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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겁꾼 Apr 12. 2023

마침내 엄마는 장롱에서 면허를 꺼냈지

나는 시방 위험한 초보운전자


운전면허증, 취준 시절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남겨보려고 거금을 들여 취득한 국가 자격증 되시겠다. 내가 맨날 주변에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것 중 하나가 면허 필기시험에서 무려 100점을 기록했다는 썰인데, 이제 와서 보니 딱히 자랑거리도 아니다.


앞으로 직진만 하면 되는 기능 시험에서 괜히 핸들을 깔짝거리다가 차선을 벗어나서 하마터면 불합격을 받을 뻔했다. 도로 주행 시험 중에는 차선을 못 바꾸고 방황하다가 당장 내리시라는 감독관의 불호령에 쓰디쓴 불합격을 맛보고,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더 내고 추가 연수를 받았다.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재시험에서는 내가 차를 움직일 때마다 이유도 모르게(?) 이것 저것 감점을 받았고, 간신히 70점 합격 커트라인에 맞춰 겨우 얻어낸 자격증이 바로 그 면허증이라는 것이다. 그때, 운전을 몇 번 해보지는 않았지만 어렴풋이나마 알았다. 나는 운전에 천부적인 재능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대중교통이 워낙 편리한 도시에 살고 있다 보니 운전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출퇴근할 때도, 주말에 외출을 할 때도 당연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회사 다니면서 외근이나 야근이 잦았을 때도 법카를 이용해 택시를 타다 보니 운전을 할 일이 더더욱 없었다. 그렇게 면허증은 서서히 장롱 속으로 들어갔고, 어느새 나는 6년 차 무사고 운전자가 되어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도 운전을 할 일은 쉽게 생기지 않았다. 아이 병원에 갈 때는 동네 병원으로 걸어가면 됐고, 조금 먼 소아과에 갈 때면 남편이 대부분 동행했다. 아직 어린아이의 생활 반경은 집 앞 놀이터나 공원 위주다 보니 유모차와 아기띠정도면 충분했다.


그러다 지난해 아이가 어린이집을 퇴소하면서 문화센터를 등록하게 됐고, 수업에 다니려면 운전을 시작해야만 했다. 백화점과 마트까지 적어도 30분 이상 유모차를 끌고 걸어가야 하는데, 여름과 겨울에는 차마 그 거리를 걸어갈 수 없어서 운전할래 말래에 대한 선택지가 없었다. 거창한 목표는 전혀 없었다. 그냥 집에서 약 3km 남짓 떨어진 백화점과 마트에만 무사히 다녀올 수 있으면 됐다.




가족에게 운전을 배우는 건 몹쓸 짓이라고들 하지만, 돈을 아껴보겠다는 생각에 남편을 옆에 태우고 운전 연수를 시작했다. 군대에서 운전병이었다던 남편은 후임에게 운전을 가르쳐본 경험이 다수 있다고 하니까 여러모로 괜찮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일단 지방에서 운전을 할 일이 생기면 운전대를 잡고 조금씩 주행 연습을 시작했다. 브레이크가 오른쪽 발판이던가? 왼쪽 깜빡이 넣으려면 레버를 올려야 하나? 몇 년 만에 운전하려니 자동차의 기본적인 기능을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빨간 불에 정지하는 걸 안 까먹은 게 다행일 정도로 신호를 보는 것도 어려웠다. 면허를 도대체 어떻게 딴 건지 모르겠다.


그런 내가 답답했을 법도 한데, 남편은 평소 화를 잘 내지 않는 편이라 그런지(?) 운전을 배우는 과정은 생각보다 평탄했다. 그 와중에 남편이 잘한다고 칭찬해 주면 기분이 좋았고, 별 뜻 없이 한 말에 상처를 받는 날도 있었다.


빨간 불에 정지할 때 브레이크를 여러 번에 나눠 밟아라, 차선을 바꿀 때는 우물쭈물하는 것보다 자신 있게 들어가는 게 더 안전하다, 트럭 같은 큰 차 뒤는 시야가 좁으니까 옆 차선으로 이동하는 게 좋다 같은 남편의 조언을 하나씩 새겨가며, 간헐적인 운전연수였지만 나름 정성스럽게 운전을 배웠다. 어쨌든 나는 운전에 큰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항상 긴장되는 순간




간헐적인 운전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운전을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는 무언가가 생기고, 스스로 터득하는 요령도 생겼다. 더 잘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겨서 유튜브를 보며 운전 공부를 하기도 했다.


수많은 랜선 스승님들


백화점이랑 마트 정도는 다녀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스멀스멀 올라왔을 무렵, 초보운전자에게 자신감은 위험하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문센 개강 며칠 전 미리 예습을 해보겠다며 들러본 마트 주차장에서 결국 나는 차를 대차게 긁었다.


긁었다기보다 찌그러트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코너에서 오른쪽 사이드미러를 제대로 못 보고 차 문이 벽에 닿아 찌그러지고만 것이다. 마치 다 먹고 분리수거된 음료수 캔처럼 구겨졌는데, 그렇게 큰 차가 순식간에 찌그러질 줄은 몰랐다. 차에 새겨진 안타까운 훈장정도면 좋았겠는데, 차 문이 열리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수리를 맡겼다. 나에게 일어난 첫 사고였다.


아무도 안다쳤는데 내 마음이 다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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