪽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정부를 보면 자기들이 못하는 이유는 노조와 전교조 같은 좌경세력이 발목을 잡고 있어서라고 하죠.(웃음) 진보 정권이 잡아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저 보수 언론과 기득권 세력이 강고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얘기합니다. 그런 다음 제일 안 좋은 쪽으로 빠지는데 '좀 더 밀어주십시오'로 결론이 납니다. 이게 우리가 지난 20년 동안 보고 겪은 일입니다.


저는 정당이 무의미하다거나, 정권 교체가 필요 없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어느 정권이든 사회가 바뀌지 않아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얘기를 꼭 한다는 거에요. 그런데 뭐가 닥치고 정치에요. 이건 정권 바꿔봐야 다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들 스스로 실토한 셈이잖아요. 그러니 정치인만 바뀌어서 뭐 합니까? 우리 스스로 생각을 바꾸고, 삶의 방식을 바꿔서 사회 변화를 추동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께 가는 과정에서 사회 변화도 있고, 정치 변화도 있고, 경제 변화도 있는 것이지, 정치 변화만 중요하다는 주장은 비타민만 먹어서 불로장생할 수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스타그램' 하다가, 30만 명이 제 글씨를 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