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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H Dec 26. 2020

나는 MBTI 검사를 좋아한다

알파벳으로 삶을 회고하는 중

중학교 때도 MBTI 검사가 있었겠지만, 그 때는 학교에서 OMR 마킹하며 보는 정식 검사였고, 결과를 보면서 친구들이랑 비교를 해본다거나 하는 재미가 없었다. 별로 유행이 아니었던 것이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서 결과를 공유하는 유행이 시작한 건 대학에 온 이후이고, 그 때 모바일로 하는 간이검사를 해보면서 유행에 함께 하게 되었다. 


맨날 하는 그 간이검사는 아래 주소 참고.

https://www.16personalities.com/ko/%EB%AC%B4%EB%A3%8C-%EC%84%B1%EA%B2%A9-%EC%9C%A0%ED%98%95-%EA%B2%80%EC%82%AC


2018년 여름, 교환학생을 가기 전에 해본 내 MBTI 결과는 ISTJ 였다.


위 검사 사이트에서 ISTJ를 소개하는 문구는 "청렴결백한 논리주의자"이다. 


https://www.16personalities.com/ko/%EC%84%B1%EA%B2%A9%EC%9C%A0%ED%98%95-istj


너무나 나한테 잘 어울리는 문구였다. 생활기록부를 봐도 "규칙을 잘 지킨다", "성실하다" 라는 말이 가득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나는 ISTJ라고 정리된 내 성격을 좋아하지 않았다. 새로운 학원으로 옮겨갈 때도 굳이 그 반에 있는 다른 학생들을 신경쓰며 혹시라도 나에게 말을 걸 것 같으면 잔뜩 긴장하는 내가 싫었다. 학년이 올라갈 때도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과정이 굉장히 스트레스였고, 누가 나에게 건넨 짧은 한 마디에 온갖 의미를 붙여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게 I 라는 알파벳으로 정리된 것이다. S와 N의 구분은 아직도 잘 모르겠으니 패쓰. 

T 역시 너무나 분명한 케이스에 속했다. 중학교 때 나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친구들과 다투기 일수였는데, 대부분의 다툼에서 나는 상대방을 위로하거나 공감해주는 말을 못해서 주변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J 는 나에게 유용한 성격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J였기 때문에 공부를 잘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모두가 떠난 방과 후 교실을 둘러보던 선생님은 우연히 내 책상 위에 놓인 스케줄러를 발견했고, '이래서 1등을 했네'라고 생각했다. 라고 우리 엄마한테 말했다고 한다. 나는 계획 없이 보내는 자습시간을 못 견뎌 했고, 목적없이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보면 집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서 좋은 성적을 받았으니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교환학생을 다녀온 후 다시 해본 검사에 따르면 내 성격은 ESTJ로 바뀌었다.


왜 E로 변했을까.

일단 I가 살아남기엔 너무나 낯선 상황에 너무나 많이 처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하나하나 신경쓰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알게 되었으며, 기숙사로 돌아와서 타인의 말을 반추해볼 기력도, 시간도 없었다. 스트레스 받으며 주저하기에는 내가 가진 4개월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일단 말을 걸고, 일단 먼저 다가가야 뭐라도 얻어내는 것이었다. 어쩌면 금전적으로 봤을 때 내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어간 기간이었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나는 이미 중학교 때 미국에서 6개월을 보내면서 내향성이라는 성격이 어학연수에 얼마나 무익한 것인지를 체감했다. 일단 말을 하고 들이대야 얻어내는 것이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 나는 나 자신을 바꿀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I에서 E로 바뀐 것에는 스스로 대단히 만족했지만, "엄격한 관리자"라는 문구에는 여전히 내가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남아있었다. 


https://www.16personalities.com/ko/%EC%84%B1%EA%B2%A9%EC%9C%A0%ED%98%95-estj


다른 사이트에서는 "젊은 꼰대"라는 말로 ESTJ를 묘사하기도 했다. 

외향적이고 남을 이끄는 것도 좋아하지만, S와 T가 합쳐져 지나치게 현실적인 리더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ISTJ였던 시절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채찍질을 했던 나는 이제 다른 사람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 성향의 사람은 어쨌든 간에 덜 환영을 받는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난 뒤 올해 여름 다시 해본 검사에서는 ENTP를 받았다. 

https://www.16personalities.com/ko/%EC%84%B1%EA%B2%A9%EC%9C%A0%ED%98%95-entp


격변했다. 짧게나마 영업직을 해서 그런가 보다. 혹은 내가 하는 일이 특성상 계획이 통하지 않았다. 나의 계획으로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없었고, 내 계획은 임의의 사건들로 무의미한 것이 되버렸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더 이상 어떤 계획도 주지 않기로 했다. 의외로 계획이라는 틀을 깨는 데서 이상한 쾌감이 생겼고, 게다가 지금 당장 처한 현실의 문제를 하나하나 고민하기에는 내 현실에 문제가 너무 많았다. 저 멀리에 등대 같은 목적지를 설정해놓지 않으면 지금의 현실을 미화할 수가 없었다. 취업을 했지만 그 뒤의 길에 대해 준비하거나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었고, 직장에서 내가 하는 일 중에는 나만 특별히 잘하는 일이 없었다. 그게 N과 P라는 변화를 낳은 것이다. 


처음에는 나의 종착역이 ENTP 라고 생각했고, 이 결과에 무척 만족했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살다보니 나의 모습은 또 다른 틀에 맞춰 바꿔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에 빠졌다.


일단 인사 직무를 할 때는 J가 절실하다. 작은 일과 큰 일의 순서를 매겨야 하고,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꼼꼼하게 처리할 수 없으므로 많은 양의 데이터에서 허우적거리기만 한다. 


F는 나에게 가까운 사람과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 나는 공감해주는 사람, 위로를 잘해주는 사람, 감정이입을 잘 해주는 사람을 가까이 두려고 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공감도 못하고, 위로도 못하고, 다른 사람의 일에 감정이입도 못해서는 안 되니까. 


어떤 사람들은 MBTI 의 결과에 속지 말라고 한다. 거기에 갇혀있으면 안된다고.


하지만 나는 주기적으로 MBTI 검사를 해보면서 나를 돌아보는데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알파벳 하나에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순간들, 내 인생의 변곡점들이 빼곡하게 들어가 있는 기분이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니, 어떤 모습으로 변화했을지 모르니 그 결과를 기다리는 설렘은 덤으로 따라온다. 


내가 겪은 경험들과 생각의 결과들, 내가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가 마법약처럼 한데 섞여 새로운 MBTI를 만들어내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다는 거다. 무척이나 설레는 경험이다.  


그래서 일단 지금은 MBTI가 나의 호(好) 공간에 들어와 있다. 



게다가 나는 "뜨거운 논쟁을 즐기는 변론가"니까, 

이 검사의 부작용과 단점을 나열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나대로 효력과 장점을 나열할 자신이 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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