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반다나 싱의 단편집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를 읽고 있는데, 소재는 좋으나 결말이 모호한 작품이 많아 중간까지 꾸역꾸역 읽다가 결국 여러 리뷰글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 어떤 글도 속 시원한 해석을 내리지는 못해 영 찝찝함이 가시지 않았는데, 그러다 아직 읽지 않은 단편 중 하나인 '보존법칙'이 영화 [서던 리치: 소멸의 땅]와 비슷한 느낌이라는 리뷰를 읽었다. 흥미로운 제목이라 호기심이 일어 영화 리뷰를 몇 개 찾아봤는데, 영화의 의도나 주제에 대해 제각기 다른 해석만 수두룩하고 다들 본인의 해석이 맞는지조차 모르겠다는 듯한 태도다. 심지어 네이버 평점은 무려 6점대. 청개구리 기질이 발동해서 '뭐가 어때서 그렇게 이해하기 힘든지 너무 궁금하다'는 심정으로 영화를 켰다.
소재가 무척 독특하고 화면이 몽환적이라 다른 SF 영화와는 매우 다른 느낌이었다. 영화 소개에 잔인함, 폭력성, 고어 등의 문구가 뜨길래 러닝타임 내내 긴장했는데, 초중반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끔찍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마지막에 벤트러스 박사의 몸이 부풀어 오르길래 풍선처럼 터져버리고 마는 징그러운 장면이 연출될 줄 알았는데, 그저 아름다운 빛깔의 세포 입자로 변해서 맥이 탁 풀렸던 게 기억난다. 그러나 영화 초반에는 어느 정도 명확해 보이던 소재가 결말로 향할수록 흐리멍덩해지는 게 답답했다. 주제를 대놓고 주는 걸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제작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영상을 만들었는지 한참을 생각해도 답이 추려지지 않는 건 더 별로다. 열린 결말이 여운을 남기는 스토리가 있는 반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하기에 찜찜함만이 남는 스토리가 있다. 영화의 호불호가 이 지점에서 갈리는 듯하다.
'코즈믹 호러'라는 건 이해의 영역을 뛰어넘은 불가사의한 존재에 의한 공포를 뜻한다. 특히 가상 세계보다도 현실 세계를 배경으로 상식을 적용할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면 단순한 공포를 뛰어넘는 기괴함을 경험할 수 있다. [서던 리치]에서 등장하는 X 구역, 즉 '쉬머'의 모습이 그렇다. 쉬머 내부는 우리가 지금까지 터득해 온 물리나 생존법칙이 소용없을 만큼 끊임없이 불규칙적으로 변화하는 곳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한가운데 갑작스레 등장한 초월적 공간은 묘한 현실감을 경험하게 한다. 내부에서 벌어지는 혼란과는 달리 쉬머 속 공간이 너무나 아름답게 그려졌다는 점도 돋보였다. 쉬머를 덮은 오색빛깔 장막이나 서로를 딛고 뻗어나가는 환상적인 색의 돌연변이 등의 풍경은 해당 장면만 떼어놓고 보면 감탄만 나온다. 모든 것의 근원인 등대와 바다 주변에는 키가 크고 영롱한 크리스탈 나무가 널려 있는데, 이런 기이한 화면을 감상하느라 지루할 틈이 없었다.
뻔한 호러 기믹을 제외한 몇 가지 설정이 꽤 참신해서 놀라기도 했다. 쉬머 속 비현실적인 환경을 '돌연변이'와 '굴절'을 통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보니 상상치 못한 게 나와도 억지스럽지 않고 매우 그럴듯했다. 특히 셰퍼드를 물어 죽인 돌연변이 맹수가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낸다는 부분은 정말 소름 끼쳤다. 조시의 마지막은 아름답다고도 할 수 있었는데, 그가 생각해 낸 '식물이 인간의 DNA 염기 서열을 모방한다'는 가설이 사실은 반대였다는 게 드러난 장면이라 더욱 소름 돋았던 것 같다. 살아있는 사람의 배를 가르는 등 실제로 고어한 장면도 몇 있지만, 이 영화가 공포스러운 이유는 내용을 곱씹을수록 소름 끼치는 상상을 연이어 하게 되는 부분에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사람이 잔인하게 죽거나 훼손된 시체가 연달아 등장하는 등의 끔찍한 장면보다는 이런 식으로 무한한 상상을 통해 경험하는 공포가 훨씬 쫄깃하다. 영화 [버드박스]를 흥미롭게 본 것도 이런 식의 스릴이 처음부터 끝까지 쉼 없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중반부까지의 전개도 좋았다. 적당한 호기심을 유발하며 한 번에 많은 것을 풀어주지 않는 스토리 진행은 구멍 난 퍼즐을 끼워 맞추는 재미가 있다. 다들 자살이나 다름없는 쉬머 탐사대에 들어온 이유가 과연 단순히 지적 호기심과 사명 때문인지, 벤트러스 박사가 왜 시종일관 무신경한 표정과 어조로 말하는지, 그리고 문제없어 보이던 레나와 케인의 결혼 생활이 실상은 어땠는지 등이 하나하나 밝혀질 때마다 신이 났다. 다섯 명의 대원이 각자의 삶을 빗댄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도 좋았다. 딸을 백혈병으로 잃고 아이와 함께였던 시절의 자신도 잃게 된 것 같다던 셰퍼드는 본인의 운명을 선택할 새도 없이 죽게 되고, 이해할 수 없는 변화를 마주하는 게 두려운 아냐는 패닉에 빠져 자멸한다.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한 조시는 어쩌면 가장 평화로운 끝을 맞이하며, 삶에 대한 미련은 없으나 쉬머의 근원에 대한 호기심은 떨치지 못한 벤트러스 박사는 근원 그 자체가 된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대원인 레나의 끝이 남았는데, 이에 대해서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온다.
