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클래미
BTS의 RM이 두 번째 솔로 앨범 [Right Place, Wrong Person]을 발매했다.
하이브와 민희진의 공방이 지속되면서, 공교롭게 5월 24일(금)에 같이 잡힌 RM과 뉴진스의 컴백이 무사히 잘 진행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물론 직원들은 할 일을 하겠지만, 여론적으로 볼 때 딱 발매하기 좋은 타이밍은 아니었을 테다.
하지만 우려했던 내가 바보 같을 정도로 RM과 뉴진스 모두 멋진 음악으로 컴백했다. 음식으로 비교하자면, 뉴진스는 누구나 좋아할 법한 케이크에 새로운 토핑이 추가된 듯한 익숙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이어서 호불호 없이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좋게 얘기하면 뉴진스의 색깔이 명확하다는 것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약간 자기 복제를 한다는 것인데, 어찌 됐든 전략적으로 익숙한 맛을 보여주면서도 계속해서 트렌디함을 어필하고자 미국에서 떠오르는 인디 장르를 발 빠르게 도입하는 것은 뉴진스가 최고인 것 같다.
반대로 RM의 음악은 뭔가 오랫동안 묵힌 향토적인 맛이 있다. RM 자체가 인간적인 매력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뭔가 오아시스나 비틀스 같은 영국의 록 음악 같은 정서가 있다. (물론 이 둘의 이미지는 극단적으로 다르지만,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은 록 기반의 아티스트라는 공통점에서 말이다.)
당연히 밴드 사운드가 가미돼서 그런 것만은 아니고, 힙합이 멋과 혁신을 상징한다면, 락은 본능적이고 좀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자기파괴적인 성향을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자기파괴가 결국 나비가 애벌레를 깨고 나가는 경지로 오르게 돕곤 하는데, 이런 느낌을 이번 RM의 앨범에서 전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번에 선공개된 'Come back to me'를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의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그냥 RM이 요즘 이런 사운드와 감성을 좋아하는구나 정도로 받아들였고, 심지어 앨범이 발매되고 노래만 들었을 때는 바밍타이거와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영향을 심하게 받았구나 정도로 이해했을 뿐이었다. 솔직히 노래와 뮤비는 좋은데, 보컬만 본다면 RM 말고 다른 사람이 부르면 더 고평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철저히 아티스트를 개무시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우연히 오늘 RM과 지민이 함께한 앨범 코멘터리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처음으로 음악 리뷰 글을 쓰게 할 정도로 나의 생각이 180도 달라지게 만들었다.
RM이 문학과 예술을 좋아하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인지는 정말 몰랐다. 왜냐하면 보통 예능에서는 이런 얘기를 깊게 다룰 겨를이 많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짤막하게만 언급되니, 예술가적인 청년 정도의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영상은 정말 모두가 풀 버전으로 봤으면 좋겠다. 오히려 30-40대가 더 많은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세한 내용은 위 영상을 참고하면 되지만, 우선 앨범 제목인 [Right Place Wrong Person]에 대해 설명한다. 직역하자면 "맞는 장소와 틀린 사람", 즉 본인을 뜻한다. BTS와 하이브는 너무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지만, 과연 본인이 이 환경에서 찰떡같이 맞는 사람인지 10년이 넘도록 고민을 해왔다고 한다.
실마리를 풀지 않고 입대해 버린다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짧은 시간 동안 송캠프를 열어 평소에 교류하지 않던 한국의 인디 아티스트들을 모아 송캠프를 열어버렸다. 그러니까 음악적으로 보면 여기저기서 영감을 받은 듯한 새로운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고, 사실 그가 원했던 모습이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잘 보이려고 너무 힘만 주고 산 것 같아서, On/Off 중 양자택일하는 수밖에 없고, 그 중간이 없다고 한다. 음악도 본인이 0부터 100까지 항상 주도해 나갔는데, BTS가 딱 본인에게 딱 맞는 옷이 아니다 보니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바로 체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히려 힘을 쫙 빼고 본인에게 맞는 옷을 재단할 수 있는 명가들을 여기저기서 수소문해 왔고, 그래서 음악이 전체적으로 편안하고 솔직하며 행복하게 들린다.
다시 앨범 제목으로 돌아와, "맞는 장소와 틀린 사람"이라는 표현이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뭔가 나 빼고 이곳에서 다들 잘 적응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고, 나 혼자 옥에 티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누구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회사든, 친구들 사이든, 학교든, 심지어 가족 구성원 안에서든 말이다.
그리고 첫 노래는 "Right People, Wrong Place", 직역하자면 "맞는 사람들, 틀린 장소"라는 위트 있는 제목으로 앨범을 시작한다. 어쩌면 나 혼자 맞고, 모두가 틀린 걸 수도 있겠다는 뜻이고, 이거 또한 모두가 상상했을 법한 생각일 것이다. 마치 장자가 꿈을 꾸고 내가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을 꿔서 내가 된 것인지 진실을 알 수 없는 "호접지몽"이 연상된다.
답이 무엇이든 간에 인간을 관통하는 메시지라고 생각이 들었고, RM이 이를 유쾌하면서도 너무 가볍지 않게 잘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테마가 "방황"인 것 같은데, 이 영상에서 함께 출연한 지민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10년 넘게 아이돌 생활을 같이하면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경험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아이돌이란 일반인의 삶과 다르게 굉장히 폐쇄적이고 루틴 한 삶을 살아가며, 연애나 도덕적인 부분에서 굉장한 제약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동시에 경쟁이 굉장히 치열해서 성과에 대한 압박도 심한데, 지민은 모두가 한 번씩 이런 번아웃을 심하게 경험했고 RM도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방황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는데, 오히려 RM이 더 방황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고 한다.
방황을 사춘기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제 나이 때 그걸 경험하지 못하면 늦바람이 든다고도 표현하지 않는가? 모든 게 다 때가 있는데 아이돌은 일반인의 라이프스타일과 너무 다르니 그때가 다를 수 있고, BTS의 리더인 RM은 더더욱 사춘기를 느낄 사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늦바람이 든 거라고 볼 수 있지만, 더 늦기 전에 지금 제대로 끝까지 갔다 오는 게 더 건강할 수 있겠다고 지민이 표현한 것이다.
RM에게 이런 말을 해줄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은 정말 보기 좋았다. 서로를 가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전혀 과장되어 보이지 않았고, 이게 BTS가 오래가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 영상을 보고 앨범을 다시 들으니, 사운드나 가사나 뮤비가 하나의 선처럼 일맥상통하게 들리고 보였다. 감히 말하자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 중 하나인 에픽하이와 견줄 수 있는 아티스트가 탄생한 거라고도 느껴졌다.
이 앨범은 좀 더 곱씹으면서 들어봐야 할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처음으로 앨범 리뷰를 쓰게 만들어준 RM에게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고 말해주고 싶고, 한층 농염해졌을 2025년 BTS의 완전체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