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을 여행하고난 후
5월은 참 따듯했지만 정신이 없기도 한 한 달이었다. 어쩌다 보니 주말마다 잡힌 여행 약속, 게다가 저 멀리 유럽에서 친구가 놀러와 서울 여행까지 하게 되면서 매 순간이 꽉꽉 차 있었다. 하필 5월 시작과 함께 찾아온 감기는 2주쯤 머물다가 멀어지는듯 했는데, 계속된 무리한 스케줄로 인해서 떨어지지 않고 5월 내내 나의 일부인 것처럼 붙어있었다. 다시 한번 몸 건강의 소중함에 대해서 느끼고 힘들게 투쟁해 준 나의 세포 하나 하나에 감사해야 했다. 정신없이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오히려 마음을 더 챙겨주려고 노력했다. 평소보다 명상도 더 하고, 운동하는 시간, 독서하는 시간을 빼서 가만히 있는 시간을 만들어서 5월을 감사하게 마무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온 이 ‘정신없음’이 나에게 신호를 보내온 것 같다. 평소에 나만의 스케줄과 루틴을 만들어서 스스로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간 속에 타인을 위한 시간이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새롭게 시작되는 6월, 곧 다가오는 하반기에는 조금 더 나와 더불어 남에게 시간을 내주어도 여유로울 수 있도록 다시 나의 일상을 뒤돌아 봐야겠다.
5월 초, 처음 떠난 곳은 우리 부모님의 고향이자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던 충북 음성이었다. 함께 마음공부를 하는 친구들과 지금은 아무도 계시지 않는 시골집을 방문했다. 도착 하자마자 밥을 해먹고, 시골길 산책을 했다. 걷다가 길에서는 쑥도 뜯어보고, 아카시아 꽃잎을 따서 먹어보기도 하였다. 아카시아 향이 이렇게 향긋한 줄 3N년 인생에 처음 경험을 했다. 황홀하고 따스했다. 저녁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야채 구이도 해먹었다. 개구리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앉아있으니 저절로 현재에 머무르게되었다. 다음 날 음성에 위치한 보탑사에 방문했다. 여러가지 꽃이 있는 아름다운 곳 이었다. 지대가 높아서 마치 천상계로 올라온 착각마저 들었다. 좋은 에너지를 공유할 수 있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그다음 주, 프랑스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부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부산에 사는 지인과 합류하여 투어를 하였다. 국제시장, 감천 문화마을을 둘러보고 수변공원으로 가서 돗자리를 펴고 와인을 마셨다. 프랑스 친구 둘이서 각각 화이트 와인, 레드와인을 선물로 가져와서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한 친구가 막걸리가 맛있었다며 먹기 시작해서 와인과 막걸리를 섞지 않는게 좋을거라고 경고를 했지만, 나의 충고를 가볍게 무시한 그 친구는 새벽내내 속이 뒤틀리는 경험을 해야 했다.
다음날, 호기롭게 해파랑길을 걸어보자며 친구들을 데려갔다. 분명 이름은 해파랑 ‘길’인데 이것은 그냥 길이 아니었다. 한 20분가량 등산을 하다가 이곳을 우리가 과연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지나가던 아저씨에게 물어봤다. 앞으로 길이 갈만한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아저씨 께서는 “그냥 깔딱 깔딱 두 번만 살짝 오르락 내리락 하고 한 시간 정도만 더 가면 된다~ 가뿐하다.”라고 하셨고, 나는 그 말을 친구에게 영어로 다시 전달을 해주었다. 그러더니 반대 방향에서 오다가 중간에 쉬고있던 독일 여행객 두명이 “No,no!” 라며 다급히 나의 말을 잘랐다. 그의 말인즉슨, 두 번의 경사가 꽤 있는 고개를 넘어야 하며, 적어도 1시간 40분은 가야 한다고 하였다. 그 말은 들은 나의 친구는 “저 사람들 독일인들이잖아. 그들이 말하면 그게 맞는거야.”라고 하였고, 우리는 발걸음을 돌려서 다시 20분을 되돌아갔다. 그리고는 광안리로 돌아가 해변에 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한국 식당을 가려고했지만 오픈시간이 늦어져서 결국 일식당에 데려다게 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던 여행이 그렇게 끝났다.
이어지는 주, 인도 여행을 함께했던 언니 오빠들, 일명 ‘인도팸’과 함께 강원도 정선으로 떠났다. 솔직히 더 이상의 여행은 당분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집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으나, 멤버 중 한 언니의 결혼 전에 여행을 가자며 몇 개월 전부터 잡아놓았던 여행이었다. 그렇게 힘든 마음을 안고 떠났는데, 웬걸.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나 할 정도로 신비롭고 새로웠다. 굽이굽이 길을 따라 달려 전화도 터지지 않는 산골짜기 오지로 우리는 도착했다. 허름한 옛날 집에서의 하룻밤이었지만 비가 오며 생긴 운무와 운치에 젖어 마음을 씻어내었다. 잠시 혼자 걷기도 하고, 다 같이 정자에 앉아 쉴때는 정말 그간 피로가 다 날아가는 것 같았다. 주인장 아저씨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집은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어. 또 와요~”
마지막으로 서울, 홍대에 위치한 ‘저스트 비’에 템플스테이를 하러 방문하였다. 저녁공양은 제공하지 않는 곳이었는데, 스님께서 특별히 피자를 ‘쏘신다고’ 하셨다. 스님들, 스테프들, 그리고 함께 묶는 사람들과 다 함께 키친으로 내려갔다. 저녁으로 먹을 비건 고사리 떡볶이와 과일을 준비해갔던 터라 준비해서 함께 내놓았다. 도착한 피자들이 모두 동물성 재료가 들어간 피자라서 살짝 당황을 하였는데, 기부를 받은 건가 의아해하며 감사히먹었다. 이곳은 도심에 위치하였고, 절이라고 부르기엔 게스트하우스에 가까운 곳이었다. (실제로 게스트하우스를 하던 곳을 계약한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만큼 특별했다. 칠레에서 음악을 하러 한국에와서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던 청년이 계속해서 스테프로 활동을 하고, 스님이 되고자 하는 외국인들도 몇몇 있었다. 한 분은 친구와 내가 뉴욕에서 만났다고 이야기를 하니, 본인은 뉴욕에서 왔는데 이제 돌아 가고싶은 생각이 없다며 스님이 되고자 한다고 하였다. 다음 날, 새벽 5시반에 일어나 처음으로 108배를 해보았다. 이어서 명상을 하고 그 곳을 떠났다.
계속되는 여행 중간에 명상을 하며 생각했다. 내가 왜 여행을 숙제처럼 생각하고 있는지. 현재를 조금 더 즐기기로 마음먹고 실제로 조금 더 즐길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의 건강과 마음의 건강은 뗄레야 뗄 수가 없는지라, 몸의 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여야 했다. 다음달은 내 몸을 더 잘 보는 한 달을 보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