꽤 탄탄했던 중반부까지의 스토리는 결말로 향하며 뒤틀리기 시작한다. 감상자의 상상력이 개입할 수 있는 틈을 열어두는 건 좋지만, 지금까지 본 것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가진 상상력을 전부 쏟아부어야 하는 영화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창작물이 아닌 개인의 독백일 뿐이다. [버드박스] 또한 미지의 무엇인가를 두 눈으로 마주하는 순간 광증이 생기며 죽게 된다는 초월적 공포를 선사하지만, 단순히 '공포'와 '생존'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한 덕에 스토리가 깔끔하다. 깊이 있는 서사는 아닐지언정 하나를 파고들었기 때문에 괜찮은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서던 리치]는 '죽음'과 '탄생', '돌연변이'라는 주제에서 멈추지 않고 답을 찾기 힘든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쉬머는 왜 생겨난 것이며 등대에서의 죽음과 재탄생, 복제는 어떤 현상인지, 그리고 돌아온 레나는 복제로 인해 새로이 탄생한 레나인지 아닌지 등 너무 많은 질문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떠돌게 된다.
해석에 대한 결도 제각기 다르고 감독이 제시한 방향도 없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사람들의 리뷰를 열심히 찾아보게 되는데, 읽을수록 이것저것 추측과 해석이 섞여 더 복잡해질 뿐이다. 결국 마지막에 남게 되는 건 영화에 대한 두루뭉술한 이해와 얼마간의 찜찜함이다. 코즈믹 호러라는 장르를 놓고 보면 장르의 특성 - 이해가 불가능한 현상들 - 에 충실한 결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여러 사람들의 해석을 읽으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확인해 볼 수 있으니 답을 구하는 동안 나름 재미있기도 하고. 다만 나는 마지막에 반전을 주거나 답이 정해지지 않은 질문을 하더라도 이 영화가 '그래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게 좋아 아쉽다.
근 이틀 동안 영화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다가 퍼뜩 깨달았다. 왜 SF 영화에 어떤 주제 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그저 기이한 과학적 현상을 나열하고 거기서 끝없는 호기심을 이끌어 낸다면 그것도 과학 픽션 아닌가. [서던 리치]에 대해, 어떤 심각한 주제의식 없이 특이한 과학적 혹은 초월적 현상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뻗어나간다고 생각하니 복잡하던 머리가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읽어 본 해석 중 대부분이 영화 초반에 등장한 '암세포'와 '악성 종양의 분열'이라는 소재에 집중하거나 영화의 원제인 '자멸'이라는 단어에 몰두했는데, 개인적으로 좁은 단어에 갇혀 해석하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다 생각해서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떻게 보면 답이 없는 문제에서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생각을 뻗어나가는 모습이 쉬머 안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식물의 모습과 닮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영화를 보고, [서던 리치]를 보게 된 계기인 반다나 싱의 '보존법칙'을 읽어보았다. 해당 단편은 다중우주의 세계에서 서로 닮은 우주가 어떠한 초월적 사건으로 인해 섞여 들어갈 수도 있다는 걸 장난스럽게 풀어낸다(이 단편만큼은 무척 흥미롭다). 재미있게도 나는 [서던 리치]와 이 단편이 닮은 점이라곤 SF 장르라는 것밖에 찾지 못했다. 리뷰어가 상상한 다중우주의 톱니바퀴 관제센터가 쉬머의 비현실적 공간과 닮아 있었을까? 그래도 우연히 찾아 들어간 블로그에서 우연히 읽게 된 리뷰로 평소의 나라면 굳이 찾아보지 않았을 영화를 보게 되어 재미있었다. 어쩌면 우리들의 삶도 서로에 의해 얼마간 '굴절'되고 있는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